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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 May 17. 2023

오후의 인터뷰 7화: 진소라

고양이 사진작가 진소라의 따뜻한 시선에 관하여

2022년 3

일상비일상의틈 앱에서 진행했던 <오후의 인터뷰>를 옮깁니다.



도시의 고양이들을  누구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는 작가가 있다. 진소라 작가의 사진 속 길고양이들은 동화 속의 요정같이 활기차고, 아름답다. 매주 한 번 이상은 고양이를 찾아나간다는 사진작가 진소라를 만나 따뜻한 시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고양이 사진을 찍게 되신 계기는 어떻게 되시나요?

2018년 말에 난치병 진단을 받았어요. 살이 너무 많이 빠져서 몸무게가 32킬로그램 정도였죠. 시간이 지나면서 몸이 조금씩 회복되긴 했지만, 취업 준비가 가능한 상태는 아니어서 갑자기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것도 없는 무기력한 상태였어요. 힘들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도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것도 답답했기 때문에 밖을 나가고 싶은 마음이 컸었어요.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카메라를 사게 되면서 밖을 나가기 시작했어요. 천천히 걸으며 풍경을 담았죠. 그러다 카메라로 길고양이 '뽀또'를 찍기 시작하면서 고양이 사진을 찍게 되었어요.

뽀또를 처음 찍었을 때는 사진을 찍자마자 달아났어요. 사진을 한 장 건졌는데, 그게 너무 귀여웠어요. 그 뒤로 언니와 함께 산책을 나가며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 뽀또를 따라갔더니, 다른 고양이들을 소개해 줬어요. '오즈'와 '칙촉'을 먼저 만나고, '오레오’와 '파베', '초코'를 차례로 만나게 되었어요. 

고양이 사진을 찍으면서 제 몸이 나아진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정신적으로 행복해지니까. 몸이 건강해졌어요. 정신과 몸이 연결되어 있다고 하잖아요. 그걸 확실히 느꼈어요.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도 많이 지지해 주세요. 부모님은  '고양이 만나서 참 다행이다'라고 말씀해 주세요. 정말 고양이를 만나서 다행인 것 같아요.


고양이 사진을 찍으면서 어려운 점이 있으실까요?

애들을 찾는 게 어려워요. 엄청 잘 도망가잖아요. 낯선 기척이 느껴지면 도망가 버리니까요. 찾는 것에 비해 촬영하는 것은 수월한 편이에요. 걔는 도망가지 않는다는 뜻이잖아요. 그럼, 가만히 기다리면서 셔터를 누를 기회를 보는 거죠. 모델이 잘 되어주는 친구를 만나면, 도망갔을 때 느껴지는 서운함이 사라져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종로에서 만난 할머니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할머니는 대여섯 마리의 고양이를 돌보고 있었는데, ‘똘똘이’라는 고양이가 쥐약을 먹고 죽은 거예요. 그런데 할머니는 담담하게 슬픈 얘기를 전해주셨어요. 심지어 동네 분들에게 먼저 인사도 건네고, 처음 본 저에게도 굉장히 친절하게 대해 주셨어요. 어떻게 저러실 수 있지 생각되었어요. 안 좋은 일을 겪으면 위축되고, 남에게 경계심도 생기고 그러잖아요. 힘든 일을 겪은 분들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할머니처럼 초연하게 살아보고  싶다는 계기가 되더라고요. 만남 자체가 힐링이 되었어요.


길냥이 시절의 뽀또와 오레오 ⓒ진소라


여행지에서의 고양이도 많이 촬영하셨는데, 작가님께 여행은 어떤 의미인가요?

집순이긴 하지만, 예전에 한국에서의 생활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지 어디로 계속 떠나고 싶었어요. 다른 곳에 가면 좀 바뀌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고요.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구체적인 플랜이 있었는데, 병이 걸리면서 무산되었어요. 그러면서 사진을 찍고 새롭게 떠난 게 고양이를 찾는 여행인데, 이 여행이 인생을 많이 바꿔준 것 같아요.

원래는 사람들에 대한, 특히 어른들에 대한 불신이 컸는데 여행을 다니다 보니까, 굉장히 좋으신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사심 없이, 욕심 없이 고양이 챙겨주는 분도 대부분 어른들이고요. 특이한 게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돌봐주세요. 고양이를 위해 자신의 가게 창고를 내놓으신 분도 계시고요. 말로는 '나는 얘 싫어.'라고 하시면서 고양이를 챙겨주세요. 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아이같이 해맑으셔요. 행복해 보인다고 해야 하나, 그게 신기해요. 이야기 듣는 것도 재밌고, 행복한 얼굴을 한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즐겁고 해서 자주 여행을 다니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내심 사람을 미워했던 모난 감정이 눈 녹듯이 사라졌어요. 낯선 사람에게도 마음을 열게 된 계기가 고양이를 찾는 여행이었어요.  


고양이 사진을 찍기 어렵다고 알고 있는데, 찰나의 순간을 어떻게 포착하는지 궁금해요.

아마도 집요함 때문이 아닐까요? 어릴 때부터 뭔가에 빠지면 진득하게 몰입하는 성격이에요.  고양이 만났을 때도 최소 한 시간에서 세 시간 정도 그 장소에 머물면서 촬영을 해요. 한순간을 포착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요. 때로는 고양이와 교감이 필요할 때도 있어요. 그럴 때는 작은 막대기를 들고 다니면서 놀아주기도 하면서 경계심을 풀고 촬영을 하죠.  


작가님 사진을 보면 따뜻한 시선이 느껴져요. 사진 찍는 대상을 보실 때 어떤 점을 주로 관찰하나요?

평소에 고양이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해요. 마음이라는 것이 속에만 있는 것 같아도 다 드러나잖아요. 글에도 그렇고, 사진에도 그렇고, 마음이 담기는 게 아닌가 싶어요. 평소에 고양이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자기만의 생각을 확립해 나가니까 그게 사진에도 비치는 게 아닐까 해요. 실제로 제가 조급하고 불안할 때 사진을 찍으면 나중에 봤을 때 조급함이 느껴져요. 사진에 마음이 담기는 것 같아요.


도서 <숨은 냥이 찾기> ⓒ진소라


2022년 1월 출간하신 <숨은 냥이 찾기>라는 책에 대해서 소개해 주세요.

‘뽀또’라는 동네 고양이를 만나고 나서부터 고양이 여행을 떠나고, 고양이 만나고, 고양이를 돌보는 사람을 만나는 일에 대한 책이에요. 네이버 포스트 <동그람이>에 46주 동안 연재한 내용을 다뤘어요. 책은 총 2부로 나눠져있는데, 1부는 동네 고양이, 2부는 여행에서 만난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예요.

제가 책을 쓰면서 가장 많이 생각했던 건, 사람들이 고양이를 보면서 슬픔보다는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어요. 여전히 길고양이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는 분이 많이 계세요. 실제로 길고양이의 삶이 고단하잖아요. 제가 본 바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길고양이였던 뽀또와 오레오를 입양하셨잖아요. 길냥이가 집냥이가 되고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전에는 밥 주는 친한 사람 정도로 느끼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저를 어미 고양이로 느끼는 것 같아요. 졸졸 따라다녀요. 처음에 간식 달라는 요구였다면, 요즘은 관심과 사랑을 필요하다는 요구를 해요. 입양 초기에 뽀또가 그루밍(털을 핥는 행위; 친근한 상대에게만 해주는 고양이의 애정표현)을 하고 있길래 살짝 손을 댔는데 휙 고개를 돌리더라고요. 그러다가 최근에 제 볼에 그루밍을 해주는 거예요. 그때 기분이 묘했어요. 

뽀또와 만난 지 이제 3년 차인데 이제야 가족으로 받아들여진 느낌이에요. 뽀또는 처음부터 경계심이 심하던 고양이였어요. 사진 처음에 찍었을 때도 찍고 바로 도망가고, 쓰다듬기까지 6개월이 걸렸어요. 그러다 보니 어떤 고양이라도 친해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어요. 그래서인지 길고양이 찍을 때 인내심이 생긴 것 같아요. 처음 만난 고양이가 친해지기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도망가며 경계하는 고양이를 봐도 ‘쟤도 찍을 수 있어’라는 그런 자신감이 있어요.


집냥이가 된 뽀또와 오레오 ⓒ진소라


마지막으로 앞으로 남기고픈 사진 작업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어요?

다음 연재와도 관련이 있는데, 고양이들의 가족애에 대해서 다뤄보고 싶어요. 엄마와 아이들뿐만 아니라, 암컷끼리 사는 애들도 있고, 대가족처럼 할머니부터 손주까지 사는 애들도 있고요. 고양이는 혼자서 살아간다고 생각을 많이 하는데, 고양이도 가족이 있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줘서 우리와 비슷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도록 하고 싶어요. 사람과 고양이 사이의 공감대를 형성해서 길고양이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작가 소개> 진소라

2019년 봄 우연히 만난 동네 고양이 ‘뽀또’를 카메라에 담기 시작하면서 길고양이의 매력에 빠져, 3년째 길고양이 사진작가로 살고 있다. 길고양이와 숨바꼭질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꿈꾸며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다. 저서로 《숨은 냥이 찾기》가 있다.


인터뷰_오후

사진_진소라

https://www.instagram.com/catsoracats/




오후의 인터뷰 | 아티스트의 날 것의 생각을 공유합니다. 아티스트라는 직업적 특성을 보유하고, 작품에 뚜렷한 경향성을 나타내며 사회적 자아실현을 실천하는 예술가의 고뇌와 삶의 방향을 대화를 통해 엿보고, 소개하는 인터뷰입니다. 이 작은 대담이 대중의 작가 발견에 요만큼 기여하고, 다음 신인 아티스트의 자아 창조에 스리슬쩍 참고되길 바라는 인터뷰어의 마음이 있습니다. 오후의 인터뷰는 아티스트를 넓은 범위에서 칭하고 있습니다. 일상의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는 사람을 아티스트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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