시작이 뭐였을까. 그래, 당신을 알게 된 그 순간이 당신을 향한 내 선택의 시작이었다.
당신이 나를 좋아하는 지는 그다지 많이 중요하지 않았고, 나의 미래에 언젠가 반드시 당신이 서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기대 같은 건 웬만해선 하지 않았다. 노래 가사처럼 내가 정말 당신 방의 침대가 되어도 좋았을 날들이었다. 너무 보고 싶어서 차라리 내가 당신의 엄마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날들이었다. 아무리 뻗어도 절대 닿아지지 않는 당신의 손을 단 한번이라도 마음껏 만지작거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언젠가 당신과 함께일 때 당신의 눈동자에 내가 비출 때면 그렇게 그냥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당신에게 의자를 선물하고싶었다. 언젠가 당신이 잠시 멈추고 싶을 때, 내가 선물한 의자에 앉아 내가 얼마나 당신의 삶을 응원하고 있는지, 또 내가 얼마나 당신에게 위로가 되어주고 싶은지, 한번쯤은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지친 당신이 누군가 자신을 이토록 믿어주고 있다는 사실에 힘을 얻어 다시 걷게 될 지도 모른다는 이기심이었다. 그 의자가 나를 위한 선물인지, 당신을 위한 선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당신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다. 내가 그 오랜 시간 혼자 끙끙거려야 할 사람이 당신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다. 대답 없는 당신의 무책임함이, 대답해 주지 않는 그것을 내가 거절이라고 받아들일 것이라는 당신의 자만이, 그것 만은 당신의 탓이다.
당신의 대답을 기다리느라 그 사람은 내게 사랑이 아닐 거라고 마음을 걸어 잠갔던 그 순간들이 이제와 아팠다. 당신과의 시작이 아닌 그 사람과의 시작을 내가 이토록 간절히 바라고 염원했더라면 아마 조금은 다른 미래, 행복한 순간들이 내 안에 자리했을 수도 있었다.
당신 때문에 놓쳐온 나의 인연들, 그리고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아 버려 아쉬워진 한 사람이 있었다. 내가 당신에게 주었던 진심들을 다시 가져올 수만 있다면 그 사람에게 모두 주고 싶어질 만큼.
당신에 눈이 멀어 제대로 보지 못했던 그 사람과의 연애에게 미치도록 미안했다. 조금 더 행복할 수 있었는데, 내가 조금 더 많은 것들을 그 사람에게 해줄 수 있었는데, 그 사람으로 꽉 찬 마음으로 더 예쁘게 연애할 수 있었을 텐데, 우리는 헤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당신 때문에 나는 많은 것들을 잃었는데, 고작 당신이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나는 그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걸어왔구나.
내가 선택한 무수한 것들이 과거의 나를 잃게 했고,
당신이 선택한 사소한 것들이 오늘의 나를 잃게 했다.
앞으로의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당신을 선택하지 않는 선택을 하기로 마음 먹은 순간,
기다렸다는 듯 밀려오는 이 공허함을 나는 또 어쩔 수가 없어져 당신이 미치도록 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