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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 May 17. 2023

오후의 인터뷰 6화: 조이솔

우드카빙 공방 <사각소리> 조이솔 작가의 사색에 관하여

2022년 2

일상비일상의틈 앱에서 진행했던 <오후의 인터뷰>를 옮깁니다.


온갖 사물이 디지털로 대체되고, 속도에 치우쳐 살아가는 이때에 ‘느리게 깎는 행위 자체를 통해 내 마음과 마주하기’란 어떤 사색으로 채워져 있을까 궁금했다. 완벽하게 만들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을 공유하며 우드카빙을 하는 <사각소리>공방에서 조이솔 작가를 만났다. 


우드카빙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단어 그대로, Wood Carving, '나무를 조각하다'라는 뜻이에요. 나무의 결을 따라 손맛대로 작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목공의 한 종류라고 볼 수 있는데요. 주로 식기류를 만들 수 있어요. 작게는 도토리 같은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만들거나, 동물 또는 인물을 조각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크게는 의자를 만들어서 카빙 기법을 접목할 수 있고요. 기술과 시간만 있다면야 식기에서부터 테이블, 조각품 등 다양한 나무 공예품에 접목할 수 있는 목공 기법이에요.


우드카빙의 특징을 말해주신다면요?

가장 큰 특징은 정답이 없다는 거예요. 우드 카빙을 시작할 때, 블랭크라고 하는 나무토막을 드리는데 같은 크기의 블랭크라도 다 다른 모양이 나와요. 누가, 어떻게 깎느냐에 따라서 모양이 다 달라지죠. 깎는 방법은 같지만, 깎는 모양은 제각각 디자인하기 나름이라서 정답이 없어요. 가끔 '하다가 틀리면 어떡해요?'라고 물어보시는 분이 있는데, 우드카빙에서 틀리는 건 없어요. 큰 틀은 있지만, 세부적으로 정해진 건 없어서 마음 가는 대로 깎으면 되요. 조금 틀려도 조금 엇나가도 괜찮다는 것이죠.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특징이자 장점이에요.


ⓒ사각소리


우드카빙을 하다 보면 성격이 드러나기도 하나요? 

성격까진 캐치할 수 없지만, 보통 두 부류로 나뉘어요. 칼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걸 좋아하시는 분이 있고, 맨들맨들한 걸 좋아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같이 오신 분들이라도 서로 선호하는 스타일이 아예 다른 분도 있어요. 신기한 건, 다들 결이 비슷한 분들이 오셔서 우드카빙을 즐기시는 것 같아요.  


우드카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에요. 수업할 때도 구구절절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죠. 작은 회사에서 디자인을 하다가 취미 삼아 배우게 되었어요. 그때 들었던 클래스가 대부분 나무와 관련된 수업이었어요. 도마를 만들거나, 가구를 만들거나, 그러다가 원데이 클래스로 숟가락을 만드는 클래스를 들었어요. 6명이 듣는 수업이었는데, 모여 앉아서 4시간 동안 숟가락을 깎았거든요. 손도 무척 아팠는데, 무언가 위로가 되는 거예요. 

그렇게 작업을 하던 중에 가르쳐주던 선생님이 '이거 해서 뭐 하실 거예요?'라고 물어보셨어요. 그때 불쑥 '아직은 회사 다니고 있지만, 저도 언젠가는 이런 거 하고 싶어서요.'라고 저도 모르게 대답했었어요. 선생님은 '끝이 있어야 시작이 있죠.'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문장이 저한테 크게 와닿았어요. 그때, 퇴사 고민을 오래 하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듣고 그다음 주에 사표를 내고 퇴직했어요. 그러고 다른 일을 차차 해나가면서 자연스럽게 공방을 차리게 되었어요. 


위로를 받으셨다고 했잖아요. 어떤 부분이 위로가 되었나요?

공간이 주는 분위기, 때와 장소에 맞는 음악, 깎으면서 나누는 대화 그런 것들이 합쳐져서 위로를 받게 되었던 것 같아요. 공방 일을 하면서 수강생들과 대화를 하게 돼요. 대화를 하면서 고민거리를 나누다 보면 저도 위로받고, 상대방도 위로를 받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위로를 받았던 분들이 인연이 되어서 지금도 찾아주시고 계세요. 


공방 이름인 '사각소리'의 뜻은 무엇인가요?

제가 제주도에 한 달 살기를 하게 되었는데, 우드카빙 할 재료를 챙겨갔었어요. 제주도에서 공예 하는 친구를 알게 되어 같이 나무를 깎았는데요. 그러던 중에 '사각 소리가 나네.'라고 말해주는 친구가 있었어요. 제 이름도 '이솔'이라서 '이소리, 소리언니'라고 불렸거든요. 그렇게 나무 깎을 때 나는 사각이는 소리와 제 이름 '이솔'이 합쳐져서 '사각소리'가 되었어요.


어떤 것들이 지금의 작가님을 만들었나요?

진하게 경험한 희로애락이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은 누구나 겪기 마련이잖아요. 그때 마주했던 '나무'와 '위로', 나무를 시작하면서 만난 인연들이 합쳐져서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든 것 같아요. 그리고 여기 공방에 오시는 분들마다 따뜻하게 말을 해주세요. 그런 것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것 같아요. ‘나무’라는 단어를 통해 짧다면 짧지만 길다면 긴 3년 동안 정말 다양한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동안 받았던 다정한 인사들을 잊을 수 없어요.


작가님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보니, 나무 깎는 일이 사색하는 일 같이 느껴져요. 나무를 깎으면서 생각도 함께 다듬게 되나요?

‘사색’이라는 단어가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맞아요. 생각을 다듬기 위해 나무를 깎을 정도예요. 어쩔 때는 잡생각이 사라지기도 하고 오히려 생각이 더 많아질 때도 있어요. 생각이 없거나 많거나 결론은 나무를 덜어내듯 생각도 덜어져요.


요즘은 어떤 사색을 주로 하시나요?

다른 분들과 다르지 않아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나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웃음) 우드카빙을 하면서의 앞으로 방향성이라던가, 제 삶의 다음 스텝을 주로 생각해요. 그게 제일 큰 것 같아요. 끝나지 않는 사색 같아요. 


그럼, 쉴 때는 어떻게 쉬시나요?

쉴 때는 아무것도 안하고, 아무 생각도 안 해요.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누워있어요. 근데 조금 불안해요. 예전에는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멍 때리는 걸 좋아했는데, 언제부턴가는 그게 좀 죄책감이 드는 거예요. '나무 하나라도 더 깎아야지'하는 부담감이 있어서. 쉴 때는 그냥 집에서 혼자 쉬려고 해요. 가끔, 좋아하는 장소를 혼자 가거나, 맛있는 걸 혼자 먹거나 하죠. 특히, 인천 헌책방 거리를 가면, 인천이 아니라 다른 여행지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그럴 때 힐링이 되는 것 같아요. 


사색은 주로 어디에 보관하세요?

예전에는 인스타그램에 정말 많이 썼어요. 남들이 걱정할 만큼 힘들었던 감정을 고스란히 썼었어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너무 시시콜콜한 것들을 옮긴 것이라서 후회가 되더라고요. 마음이 건강해진 타이밍이 왔을 때는 다 지워버렸어요. 지금은 메모장에 보관해서 혼자 보거나, 나무를 깎으면서 함께 덜어버리려고 해요. 보관한다기보다는 덜어낸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네요. 그래야 또 새로운 마음이 담아질 수 않을까 합니다. 어쩌면 그 공간과 찰나 어디쯤에 보관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앞으로 어떤 사색을 담은 작품을 만들고 싶으세요?

구불구불 힘들었던 날들 위로하듯이, 봤을 때 따뜻하고 다정한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세련되지 않아도 따뜻한 작품 말이에요. 그리고, 우드카빙처럼 손으로 깎아서 만드는 것도 있지만, 우드터닝이라고 기계를 사용해서 나무를 깎아만드는 방법이 있거든요. 두 방법을 접목한 사각소리만의 색깔이 담긴 목물을 어떻게 만들어낼지 사색 중이에요!


우드카빙 기법으로 깎은 숟가락 ⓒ사각소리


우드카빙을 어떤 분들께 권해주시겠어요?

살아가는데 쉼이 필요하신 분들이 떠오르네요. 쉼이 필요한 모든 이들에게 한 번쯤 해보길 권해드리고 싶어요. 꼭 이곳, '사각소리'가 아니더라도 말이죠! 와서 깎고만 가는 것이 아니라, 깎고 난 뒤에 결과물이 있잖아요. 여기 와서는 마음대로 깎고, 애쓰지 않아도 되고, 완벽한 완성에 도달하지 않아도 되고요. 이렇게만 느끼셔도 저는 성공하거라고 생각해요. 

일상에선 늘 쓰던 근육과 감정만 쓰기 때문에 리프레쉬 되기 어렵잖아요. 한 번씩 자신의 감각을 깨우는 다른 일을 하면 좋다는 말을 들었어요. 우드카빙도 안 쓰는 근육을 쓰면서 새로운 감각을 깨우잖아요. 새로운 감각을 느끼며 조금이라도 생각을 덜고 마음과 마주하는 시간을 보내셨으면 좋겠어요. 




<작가 소개> 조이솔 작가

2019년, 인천 구월동에서 <사각소리> 공방을 열어 운영하고 있다. 업사이클링을 주제로 한 우드카빙 강의를 비롯해 다양한 출장 강의를 열었고, 생활 문화 취미 생활 강사로 외부 강의를 진행 중이다.


인터뷰_오후

사진_조이솔

https://www.instagram.com/sagaksori_/




오후의 인터뷰 | 아티스트의 날 것의 생각을 공유합니다. 아티스트라는 직업적 특성을 보유하고, 작품에 뚜렷한 경향성을 나타내며 사회적 자아실현을 실천하는 예술가의 고뇌와 삶의 방향을 대화를 통해 엿보고, 소개하는 인터뷰입니다. 이 작은 대담이 대중의 작가 발견에 요만큼 기여하고, 다음 신인 아티스트의 자아 창조에 스리슬쩍 참고되길 바라는 인터뷰어의 마음이 있습니다. 오후의 인터뷰는 아티스트를 넓은 범위에서 칭하고 있습니다. 일상의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는 사람을 아티스트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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