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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혼 Feb 26. 2020

<이른 나이에 이른 '기레기'>Emotion

 감정 죽이기... 이제 와서 누굴 원망하랴

2016년 3월, 경찰과 검찰 출입을 끝내고 사회부 사건팀에서 정치부 정당팀으로 옮겼다. 5월 정도였나?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월급이 밀리고 정치부와 사회부는 하나가 되면서 난 정치사회부 국회팀 기자가 됐다. 밀렸던 월급만 800만원 가까이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난해 퇴사하기 전까지 밀린 월급은 1200만원 정도? 됐을 것 같다. 지금은 다행히 퇴직금까지 다 받았지만.


당시 기사를 쓰긴 써야 하는데 취재에 필요한 돈도 주지 않으니 욕심이 생기질 않았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인간이 될 거야'라며 열심히 뛰다 보니 내가 한 달에 쓰는 돈은 무려 120만원 정도 됐다. 국회 보좌관 비서관 선배들 등 술자리 비용까지 합친 금액이다. 대부분 택시비가 컸다. 


비용은 두 번째 문제였다. 첫 번째 문제는 바로 현장에서 느끼는 분노였다. 난 '감정 컨트롤'을 잘하지 못하고 욱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기자'로서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갖추지 못했다. 취재를 당하는 대상이 법적으로 위반되는 게 없다며 도의적으로도 잘못한 게 없는 것 같다고 전하면 욕하고 멱살을 잡으면서 고소 고발을 당하기 일 수였다. 그렇게 지난 5년 간 7번 정도 재판을 받은 것 같다. 대부분 명예훼손이었지만 법정구속을 당하기도 했다. (이건 다음에)


분노의 찼던 난 내가 해결사인 것 마냥 행동하고 취재했다. 언론에 해결사는 존재해선 안 된다. 죄의 유무와 경중은 사법부가 판단할 일이다. 내가 매우 편파적이고 편향적인 보도를 해왔다는 지적이다. 


어찌 됐든 간에 욱하는 성격의 난 다혈질이었고 선배들의 걸림돌이기도 했다. 열정적이기만 한 좌충우돌 럭비공이었다. 진짜 말도 안 듣는 '미친개'였다.  


난 어떤 분노였나

분노가 곧 내가 취재하는 데에 필요한 원동력이었다. 내가 '민폐 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2018년 초다. 참 빨리도 알았다. 


3년간 내가 깨달은 건 분노에 드는 비용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나의 분노는 다른 이들에게 신체적·정신적 손상을 입혔고, 그로써 그들과의 관계를 단절시켰다. 직장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발생하는 경제적 스트레스를 견뎌야 하지만, 자존심 하락 등등 이루 다 적을 수 없을 정도의 대가를 참지 못하면 곧 '자기 파괴'의 길로 들어서곤 했다. 분노를 제어하기 위한 계획과 행동이 필요했다.


왜 분노를 참을 수 없을까?  모든 인간이 감정을 담아두는 그릇을 가지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릇에는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격한 감정을 담아둘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그릇은 풍선에 가깝다. 화가 나지 않았을 때 풍선은 수축한다. 그러다 화가 나면 풍선은 팽창한다. 어떤 사람들은 잘 늘어나는 풍선을 타고난다. 그래서 쉽게 화를 내곤 한다. 이들의 풍선은 끝도 없이 늘어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잠재적 분노
분노는 자신이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 천천히 누적되기도 한다. 특정 개인 혹은 자신에게 피해를 주었다고 생각하는 모임이나 집단을 향해 분노가 장기적으로 쌓였을 때, 자신이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상황에 대해 병적인 집착을 보인다. 그리고 가해자 집단에게 도덕적인 분노와 증오를 나타내며 성격 변화를 일으키거나 복수를 하는 상황, 가해자를 계획적으로 습격하는 등의 행동을 한다.

생존성 분노
욱하는 성질은 흔히 자신의 존재 가치를 결정짓는 특정 부분에 위협이 가해졌을 때 폭발한다. 가장 직접적인 위협, 즉 육체적으로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살아남기 위한 대응책으로 발생하는 분노를 생존성 분노라고 부른다.

체념성 분노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거나, 중요한 상황에서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사실을 참기 힘들 때 체념성 분노가 일어난다. 이러한 분노는 하늘에 대고 삿대질을 하며 왜 내 아들을 데려갔냐고 신을 향해 절규하는 아버지의 분노처럼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서 비롯된다.

버림받음에서 비롯된 분노
외로움, 초조함, 불안감 등을 잘 견디지 못할 때, 예를 들어 헤어진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귀고 있는 데도 그 사람이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경우가 그렇다. 헤어진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으려고 전화를 걸지만, 결국 다시는 꼴도 보기 싫으며 재수 없다고 소리치다 전화를 끊어버리게 된다.

욱하는 성질, 특히 돌발성 분노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했을 때 다른 이들에게 정신·육체적 피해를 주고, 인간관계를 깨트리며,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됨과 동시에 신뢰를 잃고, 자기혐오에 빠질 수 있다. 


쉽지 않은 '나 다루기'

2017년 초였던가? 뉴스타파 선배가 나에게 말했다. 


"혁진아, 넌 감정 컨트롤에 능숙하지 못하다"


그렇게 난 '돌발성 분노'를 컨트롤하기 위해 내 감정을 죽여왔다. 항상 겸손해지자며 내가 잘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 말이다. 내가 잘 분노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공감'이라는 놈 때문이었다. 


나에겐 술을 마시면 진지한 사람이 되고 상대방의 고민 또는 감정에 공감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 하여 공감만 한다면 심리상담사를 하지 왜 기자를 했냐고 자책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렇게 내가 굳이 그들의 슬픔을 들어줄 필요가 없다며 냉정하게 판단하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말자고 뇌리에 박아 넣기 시작했다.   


여기서 발생한 문제는 공감을 지워갈 때마다 내 열정과 목적이 흐릿해진다는 느낌이었다. 공감을 지울수록 내가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성을 잃어버리고 걸어 다니는 시체처럼 멍한 존재가 되는 것 같았다. 


우울증 약을 먹으며 버티고 공감을 지워가며 얻은 건 스트레스였다. 또 그 스트레스를 혼자 떠안아가면서 몸을 썩혀간다. 


현재 와서 깨달은 건 적당한 분노와 작은 공감만 필요하다는 것이다. 타인을 너무 크게 공감해줄 필요는 없다. 공감의 대가는 쓰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감이라는 은혜에 '결초보은'하지 않는다. 기대라는 것을 접어둬야 한다는 것이다.   


적당한 분노도 필요하다. 스트레스를 풀 수도 있고 자기 파괴의 길로 들어서지 않기 위한 한 가지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타인에게 피해를 줘선 안 된다. 현재의 난 분노를 최대한 공정하게 기사로 푼다. 오로지 팩트로 갑을 지적하고 비판하려 애쓴다. 


적당한 분노와 작은 공감. 금방 끊어질 것 같은 거미줄을 위에 올라서서 '줄다리기'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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