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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재희 Jun 03. 2020

문과생이 읽어 본 코스모스

앤 드루얀,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

"과학이 예술처럼 그 사명을 진실하고 온전하게 수행하려면, 대중이 과학적 성취를 그 표면적 내용뿐 아니라 더 깊은 의미까지도 이해해야 합니다."

- 아인슈타인

(앤 드루얀,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 26쪽, 사이언스 북스)




1. 광속의 20%

브레이크스루 스타샷 프로젝트 진행 중이라고 한다. 약 20년 뒤에 나노 기술로 만든 초소형 우주선 함대가 탐사를 떠날 것이다. 은하 내에서 태양 다음으로 가까운 별인 센타우루스자리 프록시마까지 거리는 4광년, 빛의 속도로 4년을 가야 한다. 스타샷 나노 우주선은 광속의 20퍼센트를 낼 수 있으니 약 20년이 걸릴 예정이다. 스타샷 우주선이 프록시마에서 얻은 정보가 데이터의 형태로 지구까지 빛의 속도로 온다고 하면 다시 4년이 걸린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총 44년 후에는 프록시마계 탐사 정보를 얻을 수 있다.


44년이라는 시간은 현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학자들 중 상당수가 이 연구의 끝을 볼 수 없음을 암시한다. 인류의 첫 번째 별 탐사, 다른 생명을 발견할지도 모르는 위대한 탐사를 시작한 사람들은 끝을 볼 수 없다. 하지만 그들 덕분에 나와 같은 사람들은, 운이 좋아서 44년 후에도 살아있다면, 그리고 이 이야기를 잊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센타우루스자리 프록시마에 무엇이 있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소식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현재의 연구로는 센타우루스자리 프록시마의 생명 거주 가능 영역에는 행성(프록시마 b)이 있다고 한다. 생명 거주 가능 영역은 모항성과 행성(이를테면 태양과 지구의 관계)의 거리가 적절해서, 그 안에 속한 행성이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아서 생명이 꽃피울 가능성이 있는 영역을 말한다.


인류의 첫 번째 다른 별 탐사에서는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 행성계는 어떤 곳일까?  프록시마 b는 지구와 얼마큼 닮았을까? 그곳에는 강이 흐를까? 다른 생명이 있을까? 아니면 전혀 다른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까? 나도 이렇게 궁금한데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떨까. 자신들이 보낸 초소형 우주선 함대가 보내오는 이웃 행성계의 모습을 직접 보고 싶지는 않을까. 인류가 진실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는  공헌하는 것을 최고의 보상으로 여기는 탐구자들의 자세는 우리를 겸허하게 만든다.



2.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숫자들

우주력이라는 게 있다. 138억 년이 넘는 우주의 역사는 너무나 길기 때문에, 우리에게 조금 더 익숙한 체계인 1년으로 환산한 것이다. 지구가 생겨난 것은 8월 말에서 9월 사이다. 포유류는 12월 26일에야 등장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우주력의 마지막 날, 12월 31일의 밤이 되어야 나타난다. 우주의 거의 모든 시간 동안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인류가 침팬지와 진화의 길에서 갈라진 게 고작해야 12월 31일 저녁 7시경이다. 과연 인류가 우주의 중심일 수 있을까?


우주의 긴 시간만큼이나 우주의 거대한 공간 또한 우리를 압도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등장한 무대 또한 우주에 비하면  창백한 푸른 점 하나에 지나지 않는 행성이 전부다. 빛의 속도는 대략 300,000km/h다. 가장 가까운 별인 프록시마 센타우리가 약 4.2광년 떨어져 있다고 했으니, 시간 당 300,000km를 쉬지도 않고 4년이 넘게 가야 한다는 의미다. 그게 가장 가까운 별과의 거리다. 우리가 관측할 수 없는 은하는 셀 수 없이 많고, 그 은하마다 억 단위의 별들이 있다. 우주라는 무대에서 인류는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까?





3. 아인슈타인과 중력파

아인슈타인의 예측이 빗나간 지점이 있다. 그는 우주 먼 곳에서의 어떤 폭발이 있을 때 '시공간에 큰 파도(중력파)가 출렁일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다만 우주 저편에서 발생한 중력파가 우주를 가로질러 지구에 도착했을 때는 너무 미약해져서 우리가 측정할 수는 없으리라고 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중력파를 예측하고 약 100년 뒤, LIGO 관측소는 지구에 도달하는 중력파를 감지하는 데 성공해서 그 존재를 입증했다. 수십 년에 걸친 과학 프로젝트의 결과물이었다. 중력파는 무려 11억 년 전에 발생했던 충돌로 생겨난 것이었다. 그때 측정된 중력파는 아인슈타인이 처음 그 생각을 떠올렸을 때는 지구로부터 100광년 떨어진 곳에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가장 뛰어난 정신들이 품었던 가장 터무니없는 희망마저 거뜬히 달성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냈다. 여러분이 이 책에서 곧 만날 과거와 미래의 가능한 세계들 그리고 곧 듣게 될 영웅적인 탐구자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말해준다. 우리에게는 기술적 사춘기를 극복하고, 우리의 작은 행성을 보호하고, 시공간의 망망대해를 항해할 안전한 항로를 찾아냄으로써 '땅과 바다와 하늘'에 매인 처지에서 벗어날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 73쪽)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우주에서 인류는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까?



4. 제한된 범주 5의 세계

인류의 우주 탐사는 지구와 환경이 다른 행성을 오염시키거나, 그곳에 혹시라도 존재할지 모를 생명에 큰 위협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NASA는 행성보호협약에서 천체를 5가지 범주로 나누고 있다. 달과 같이 생명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곳은 범주 1의 세계다. 생명이 있을지도 모르는 곳, 혹은 과거에 존재했을지도 모르는 곳은 제한적 범주 5의 세계다. 태양계에는 세 개의 천체가 이 범주에 속한다. 그중 한 곳은 목성의 위성 중 하나인 '유로파'다.


유로파는 40억 년 동안 한 방향으로 목성을 바라보고 있다고 한다. 목성의 강한 중력 때문에 고개를 돌리지 못하는 것이다. 목성이 잡아당기는 힘은 유로파 표면에 선(lineae)이라는 상처를 내는데, 이 선들은 수 천 킬로미터의 길이로 솟았다가 꺼졌다가 한다. 유로파의 이웃 위성들도 유로파를 잡아당기며 괴롭힌다. 이러한 현상을 조석 유동(tidal flexing)이라고 하는데, 이 현상 덕분에 태양으로부터 매우 멀리 떨어진 유로파의 내부는 적당히 따듯하다. 그래서 유로파는 제한적 범주 5의 세계이고, 그 표면 아래에는 지구에서 가장 깊은 바다보다 10배는 더 깊은 바다가 있다고 한다.


우리가 유로파의 선 중 하나로 뛰어든다고 상상해보자. 그 밑의 바다로 잠수해, 그곳에서 누가 헤엄치고 있는지 살펴본다고 상상해보자. 그런 탐사는 충분히 가능하고, 과학자들은 NASA에 건의하고 있다. 우주선은 빠르게 하강해, 좁은 크레바스의 새파란 얼음벽 사이로 몇 킬로미터나 떨어진 뒤, 넓은 바다에 풍덩 빠질 것이다. 그러고는 지구에 있는 우리에게 사진과 데이터를 보내올 것이다.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 131쪽)



지금까지의 여행지 중 가장 지구가 아닌 것 같았던 곳


나머지 제한된 범주 5의 세계 둘 중 하나는 화성이다. 또 하나는 토성의 62개 위성 중 하나인 엔켈라두스다. 엔켈라두스는 전체가 바다로 덮여 있다. 지구가 생명을 만들어낸 것처럼, 어쩌면 엔켈라두스도 해저에 '생명의 도시'를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태양계 내의 제한된 범주 5의 세계가 아니더라도, 코스모스 곳곳에 있는 수많은 은하 중 몇 곳에는 생명의 힘을 길러낼 만한 행성이 있지 않을까? 앤 드루얀의 질문에 대해서 고민해보자. 은하는 별을 낳고, 별은 행성을 낳는다. 어쩌면 그 행성과 위성은 자연히 생명을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생명은 덜 경이로운 것이 될까? 아니면 오히려 더 경이로운 것이 될까?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 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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