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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재희 May 27. 2018

넛지(Nudge)란 무엇일까?

 넛지와 인간이 체계적으로 틀리는 방식들

 이 글은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의 공저 넛지(2008)를 읽고 썼습니다. 대부분 책의 내용을 요약, 재생산한 것임을 미리 밝힙니다.



 

 당신은 심각한 병에 걸려 수술을 앞두고 있다. 의사는 당신에게 이 수술을 받은 사람 100명 중 90명은 5년 후에도 살아 있다'라고 말한다. 90%라는 높은 확률로 살아남을 수 있다니 수술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에게는 병원에서 만난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친구가 있다. 그런데 그는 수술을 받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당신이 왜 그러느냐고 묻자 친구는 대답한다.


  "의사가 그 수술을 받은 100명 중 10명은 5년 이내에 죽었다고 하던 걸."


 100명 중 90명이 산다는 진술과 100명 중 10명이 죽었다는 진술은 정확히 같은 정보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의사가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에 따라서 환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처럼 선택의 틀을 형성하는 것을 프레이밍(Framing)이라고 한다. <넛지>에 의하면 이는 환자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뿐만이 아니라, 의사들 역시 '90명이 산다'라는 방식으로 정보를 들었을 때 수술의 권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한다.

 


인간의 선택은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프레이밍은 인간이 언제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니며, 환경에 따라 선택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넛지>에 제시된 '인간이 체계적으로 틀리는 방식'은 프레이밍만이 아니다. 각 용어에 대한 설명은 아래에 따로 달겠다.


 넛지는 원래 '슬쩍 찌르다'라는 뜻인데 탈러와 선스타인은 이를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는 행동경제학의 용어로 만들었다. 만약 의사가 수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결정해서 10명이 죽었다는 방식의 진술을 제공한다면 이 역시 환자에게 특정 선택을 유도하는 넛지를 가한 것이다. 프레이밍의 예시처럼 인간이 예상 가능한 오류를 범한다는 것은 넛지가 우리에게 충분히 긍정적인(혹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온전히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단순히 정보가 제시되는 방식, 혹은 선택지들의 배열 순서 등에 영향을 받지 않고 객관적인 정보만을 토대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예를 들어서 더 이상 읽지 않는 잡지를 계속해서 구독 중인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합리적인 경제 주체라면 매달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구독은 효용이 떨어졌을 때 중지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은 매달 이루어지는 자동 결제를 취소하는데 들어가는 약간의 노력이 귀찮아 기껏해야 냄비 받침 정도의 효용을 제공하는 잡지를 몇 달씩 더 구독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을 현상유지 편향이라고 한다.


 이는 디폴트 옵션이 적용된 것으로,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았을 때 적용되는 옵션을 말한다. 즉 잡지를 취소한다는 선택을 하지 않으면, 다음 달에도 잡지를 받고 싶다는 의사 표시를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연장 계약이 갱신되는 것이다. 무료 구독권을 주고 기간이 경과된 이후에 직접 취소 신청을 하지 않는 경우 자동으로 결제가 되는 시스템 역시 잡지사가 고객에게 가하는 일종의 넛지다.


 사람들은 디폴트 옵션에 지대하게 영향을 받으므로 이는 <넛지>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쓰인다. 예를 들어 수요에 비해 공급이 크게 부족한 장기 기증의 경우, 사람들이 예기치 못한 사고로 사망했을 시 사전에 장기 기증에 동의나 거부의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을 때의 디폴트 옵션이 '동의'로 정해져 있다면 장기 기증률이 어마어마하게 상승할 수 있다. 사람들은 특정 사안에 대해 타성, 다른 말로는 현상유지 편향을 갖기 때문이다.


 물론 넛지가 '자유주의적'이라면 기증이 강제가 되어선 안 되기에 사람들은 손쉽게 '옵트아웃'할 수 있어야 한다. 옵트아웃이란 당사자가 거부 의사를 표현하는 시점부터 해당 옵션의 적용이 중지되는 방식이고, 반대로 옵트인은 당사자가 허용의 의사를 표시하기 전에는 해당 옵션을 적용할 수 없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장기 기증의 디폴트 옵션을 동의로 정한다면, 이에 대한 거절의 의사표시 전까지는 장기 이식에 동의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옵트아웃 방식이 채택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특정 사안에 대해 옵트인과 옵트아웃 중 어느 방식을 적용하는 가에 따라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고, 의도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위해 옵트인/아웃을 활용한다면 이 역시 넛지가 되는 것이다.


 좋은 넛지는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고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 바람직한 결과를 위한 선택 설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넛지>에 담겨있다. 스스로를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라 부르는 탈러와 선스타인은 사회적으로 가장 비용이 낮은 방식으로 약자들을 도울 수 있는 부드러운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완전히 합리적인 경제주체인 이콘(econ)들과 달리 인간들은 실수를 하기 때문에 개입은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넛지>에는 2008년 당시 미국의 사회적 문제에 대한 제안들이 많이 담겨있지만, 2018년 한국의 우리는 그보다 인간이 체계적으로 틀리는 방식을 파악해봄으로써 보다 똑똑한 선택을 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넛지>에 제시된 인간이 체계적으로 틀리는 방식


1. 자동시스템 vs 숙고시스템

 자동시스템은 직관적인 반응을, 숙고 시스템은 의식적인 사고를 말한다. 인간이 가끔 마땅히 숙고 시스템을 사용하면 정답을 찾을 수 있음에도 자동시스템으로 성급히 답을 내리는 경우가 있다. 아래의 문제에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답을 바로 말하고, 다시 잠시 숙고를 해본 뒤에 답을 내려보자.                    

(1) 5대의 기계로 5개의 장치를 만드는 데에는 5분이 걸린다. 그렇다면 100대의 기계로 100개의 장치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몇 분인가?                                                                      

(2) 어느 호수에 커다란 수련 잎들이 떠 있다. 매일 이 수련 잎들이 차지하는 너비는 두 배로 늘어난다. 수련 잎들이 전체 호수를 덮는데 48일이 걸리다면 호수의 절반을 덮는 데에는 얼마나 걸리겠는가?

<넛지 43p>


2. 기준선 설정

 의사결정에 임의의 기준선을 설정하고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조정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전혀 적절하지 않은 기준을 단지 자신이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의사결정에 개입시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기부금의 선택지들은 그 자체로 기부액에 영향을 미친다. '50만 원 / 100만 원 / 150만 원 vs 100만 원 / 200만 원 / 300만 원'으로 기부금액이 제시되었을 때, 합리적인 의사결정자라면 선택지들의 상대적인 값과 상관없이 자신의 형편에 맞는 선택을 해야 하지만 인간들은 일반적으로 후자가 제시되었을 때 더 큰 금액을 기부하게 된다고 한다.


3. 입수 가능성

 리스크의 확률을 추정할 때 범하는 오류로 사람들이 관련 사례가 얼마나 쉽게 떠오르냐를 기준으로 그 확률을 추정한다는 것이다.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생생한 죽음의 원인 (테러, 자연재해 등)은 그 확률이 실제보다 높게 추정되고, 훨씬 그 빈도수가 높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는 원인들(천식 발작 등)은 그 확률이 실제보다 낮게 평가된다. 또한 최근에 일어난 사건은 더욱 두렵게 느껴지기 마련인데, 예를 들어 테러 소식을 최근에 가까이서 접한 사람은 자신이 테러로 사망할 가능성이 매우 낮음에도 그 리스크를 매우 민감하게 인식한다는 것이다.


4. 대표성

 A가 범주 B에 속할 가능성을 판단하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사람들은 A가 B의 이미지나 전형과 얼마나 유사한지 자문함으로써 그 답을 찾아낸다는 것이다. 불규칙적인 요동을 마치 무언가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현상도 포함된다.


5. 비현실적 낙관주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을 평균 이상이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모든 운전자들 가운데 자신의 운전 실력이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90%에 달한다고 한다. 내가 하는 일은 왠지 반드시 성공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곤 하지 않는가? 그전에 같은 방식으로 실패했던 누군가도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5. 손실기피

 사람들은 똑같은 대상을 놓고도 그것을 잃었을 때 느끼는 고통이 얻었을 때 느끼는 행복보다 크다고 한다. 예를 들어 동전의 뒷면이 나오면 X만큼의 돈을 고, 앞면이 나오면 10만 원을 잃는 내기를 하기로 한다고 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때 X가 20만 원 정도는 되어야 내기를 할만한 것으로 여긴다고 한다.


6. 현상유지 편향

 '늑장 행위' 즉, 앞서 언급한 잡지의 구독 취소를 미루는 것과 같은 상황을 말한다. 잡지 배급 담당자들은 실제로 구독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해야 하는 경우보다, 자동으로 연장 갱신이 이뤄지고 전화를 걸어야만 취소가 가능한 경우에 자동갱신 확률이 훨씬 더 높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한다.


7. 프레이밍

 마찬가지로 앞서 예시를 언급했다. 정보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선택의 틀을 형성하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는 신용카드 가격을 '정상가'로 현금을 '할인가'로 표시하는 방식을 들 수 있다. 신용카드 가격이 더 비싼 것은 신용카드사에 지급되는 수수료 때문이지만, 신용카드 가격이 '할증가'로 표시되고 현금이 '정상가'로 표시되었다면 신용카드는 지금처럼 활발하게 사용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넛지(Nudge), 리처드 탈러 & 캐스 선스타인, 2008, 리더스북




 어제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아이스크림 할인점에 들렸다. 원가가 1,000원이라는 아이스크림을 500원에 구입하면 '싸게 샀다'는 기분이 들어서일까? 집 근처에 할인점이 들어선 이후로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빈도가 확실히 늘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해당 아이스크림의 적정 판매 가격은 원래 1,000원이 아니라 500원 언저리가 아닐까? 어차피 365일 내내 50% 가격에 판매할 거라면 번거롭게 두 가지 가격을 적어놓을 필요가 없음에도 아이스크림은 결코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 '정상가'가 표시되어 있다. 이 역시 저렴하다는 인식을 심고 구매를 유도하는 넛지다.


 나는 <넛지>를 읽는 와중에도 넛지를 당한 셈이다. 물론, 할인가 전략은 결코 아이스크림 판매에만 사용되는 넛지가 아니다.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할인을 한답시고 굉장히 크게 정상가를 표시해뒀다면 지금 나를 넛지 하는 게 아닌지 한 번은 의심해봐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휴대폰의 약정기간 또한 넛지의 일종이 아닌가 싶다. 어떤 사람들은 그 '약정 기간'이 다되면 멀쩡한 휴대폰도 바꾸려 들기도 한다. 아마 우리 주변에는 이보다 무수히 많은 넛지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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