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일기가 아니라 살아 있는 날들의 기록입니다.
2026년 2월 24일 화요일 비
- 오늘 감정 점수: 4
- 몸 상태: 4
- 떠오른 생각: 의사를 만나면 이것저것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
다시 정신과를 다니기로 한 건 아무래도 이곳에서 머무는 시간이 걸어질 것 같아서였다. 며칠을 살더라도 조금만 더 마음 편하게 살아가면 좋으니까. 조금만 더라는 욕심이 다음 선택을 하게 한다.
A4용지 3장에 그간 있었던 일과 받았던 치료에 대해 요약 정리해서 프린트해서 갔다.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의 병원은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아서 좋았다.
예약 이름을 확인하고, 30분 정도 되는 초진 검사 테스트 작성을 마치고 진료실 안으로 들었다. 의사는 자기 옆으로 와보라더니 모니터에 나타난 수치를 보여주며 스트레스 정도가 높고, 특히 우울증이 높다고 설명해 줬다. 결과는 조금 의외였다. 나는 지금 예전의 우울보다는 조금은 나은 상태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우울증이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높았다.
‘역시 치료가 필요한 상태구나…‘
오히려 다행인 걸까. 다시 약물 치료를 시작하면 되니까. 이제는 우울증의 완치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냥 조금씩 관리하면서 사는 병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나의 우울증을 ‘반려병’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나도 이렇게 힘겨운데 내 주위의 가족들은 나를 지켜보며 얼마나 지겹고, 힘들까. 아예 완전히 사라져 버리면 이런 식으로는 더 이상 힘들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니까. 지금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편이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짐이 되지 않겠지.
60대 중반은 훨씬 넘어 보이는 의사에게 내가 이전에 병원을 다녔다고 했다. 의사는 이전에 어떤 약을 먹었냐고 물어보았다.
그전에 먹던 약봉지를 내밀었다.
“이거 말고, 처방전이 필요해요.”
“처방전은 받아왔는데 일… 잃어버렸어요…”
나는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약봉지에 약 이름이랑 용량이 쓰여있어요.”
의사는 노안 때문인지 안경을 수시로 올려서 눈을 찡그리며 약 성분 하나하나를 컴퓨터에 기록했다. 그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나는 진료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의 제목을 읽었다. 철학서부터 고전까지 다양한 책이 꽂혀 있었다. 두꺼운 책을 세트로 책장에 넣어둘 수 있는 것이 부러웠다. 저 세트는 사려면 몇 십만 원은 들 텐데… 그러다 창을 부딪히는 빗방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8층의 병원은 조망이 좋았다. 몇 분이나 걸렸을까? 의사는 지금 가장 불편한 게 뭐냐고 물어봤다.
“무기력한 거요.”
하고 짧게 대답했다.
의사는 그전에 먹던 약은 종류가 많고, 용량이 적어서 효과가 없었을 거라고 했다. 의사에게 그간 증상을 적어왔던 A4용지를 내밀었더니 3장의 종이를 5초로 안 되는 시간 동안 펄럭이더니 ‘이건 다음에 하고요’ 하고 나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짧은 상담은 따로 하지 않는 걸까. 의사는 그럼 이제 나가 보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나는 일어나다 말고 의사에게 다른 증상을 얘기했다.
“참, 제가 공황장애도 있는데요.”
“증상이 어때요?”
“너무 높은데 한가운데나, 사람이 많은 지하철에 있으면 숨 쉬기 어렵고 어지러워요. 쓰러질 것 같아요.”
“그럼, 필요시 약을 처방해 드릴게요.”
“네, 약이 맞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이틀 뒤에 방문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인사를 마치고 진료실을 나오니 대기실에 있는 몇몇이 나를 쳐다보았다. 진료가 오래 걸렸기 때문일까. 진료가 가끔 오래 걸려서 다른 사람을 기다리는 게 하는 걸 참을 수 없어서 더 말하고 싶은 걸 꾹 참고 진료실을 나오게 된다. 의사와는 어떤 상담도 할 수 없었다. 첫 상담이니까. 이제 첫걸음이니까.
약을 받고, 우산을 찾아 1층으로 내려갔다.
비가 계속 내린다. 비는 좋은데 여긴 바람이 너무 많이 분다. 바지 옆이 젖는 건 싫다.
by 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