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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 May 17. 2023

오후의 인터뷰 2화 : 엄유정

유기적이고, 유연한 선을 탐구하는 엄유정 작가 인터뷰

2021년 10월

일상비일상의틈 앱에서 진행했던 인터뷰를 옮깁니다.


끝없는 노력이 우연에서 확실한 필연으로 캔버스에 펼쳐지기까지, 2021년 2월의 《Feuilles》 개인전에 이어, 10월의 《밤-긋기》라는 개인전까지 올해를 꽉 채워 달려온 작가 엄유정, 작업실에 물감이 마를 일이 없을 것 같은 엄유정 작가의 일상을 엿보며 작가로서의 삶에 대해 물음을 던졌다.


언제부터 그림을 그리셨나요, 그림을 지속하는게 어렵지는 않으신가요?

어릴 적부터 계속 그리고 있었어요. 피아노와 미술 학원이 붙어 있는 곳에 다녔는데, 피아노 학원 갈 때는 사라졌다가 미술 학원 갈 때는 나타났대요. 미술 선생님은 뭘 해도 잘 한다고 칭찬해 주셔서 정말 잘하는 줄 착각하고 계속 그렸어요. 그게 발단이 되어 지금까지 그림을 그리게 된 것 같아요. 요즘엔 좀 힘들 때도 있지만, 그림을 안 그린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생활처럼 계속 그림을 그릴 것 같아요. 이 일이 유일하게 잘 하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작가로서 하루 루틴은 어떤 가요? 주로 사용하시는 페인팅 재료도 궁금합니다.

마감이 루틴을 만듭니다(웃음). 큰 스케줄대로 움직이는 편이고, 규칙적으로 일하진 않아요. 오전에는 메일을 쓰거나 자잘한 업무를 하고, 오후에 작업을 합니다. 재료는 그림에 따라서 달라요. 드로잉을 하는 작업은 건 드로잉 재료인 콩테나 목탄을 사용해서 작업을 하고요. 페인팅 작업은 아크릴, 과슈, 유화 등 그때 맞는 재료를 사용해요.


작업실에 대해서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8년 동안, 작업실을 10번은 이사한 것 같아요. 지금도 여기를 언제까지 사용할 수 있을 지 알 수 없어요. 작업실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으니까요. 보통 아티스트 레지던시가 되면 1년 정도 가서 작업을 하고 와요. 한국에서는 ‘청주 미술 창작 스튜디오’, ‘경기 창작 센터’에 입주했었어요. 아이슬란드에서는 ‘리스투스 아티스트 레지던시’라는 곳에서 한 달 정도 작업을 했어요. 돌아와서는 문래동, 홍대를 거쳐 지금의 망원동까지. 늘 전전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작가가 저처럼 활동하고 있어요. 몇몇의 크루를 모아서 공동의 작업실을 구하거나 그때마다 레지던시를 따라서 봇짐 장수처럼 옮겨 다닙니다.


화집『FEUILLES』(2021) © EOMYUJEONG


지난 6월 《FEUILLES(푀유)》전시와 함께 출간된 화집 『FEUILLES』가 독일 디자인 공모전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에 선정되셨네요.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FEUILLES』는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글 쓰는 분과 디자인하는 분께 직접 의뢰해서 만든 책이에요. 책은 전시와 연결된 화집을 목적으로 작업했어요.


Araucaria 전시 (2020) © EOMYUJEONG


‘눈 덮인 산’과, ‘빵’, 이어서 ‘식물’이라는 소재로 작업을 확장하셨는데요. 소재는 어떻게 발견하고 접근하나요?

저는 관심 대상을 그리고 난 뒤에 제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무엇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돌이켜보는 편이에요. 저는 제 삶의 주변에서 발견하는 유연하고 유기적인 형태를 가진 대상에 관심이 많아요. 직선보다는 곡선의 유연한 것들 말이죠. ‘눈 덮인 산’, ‘빵’, ‘식물’이라는 소재는 그 소재가 가지는 유연하고 유기적인 형태를 관찰하여, 추상적인 형태를 새로운 발견하는 것에 집중한 작업이에요.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두 가지 색깔의 그림 스타일을 추구하시던데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그림 스타일은 우연 중에 얻게 되는 형상이라고 생각해요. 작가는 그 우연을 찾아 헤매는 사람이죠. 그만큼 또 많이 그려야되고요. 그런 실패와 시도가 묶여서 나온 결과물로 두 가지 다른 스타일을 얻었어요. 드로잉과 페인팅 스타일이 달라서 아예 다른 작가로 오해를 받기도 해요.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그리는 건 아닌데요. 컬러를 다루다 보면, 모노톤도 그리고 싶고, 페인팅을 하다 보면, 드로잉도 하고 싶어서 작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얻은 스타일이에요.


작가로서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언어로 제 생각을 잘 표현할 수 있었으면 그림을 안 그렸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오래 그림을 그려 오고 있는 사람으로서 지칠 때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작업을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지쳤을 때 좋은 그림을 보면 다시 용기를 얻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겨요. 그게 제 작업을 지탱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요. 그림이 주는 에너지가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그림에서 에너지를 얻고요.


『드로잉 모로코』와 『나의 드로잉 아이슬란드』라는 여행책을 내셨는데, 작가님에게 여행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여행지에서 돌아다니는 행위보다는 낯선 장소에 가서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해요. 외진 숙소를 구해서 일주일 동안 숙소 근처만 돌아다니는 여행을 즐기고 있어요. 보게 되는 것, 경험하게 되는 것들이 다음 작업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아니까. 무리를 해서라도 여행을 가려고 노력합니다.

책은 그림을 전달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라는 말이 있어요. 김점선 화가께서 하신 말인데, 책은 하나의 작은 미술관, 자신만의 갤러리라고 생각해서 여행책을 내게 된 거예요. 그림을 넣기 위해서 책을 만든 거죠. 책은 제 작업의 연장선이에요.


작가님의 숨은 팬을 많이 발견하게 되요. 팬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저를 아시는 분보다 제 작품을 아시는 분들이 많아요. 8년 동안 제 작업을 지켜봐 주신 고마운 분들이 있기 때문에 작업을 이어 나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제 작업을 기억하시고, 추천해주시는 그런 한 분, 한 분 덕분에 이렇게 활동하는 것 같아서 정말 감사드려요.


마지막으로, 처음 시작하는 작가들을 위해 해주시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저도 신인 작가와 별반 다른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여전히 고민이 많고요. 조심스럽게 이야기해보자면, 실질적으로는 작업을 하면서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작업 외에 병행할 일들에 대해 생각해야 돼요. 현실적인 서브 잡이 필요하죠. 요즘은 부캐가 자연스러운 시기이기 때문에 서브 잡을 나쁘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모두 힘내시길 응원할게요.




<작가 소개> 엄유정

2013년 아이슬란드에서 열게 된 첫 개인전《모멘터리 사일런스》를 시작으로, 2014년 《테이크 잇 이지》, 2016년 《사막 나무늘보 빵 사람과 같은 것들》, 2019년 《아라우카리아》, 2021년 《푀유》, 《밤 - 긋기》라는 개인전을 열었다. 여행 에세이 『드로잉 모로코』와 『나의 드로잉 아이슬란드』를 출간했다.


인터뷰_오후

그림과 사진_엄유정

https://www.instagram.com/drawingwing/

© EOMYUJEONG All Rights Reserved.




오후의 인터뷰 | 아티스트의 날 것의 생각을 공유합니다. 아티스트라는 직업적 특성을 보유하고, 작품에 뚜렷한 경향성을 나타내며 사회적 자아실현을 실천하는 예술가의 고뇌와 삶의 방향을 대화를 통해 엿보고, 소개하는 인터뷰입니다. 이 작은 대담이 대중의 작가 발견에 요만큼 기여하고, 다음 신인 아티스트의 자아 창조에 스리슬쩍 참고되길 바라는 인터뷰어의 마음이 있습니다. 오후의 인터뷰는 아티스트를 넓은 범위에서 칭하고 있습니다. 일상의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는 사람을 아티스트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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