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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 May 17. 2023

오후의 인터뷰 3화: 김후란

후란서가 책방지기 김후란 작가 인터뷰

2021년 11월

일상비일상의틈 앱에서 진행했던 <오후의 인터뷰>를 옮깁니다.


우리는 만남 전, 이런 주제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글 쓰는 작가로서 불행은 어떤 선물을 주고, 무엇을 가져갔는지. 날이 선 삶 위를 살아가는 우리는 긍정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부정의 힘으로 삶을 버텨내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 겉으로는 냉소적이지만, 웃고 있는 마음으로 글 쓰며 사는 삶을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당신의 불행에 대해 세 단어로 이야기해주세요.

존재 의미, 자기혐오, 소소한 행복


당신은 당신의 불행을 어떻게 마주하나요?

사회적인 관계에서 오는 불행은 예전에는 잘 대처하지 못했어요. 집에 와서 이불킥하기 일쑤였는데, 이제는 내성이 생겨서 ’1번 우아하게 먹인다, 2번 쌈닭이 된다, 3번 무시한다’ 같은 매뉴얼로 행동해요. 마음으로 닿아오는 불행은 힘껏 몸부림칩니다.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어요. 그리곤 글을 씁니다. 특히, 사소한 불행은 글로 풀어버려요.


제가 보는 작가님은 드러내는 것에 거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표출의 에너지는 어디서 오나요?

에세이를 출판하는 순간부터 솔직하고, 진솔하고, 용기 있는 글만이 진짜라고 믿었어요. 그리고, 제가 서점을 운영한다고 행복한 건 아니니까. 그렇게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실제 내가 경험하고 있는 삶이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하고 싶은 일 한다고 행복한 것은 아님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렇게 씀으로써 내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죠.



무엇이 우리를 불행으로 등을 떠미는 걸까요?

외부적인 불행은 자기 자신이 등 떠민다고 생각해요. 차별과 경쟁 속에서 다양한 혼란을 겪겠지만, 콤플렉스로 좌절하게 되면 그게 끝이 되는 것 같아요.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이 자신을 불행하게 한다면 저항하거나, 도망가거나 확실한 방법을 강구하고 자기 자신을 그 속에서 꺼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회사를 관두고 이직을 하는 방향일 수도, 자신을 괴롭히는 타인에게 하지 말아 달라고 맞서는 방법일 수도 있는 거죠.

내부적인 불행은 가족, 가까운 사람이 가져오는 게 아닐까요? 가장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는 불행이 해소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를 많이 봐요.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건데 가족들 간의 가스라이팅도 있더군요. ‘너는 첫째니까. 양보해야 돼, 너는 예전에 착했으니까. 계속 착하게 시키는 대로 해야 착한 딸, 아들같이 굴어야 돼.’ 같은 경우요.


작년에 출판사를 통해서 재출간하신 『나는 불행하면 글을 쓴다』에서 사소한 불행이 글을 쓸 수 있게 해준다고 하셨잖아요. 소재의 의미로 보여요. 또 다른 의미가 있나요?

보통 행복에 대해서 리뷰를 쓴다고 하면 ’오늘 진짜 재밌었음’, 아니면, 블로그에 사진 쭉 올려놓고 ‘여기 좋았음. 다음에 또 가야지.’ 이렇게 짧게 마무리 되잖아요. 그런데 뭔가 사건이 있으면 사연이 길어져요. ‘기분이 시작부터 안 좋았어. 오늘 운수가 지지리 나빴지’로 시작해서 사건이 전개되고 화로 끝나는 이야기의 구성이 완성되죠. 제가 겪었던 사소한 불행들은 글로 쓰면서 그때의 제 자신을 발견해요. 과거의 일에 대해 성찰하는 동시에 회복력을 얻는 시간을 가지는 거죠.

 

다른 이들도 글을 쓰면, 그런 마음이 해소될 수 있을까요?

처음 글을 쓰시러 오시는 분들이 자기 이야기를 뭘 쓸지를 모르고 오시는 분들도 많아요. 한 달은 자신의 성격의 단점이나 플레이리스트, 좋아하는 가게, 내가 잘하는 것, 직장 등 타인에게 이야기해도 크게 상관없는 글을 쓰세요. 그러다가 어느 날 이야기하세요. 사실 쓰고 싶은 건 트라우마나 상처의 어느 부분이 이라고, 90퍼센트 이상이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말해요. 저는 그걸 발견하도록 도와 드리고 글로 정리할 수 있도록 해드려요.


부정의 힘으로 삶을 버텨내는 힘은 무엇일까요?

글 쓰는 작가에게는 다 똑같은 면이라고 생각하는데, 예술가는 기본적으로 기민한 면이 있거나 아니면 결핍이 있다고 해요. 이 결핍은 채워지지 않을 결핍이죠. 제 결핍은 내면의 결핍이라고 볼 수가 있었어요. 저는 어릴 적부터 ‘우주 속의 먼지 같은 존재야’라는 말을 달고 살았었는데, 이 말을 지울 수 있는 건, 실제로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인정받았을 때였어요. 그것만이 저의 결핍을 채워줬어요.


삶의 파도로 불행과 불안을 떠안은 사람에게 시대의 동행자로서, 책방지기로서, 글쓰기를 쓰는 사람으로서 어떤 방향을 제시해주시겠어요?

동행자이자 선배로서 할 수 있는 말은, 저보다 어린 학생, 취준생 또는 신입사원이라면, 지금 방황하는 것은 당연하니 자기를 탓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운동 또는 취미 생활을 꼭 하세요. 그동안의 포트폴리오와 취미생활이 준비된 상태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할 기회가 열리는 거니까요.

후란서가 책방지기로서 만약에 그런 고민이 있어서 당장 그만둘 수도 없고, 털어놓을 사람이 없으면 후란서가에 오세요. 책을 추천해드리고, 상담도 해드릴게요. 그게 제 전문이니까요.

글 쓰는 사람으로서는 후란서가 인스타그램 계정에 와서 글을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저도 계속해서 그런 고민을 떠안고 글을 쓰고 있으니까. 그런 고민을 향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동지애를 느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런 고민을 풀 수 있는 책들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부정의 감정으로 시작해서, 긍정적으로 끝난 것 같아요. 작가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후란서가 책방지기로서 긍정의 위로를 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부정의 감정이라고 한다면 작가님에게 부정은 어떤 감정이에요?


저는 우울이 부정의 감정이 아닐까라고 생각해요.

부정의 감정이라고 해서 우울을 생각하신다면, 우울은 나쁜 게 아니에요. 우리 부정의 반대는 긍정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저도 불행이 행복의 반대라고 생각했어요. 불행은 그냥 언럭키죠. 우울, 슬픔 이런 게 나쁜 게 아니라고 봐요. 긍정적인 사람이 있는 반면에 저처럼 모든 것을 약간은 좀 시니컬한 태도로 보거나, 베이스 자체가 다운된 사람이 있는 것뿐이에요. 중립적인 사람이 있다면 그건 로봇 아닌가요? 호불호가 명확한 인간이 오히려 전 정상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우리의 인터뷰를 마쳤다. 부정적인 감정이 꼭 나쁜 건 아니라는 작가의 말이 맴돈다. 아플 때도 웃을 수 있고, 우울할 때도 행복할 수 있다. 동전의 양면 같은 감정이라고 하기엔 삶은 너무나 복잡하고, 사람의 감정은 복합적이다. 이 작은 대화가 당신의 불행의 시간에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시간이 있다면 당신의 불행을 글로 옮겨쓰자. 어쩌면 당신의 펜과 키보드가 불행을 가져가 버릴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나이를 차곡차곡 먹는다. 아무도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이상한 중압감 때문에 나는 벌써부터 머뭇거린다. 분명 생각이 너무 많은 탓이다. 어쩌면 내가 불안을 사랑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나는 불행하면 글을 쓴다》중에서


혼자 글쓰기가 막막하다면 온오프라인으로 진행하는 후란서가의 글쓰기 프로그램에 참여 할 수 있다. 후란서가에서는 <내 문장이 문학이 되다니>라는 글쓰기 정규 클래스와 <문심> 원데이클래스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문심 프로젝트는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데, 매번 다른 ‘키워드’를 공지하고 그날 신청자를 받아 진행하며, 20분 글쓰기와 15분 피드백으로 빠르게 진행된다. 20분 동안 후란 작가도 함께 글쓰기를 진행하는데 이때 쓴 글은 이메일 구독 서비스로 받아볼 수 있다. 문심 프로젝트는 후란서가 인스타그램으로 공지되며 온오프라인으로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작가 소개> 김후란

에세이집 《나는 불행하면 글을 쓴다》로 알려진 김후란 작가. 독립출판물 《무언의 에세이》, 《기역에서 시작해서 히읗으로 끝나는》, 《정시퇴근》, 《여름과 영원》을 펴냈다. 본캐는 홍대에서 후란서가를 운영하는 책방지기, 부캐로 독립출판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어쩌다 보니 ‘책방지기’이고, 하다 보니 ‘N잡러’라는 후란작가는 책방지기로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작가일과 글쓰기 강사일, 디자인과 편집, 인쇄, 유통을 다양한 일을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


인터뷰와 사진_오후 

포스터 이미지_김후란

https://www.instagram.com/analog.journey.for.u/




오후의 인터뷰 | 아티스트의 날 것의 생각을 공유합니다. 아티스트라는 직업적 특성을 보유하고, 작품에 뚜렷한 경향성을 나타내며 사회적 자아실현을 실천하는 예술가의 고뇌와 삶의 방향을 대화를 통해 엿보고, 소개하는 인터뷰입니다. 이 작은 대담이 대중의 작가 발견에 요만큼 기여하고, 다음 신인 아티스트의 자아 창조에 스리슬쩍 참고되길 바라는 인터뷰어의 마음이 있습니다. 오후의 인터뷰는 아티스트를 넓은 범위에서 칭하고 있습니다. 일상의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는 사람을 아티스트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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