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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May 13. 2018

감자 없는 닭볶음탕을 먹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간단한 탐구

 인플레이션 : 화폐 가치는 떨어지고 물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현상


 자주 가던 집 앞의 국밥집이 한 그릇에 6천 원이던 가격을 7천 원으로 올렸다. 그뿐만이 아니라 영세 자영업 가게가 즐비하게 늘어선 이 대학가의 많은 식당들이 각 메뉴의 가격을 500원이나 1,000원 정도 씩 인상했다. 대부분 아르바이트 생을 고용해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기에 최저임금인상의 영향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물론, 임금인상을 이유로 이때다 하며 가격을 올리는 업체도 있기는 하다.


 지난 2018년 4월의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1.6%라고 하지만 내가 느낀 물가는 그보다 좀 더 크게 올랐다. 최근 식료품 물가의 상승률이 가장 높기 때문에 주부들이 느끼는 상승률은 더 클 것이다. 나도 지난 주말에 닭볶음탕을 만들기 위해 마트를 들렸지만 카트에 감자를 차마 담지 못했다. 감자는 전년 4월 대비 무려 76%나 값이 올랐다. 이처럼 물가 상승률은 다양한 품목의 평균을 낸 것이기에 개인의 소비성향에 따라 체감되는 정도가 다르다. 


 물가상승이 전반적으로 지속되면 인플레이션이라 부른다. '화폐가치가 하락한다'라는 말의 의미를 헷갈려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쉽게 말해 2,000원으로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실 수 있었는데 아메리카노가 2,500원이 된다면, 2,000원의 가치가 아메리카노 한(1) 잔과 같았다가 물가가 올라 4/5 잔과 같아진 것이다. (2,000원의 화폐로는 한 잔도 마실 수 없게 됐다) 이런 것을 두고 화폐가치가 하락했다고 한다. 그리고 화폐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인플레이션에는, 감자를 사느냐 외식을 하느냐 하는 등의 생활의 작은 일부분에서만이 아니라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손해를 보는 사람과 이득을 보는 사람이 나뉜다. 대부분 인플레이션으로 더 큰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역시나 가난한 사람들이다.



인플레이션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화폐가치가 지속적으로 떨어진다면 일단 일정 금액을 빌려줬다가 받을 예정인 사람들은 손해를 본다. 간단한 예를 위해 아까 내가 말한 국밥집으로 돌아가 보자. 올해 초에 국밥이 6천 원일 때 함께 식사를 한 친구가 돈이 없어서 나는 대신 결제해주고 나중에 월급이 들어오면 받기로 했다. 그리고 바로 오늘, 마침 생활비가 떨어져 가는데 친구가 6천 원을 갚아서 그 돈으로 식사를 하고자 같은 가게를 찾았다. 그런데 이런, 국밥 가격이 6천5백 원으로 올라있다. 분명 나는 친구에게 한 그릇만큼의 돈을 빌려줬는데 그 금액을 받고 다시 같은 국밥을 먹으려니 500원이 더 필요하게 됐다. 내가 받은 금액은 빌려줄 때와 달리 한 끼 식사에 못 미치게 되었으니 손해를 본 것이다. 500원 정도야 괜찮지만 금액이 커지는 채무 관계에서는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경제학 서적들은 보통 이러한 부의 재분배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채권자는 손해를 보고 채무자는 이득을 본다."


 또한 인플레이션은 '가장 불공정한 세금'이라 불리기도 한다. 인플레이션이 화폐가치의 하락을 의미하므로, 물가의 상승 정도가 심각할수록 실물자산을 보유하지 못한 경제적 하층민들이 더욱 큰 고통을 받기 때문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인플레이션에 대해 깊이 탐구한 하노 벡 외 2인의 공동 저서 <인플레이션>의 한 문구는 이런 상황을 잘 드러내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집도, 금도, 유가물도 없다. 지갑 속에 현금이
조금 들어 있을 뿐이다. 인플레이션은 바로 이 현금의 가치가 하락한다는 의미다. "


 또한, 인플레이션이 극심해져 화폐가치 하락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금을 가치 있는 유가물로 전환시키는 방법 역시 돈이 많은 부유층일수록 유리하다. 빈곤층은 화폐가치가 아무리 하락한다고 한들 현금의 대체품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인플레이션으로 고통이 큰 쪽은 항상 가난한 계층일 확률이 높다. 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명목의 정책은 대부분 인플레이션의 위험을 안고 있으므로, 경제적 계층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나뉘지 않도록 확장정책만큼이나 물가를 적정 수준에서 잡으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이론적으로 통화량이 증가하면 화폐가치는 떨어진다. 화폐가치가 곧 돈의 가격을 의미하니 돈의 공급이 증가해서 시중에 통화가 많아질수록 그 가격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화폐의 발행권은 각국의 중앙은행에 있으므로 통화량은 정책에 따라 늘어날 수도 있다. 만약 국가가 인플레이션을 조장한다면 국가에 돈을 빌려준 채권자들의 돈을 조금씩 빼앗아가고 있는 셈이다. '돈을 빌려 놓고 화폐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화폐 발생 이후의 역사에서는 국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자국 화폐를 마구잡이로 찍어낸 사례가 종종 있다. 독일은 세계 대전에서 패배한 후 정부가 전쟁 배상금으로 인한 재정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과도하게 통화를 발행함으로써 '초인플레이션'이라는 혼란을 경험했다. 이러한 폐단 때문에 오늘날 세계 각국은 중앙은행을 정치로부터 분리하여 독자적으로 통화정책을 시행하게 하고 그 독립성을 보장하고자 한다. 현재는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물가안정목표제 채택하여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달성해야 할 목표치를 미리 설정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중앙은행의 정책이 정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인플레이션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주로 얘기했지만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물가 상승이 불가피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필립스곡선은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이 상충관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함수다. 이는 경제 정책에 있어 완전고용과 물가안정을 동시에 달성하려는 목표가 자칫 잘못될 수도 있음을 시사하지만, 이 역시 불변의 진리는 아니다. 


 이것은 여담이지만, 끊임없는 성장을 위해 계속해서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것은 마치 인류가 성장의 굴레에서 무한의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마치 성장을 멈추고는 살아가는 법을 잊은 것처럼.




 왠지 다시 소시민적 질문으로 돌아가는 듯 하지만, 언제쯤이면 닭볶음탕에 다시 감자를 넣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몇 달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초인플레이션과 같은 상황이 아니라면 보통 단독으로 비정상적인 물가 상승을 보이는 식료품의 가격은 다시 내려오기 마련이다. AI 파동 이후 급등했던 계란값은 어느덧 한 판에 4천 원대로 떨어졌다. 사람들은 얻을 수 있는 효용에 비해 지나치게 비싸다고 생각되는 물품을 소비하지 않는 반면, 비싸진 물품을 생산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가격은 그 균형점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다는 것 역시 시장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다. 


 자주 간다던 국밥집 가격은 아마 오랫동안, 어쩌면 영원히 내리지 않을 것이다. 비정상적인 상승과 달리 총수요 증가로 인한 물가 상승은 영구적일 확률이 높다. 최저임금인상이 원인이라면 수요가 아닌 비용 인상으로 인한 공급충격이라 보는 게 맞을 수도 있겠지만 임금 상승은 의도된 효과대로라면 동시에 총수요를 증가시켜야 하고, 어쨌든 두 경우 모두 물가는 상승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이곳은 충분히 수요가 받쳐줄 수 있는 번화가이므로 아마 앞으로는 물가를 따라 계속 지출이 늘 것 같다.


 이런 상황 속에 높아진 물가에 대해 아마 언제 그랬냐는 듯 적응해버리고 신경을 꺼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는 사이 인플레이션은 누군가에게는 고통을 가져다주며 계속해서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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