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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 May 17. 2023

오후의 인터뷰 9화: 정다형

티에리스 정다형 대표가 전하는 차와 함께 하는 시간

2022년 5

일상비일상의틈 앱에서 진행했던 <오후의 인터뷰>를 옮깁니다.



티 소믈리에라고 알고 있는데요. 하시는 일에 관한 소개를 부탁드려요.

세상 모든 차 산지를 여행하면서 생산자들을 만나고 찻잎을 고릅니다. 차를 판매하고 있지만 저는 이야기를 팔고 있다고 생각해요. 차만 산다고 생각하면 굳이 여행을 다닐 이유는 없거든요. 꾸준히 여행을 다녔던 이유는 산지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 생산자들의 모습과 이야기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일이 저의 진짜 일이라고 생각해요.


차를 언제 처음 접하시게 되셨어요?

중학교 때 읽은, 소설 『은하영웅전설』을 정말 좋아했어요. 그 책의 주인공이 홍차를 마시거든요. 홍차가 작전 키워드로 쓰이기도 하죠. 소설 속 주인공한테 푹 빠져서 '나도 홍차 마실 거야!'하고 다짐했었죠. 그러다, 1995년 동네에 커피와 차를 파는 작은 매장이 생겼어요. 차 박스나 깡통이 귀엽잖아요. 거기에 홀렸죠. 당시 제 일주일 용돈이 만 원이었는데, 다른 곳에 쓸 돈을 아끼고 아껴서, 티백 25개가 든 만 원짜리 박스 하나를 사서 한 달 내내 학교에서 차를 즐기곤 했었죠. 홍차를 마셔야겠다고 불을 당긴 것은 소설이었고, 차에 직접적으로 뛰어들 수 있게 된 계기는 근처의 찻집이었던거죠.


차 산지는 어떻게 처음 가게 되셨어요?

19살에 서울에 올라와서 생각했던 게 이제 차 덕질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어학연수로 간 영국에서는 열심히 차를 마셨죠. 여행을 갈 때도 차 산지가 있거나 차 가게가 있는 곳으로 여행을 갔어요. 그렇게 차 산지를 좀 일찍 다녔어요. 그때는 오롯이 차 덕후의 관점에서 궁금해서 방문하게 되었죠. 가서 봤더니 너무나 매력적이었어요. 차 나무가 몽글몽글하고, 또 새싹이 필 때쯤 되면 차나무 어린잎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거든요. 그렇게 차 밭의 풍경에 매료되어 차를 더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찻잎을 말리는 모습 ⓒ티에리스


좋아하는 차 산지가 있나요?

가장 매료되었던 곳은 인도의 다르질링이라는 곳인데요. 인도의 다르질링은 히말라야의 산맥 자락에 있거든요. 심지어 다르질링의 시내 중심지는 해발 2천 미터의 고지대에 있어서 인도의 여느 관광지와는 다르게 깨끗한 편이에요. 영국 사람들의 휴양지로 시작했던 곳이라 방갈로 양식의 저택들이 아직 다원 안에 많이 남아있어요. 프라이빗 리조트도 있는 곳이 있어서 머물면서 차도 마시고, 차 밭 투어도 할 수 있고, 기념품도 살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있어요. 다르질링에 가면 19세기 후반의 영국 귀족 아가씨 놀이를 할 수 있어요. 차를 부탁하면 농원의 최고의 차를 가져다주고요. '오늘은 여기 앉아서 애프터 눈 티를 즐길래요.'라고 말하면 원하는 곳에 테이블과 레이스 달린 양산과 3단 플레이트 디저트를 마련해 줘요.


‘차’라고 지칭하는 범위가 굉장히 넓지 않나요?

원래는 '차茶' 또는 'Tea'라고 하면 차 나무를 의미해요. 차 나무에서 나는 이파리에서 가공한 것을 차라고 말해요. 그런데 요즘은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 등 모든 나라에서 광범위한 의미의 '차'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됐어요. 우리나라에서 차라는 의미를 광범위한 의미로 쓰게 된 데에는 끓여서 탕으로 만들어 마시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일상 음료가 되면서 차화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유독 다른 나라에 비해서 차의 가짓수가 많은 편이에요.


차 나무도 종류가 여러 가지죠?

차 나무는 변이종들이 굉장히 잘 생기는 식물종이래요. 원래 윈난성에서 생긴 차 나무들은 키가 15미터 정도 돼요. 이들을 점차 추운 지역으로 옮겨 재배하면서 키도 작아지고, 잎도 두꺼워지고 작아지면서 지금의 차 나무 형태가 되었다고 해요. 우리나라나 일본은 윈난성에 비해서 추운 곳이거든요. 그래서 여기 차 나무들이 모두 작아진 게 세대 간의 진화와 순화를 통해서 만들어진 품종이라고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제조하는 과정에 따라서 다른 차가 나오는 게 되는 거죠?

녹차 나무나 홍차 나무가 따로 잊진 않은데요. 어떤 차를 만들기에 좀 더 적합한 품종이 있어요. 제조하는 과정에 따라서 찻잎 하나 가지고도 모두 6가지의 차를 만들 수 있다고 해서 보통은 6대 차류라고 불러요. 녹차, 백차, 황차, 청차(우롱차), 홍차, 흑차(보이차, 보이숙차) 이렇게 여섯 가지가 있어요. 


찻잎이 녹아든 유리 주전자 ⓒ티에리스


가장 애정 하는 차가 있을 것 같아요.

매일 마셔도 질리지 않는 차겠죠. 그런 의미에서 아삼을 가장 사랑해요. 중국에서 훔친 차 나무로 재배에 성공한 것이 다르질링이라면 아삼은 거기에 원래 차 나무가 사는 곳이에요. (다르질링과 아삼은 차 재배지 이름을 딴 차의 이름이다.) 보통 차나무의 고향이라고 이야기하는 곳이 중국의 윈난성 일대인데요. 윈난성에서 서쪽으로 쭉 가면 아삼이 있어요. 아삼의 차 나무들을 영국 사람이 발견을 해서 만든 최초의 플랜테이션 농원이에요. 아삼은 영국 홍차의 심장이자 중추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아삼을 마시면 누구나 '마셔본 것 같다.'라고 말씀하세요. '홍차 맛 홍차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아삼이죠.


기분에 따라 고를 수 있는 차가 있을까요?

열이 오를 때, 화가 날 때는 백차를 권해요. 한방에서 백차는 열기를 가라앉혀주는 효과가 있데요. 백차를 진하게 시원하게 내려서 마셔요. 가끔은 이열치열이라고 백차를 따뜻하게 우려서 마시기도 해요. 추울 때는 보이숙차나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아삼 같은 다원 홍차를 마시지요. 외롭거나 쓸쓸할 때는 밀크티를 달달하게 해서 마셔요.


차보다는 커피를 즐기는 사람이 더 많잖아요. 차만의 매력이라고 하면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커피와 차 모두 잠에서 깨게 하고 정신을 맑게 하는 건 똑같은데, 차는 명상이나 요가하시는 분들이 많이 즐기잖아요. 그 이유가 바로 테아닌이라는 성분에 있어요. 테아닌은 우리를 좀 차분하게 하고, 집중력을 높여줘요. 차에 있는 테아닌 성분은 세로토닌을 증진시키는 데 도움을 주죠. 커피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정 작용을 함께 하기 때문에 조금 많이 마셔도 덜 들뜨게 하고 차분하게 만들어주죠. 그리고 요즘 들어서 차가 각광받고 있는 이유가 현대인들은 너무 바쁘게 열심히 살잖아요. 그러면서 누가 나를 좀 붙잡아주었으면 할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차가 정신의 닻이 되어준다는 생각을 했어요.


차를 접하는 초보 테이스터에게 주로 어떤 차를 권하나요?

우리기 쉽고, 질리지 않는 차를 권하고 싶어요. 티백도 나쁘지 않고요. 뭔가 그래도 마셔서 질리지 않는 차를 고르셨으면 좋겠는데요. 처음에는 내가 무슨 차를 좋아할지 모르잖아요. 보통 집에 있는 차부터 시작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양과 시간과 온도만 잘 조절하면 누구나 차를 우릴 수 있어요. 저는 항상 차를 컵라면에 비유해요. 물 붓고 기다리면 되니까요. 차가 진하다면 물을 더 부으시면 되고요. 취향을 살펴보는 일이 결국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책을 쓸 때는 레시피 가이드를 쓰긴 했지만, 차는 어떻게 마시라고 종용하지 않는 편이에요. 실제로 영국을 가도 영국 사람들은 차를 마음대로 우려먹어요. 차를 전자레인지에 돌려 마시기도 하고요.


차를 즐기기 위한 간단한 준비물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뜨거운 물과 컵만 있으면 돼요. 차를 처음 접하기가 어려우시다면, 차 전문점에 한 번 방문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작가소개> 정다형

티 전문 브랜드 '티에리스' 대표 티 디렉터. 세계 각국의 차 산지를 여행하며 찻잎을 고르고 이야기를 전한다. 영국과 인도, 일본에서 차를 공부했다. 차 문화를 가장 가까이서 전하기 위해 ‘티 테이스팅 룸’ 운영한다. 2022년 1월 『차의 계절』을 출간했다.


인터뷰_오후

사진_정다형

https://www.instagram.com/tieris_tea/




오후의 인터뷰 | 아티스트의 날 것의 생각을 공유합니다. 아티스트라는 직업적 특성을 보유하고, 작품에 뚜렷한 경향성을 나타내며 사회적 자아실현을 실천하는 예술가의 고뇌와 삶의 방향을 대화를 통해 엿보고, 소개하는 인터뷰입니다. 이 작은 대담이 대중의 작가 발견에 요만큼 기여하고, 다음 신인 아티스트의 자아 창조에 스리슬쩍 참고되길 바라는 인터뷰어의 마음이 있습니다. 오후의 인터뷰는 아티스트를 넓은 범위에서 칭하고 있습니다. 일상의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는 사람을 아티스트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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