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의 의미, 파레토 효율의 개념
과외가 하나 더 들어왔다. 조건이 괜찮다. 무엇보다 위치가 좋아서 지금 하고 있는 과외는 왕복 두 시간이 걸리는 반면, 새로 들어온 집은 걸어서 십 오분이면 닿는다. 주 3회에 교통비도 들지 않아서 이전 과외보다 확실히 새로 들어온 일이 나에게는 훨씬 더 효율적이다. 총 투입되는 비용(시간, 교통비등)을 모두 계산해서 급여와 비교해봐도 새로 들어온 일이 월등히 조건이 좋다. 그런데 과외 둘에 카페 일까지 하려니 조금 부담이 된다.
나는 두 가지 일만 하고 싶다. 세 번째 과외가 추가될 때 급여(한계수입) 보다 피로로 인한 스트레스(한계비용)가 크게 증가될 수도 있다. '나'를 기업이라고 보면 한계수입(MR)보다 한계비용(MC)이 큰 점에서 생산을 하는 것이다. 경제학에서 한계란 한 단위가 추가될 때의 변화분을 의미한다. 즉, 한계수입은 한 단위를 더 생산할 때 늘어나는 수입의 증가분을 의미하고, 한계비용은 한 단위를 더 생산할 때 추가되는 비용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생산량을 늘릴수록 한계수입은 점점 감소하고 한계비용은 점점 증가하므로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둘이 같아지는 점에서 생산을 해야 한다. 중요한 개념이지만 곁다리가 길어지니 미시경제학의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뤄두기로 하자. 핵심은 나에게 세 가지 일을 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선택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아침 8시부터 쉬는 시간 없이 여덟 시간을 일하고, 그대로 한 시간 거리의 과외를 갔다가 돌아오면 밤이 되는 월요일과 화요일은 매우 피곤하다. 그렇다면 나에게 경제적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선택은 들어가는 노력(비용) 대비 급여(산출)가 가장 좋을, 새로 들어온 편안한 거리의 과외를 진행하면서 현재의 일 두 가지 중 하나를 그만두는 것이다.
효율성을 위해 둘 중 무엇을 그만둘 것인가? 일단 카페는 시급은 가장 낮은 반면 노동의 강도는 제일 세다. 내가 일하는 가게는 테이크 아웃 손님이 상당히 많아서 매우 바쁜 곳이며 여름이 다가와서 앞으로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그런데 이제 시작한 지 한 달이다. 슬슬 일이 익숙해진 내가 벌써 그만둬버리면 아마 일이 한참 바쁜 시즌에 새로운 알바를 구하고, 가르치는데 들어가는 비용과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나름 복지는 괜찮다. 항상 밥도 꼬박고박 챙겨주며 무엇이든 먹고 싶은 음료도 만들어 마실 수 있다. 놀러 가고 싶으면 미리 말하라는 형에게 한 달만에 그만둔다는 말을 하는 것은 차마 도리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경제학에서 '도리'때문에 효율을 포기하라고 가르치지는 않지만 말이다.
이동만 왕복으로 두 시간이나 걸리는 과외를 그만두면 될까? 이제 세 달 째인 그 과외는 교통비와 이동시간을 고려하면 최저임금과 크게 차이 날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내가 더 좋은 조건의 일이 생겨버렸다고 덜컥 그만두면 학생은 또 다른 과외 선생님을 알아봐야 한다. 그 또한 비용이며 학생에게 선생님이 자주 바뀌는 혼란스러움은 확실하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효율적인 선택과 의미 있는 선택이 동의어는 아니다. 그래서 나는 다소 비효율적인 선택을 하기로 했다. 해오던 기존의 일을 유지하면서, 한계비용이 한계효용보다 더 큰 점에서 생산을 하거나(세 가지를 다한다는 뜻이다) 새 과외를 포기하는 둘 중 한 가지로 말이다.
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효율성, 그러니까 투입 대비 산출이 가장 좋은 선택지를 찾는 것에 능하다. 그 때문일까? 대학교 신입생 시절, 경제학개론 교수님께서 효율성의 정의에 대해 설명하시곤 꼭 덧붙이시던 말씀이 있다. 정확한 문구는 아니지만 옮겨보겠다.
"경제학을 배우는 대학생들이 학부에서 3~4년쯤을 보내고 나면, 마치 언제나 효율성이 가장 중요시되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효율성은 아닙니다. 앞으로 계속 경제학을 배우겠지만 무조건적으로, 언제나 효율성을 최고라 생각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합시다."
한마디로 효율성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가장 효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최고의 가치는 아니다. 나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것보다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가 우선하는 상황도 있다.
효율성이란 기본적으로 투입 대비 산출에 대한 개념인데, 경제학에서는 '한 사람의 후생을 감소시키지 않고는 다른 사람의 후생을 증대시키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로 정의되기도 한다. 이 정의는 정확하게는 파레토 효율, 혹은 파레토 최적이라는 용어로 사용된다. 말이 어려운 것 같지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마트에 계산대가 3개 있고 기다리는 사람은 9명이 있다고 하자. 사람들이 골고루 3명씩 서있다면, 각 줄의 세 번째에 있는 사람들의 기다림을 감소(후생이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그 앞의 누군가를 뒤로(후생이 감소) 보내지 않고는 방법이 없다. 이는 효율적인 상태인 것이다. 그런데 만약 9명이 세 개의 계산대에 4명, 3명, 2명으로 줄을 서 있다면, 첫 번째 줄의 네 번째에 서 있는 사람을 두 명만 서 있는 줄로 옮김으로써 그 사람은 더 빨리 계산을 할 수 있고, 그 와중에 원래 줄을 서 있던 사람의 후생은 하나도 감소하지 않는다. 즉, 다른 사람의 후생을 감소시키지 않고 한 사람의 후생을 늘릴 수 있는 상태이므로 4명, 3명, 2명으로 줄을 서 있는 상태는 효율성이 달성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 글의 오늘 조회수가 2만을 향해 가고 있네요. 요즘은 꼬박꼬박 카카오톡 채널에 글이 소개되는 것 같아요! 사실 이번 글은 시간을 많이 들여서 쓴 게 아닌 데다가 일상적인 성격이 강해서, 생각보다 너무나 많은 분들이 보고 가셔서 조금 당황스럽기도 해요:)
후기(?) 비슷한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처음 이 글을 쓰게 된 계기였던 '조건 좋은' 새로운 과외는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서 못하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편하자고 하던 일들 중 하나를 그만뒀으면 어찌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네요. 뭐, 결과적으로는 작은 일이지만 나름의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던 게 도움이 된 셈입니다. 이래서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하는 걸까요?
경제학은 여전히 저에게도 어렵고, 본 매거진은 항상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쓰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대화는 언제나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