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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Dec 16. 2020

가우디의 유산

바르셀로나에서 일주일 #3

안토니 가우디와 바르셀로나


여행은 때때로 도시에 관한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놓기도 한다. 바르셀로나를 여행하기 전에는 '바르셀로나' 하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인물은 리오넬 메시였다. 내게 바르셀로나는 축구 이외의 소식으로는 접해본 기억이 거의 없는 이름이었고, 그러니 메시를 비롯한 FC바르셀로나의 축구와 관련된 것 이외에는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가 없었다. 바르셀로나에 직접 방문한 뒤에는 거리 곳곳에 걸려 있는 메시의 유니폼과 광고판 덕분에 그가 단순히 도시를 대표하는 축구선수 이상이라는 것을 실감하기도 했다. 하지만 축구팀이 아닌 도시로서의 바르셀로나를 생각하면 이제는 안토니 가우디가 먼저 떠오른다. 바르셀로나 거리를 걷다 보면 자연스레 마주치게 되는 독특한 건축들, 가우디가 도시 곳곳에 남겨 놓은 유산들이 여행을 한층 풍요롭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구엘 공원


2020년 10월 두피디아 여행기에 게재한 글의 재구성입니다.




건축이 예술임을 경험할 수 있는 곳


바르셀로나의 중심가 곳곳에는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작품이 남아있다. 나는 달리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걷는 길에서도 자연스레 그가 남긴 건축을 마주하고는 했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있었고, 카탈루냐 광장으로 가는 길에는 까사 바뜨요와 까사 밀라가 있었다. 소매치기를 당하고 찾아간 경찰서에서 나왔을 때도 구엘 저택이 보였다. 이렇다 보니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는 동안 하루에도 여러 번 독특한, 이따금 기이하게도 느껴지는 곡선의 건축물이 서 있는 거리를 지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까사 밀라
까사 바뜨요
까사 바뜨요가 있는 거리


유럽에 온 이후로 성당은 좀 충분하다 싶을 정도로 본 것 같았다. 그래서 그다지 저렴하지 않은 입장료(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입장료는 17유로, 오디오 가이드 포함 시 25유로이다)를 내고, 성당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건지 고민에 빠지기도 했었다. 그러다 외관부터 한번 실제로 보기나 하자며 티켓을 예매하지 않고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찾아갔다. 마침 빠에야를 먹기 위해 방문했던 쿡(KOOK)에서 멀지 않은 곳이기도 했다. 사진으로 보아 규모가 상당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마주하니 상상 이상이었다. 웅장하고 화려했으나, 다소 괴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여전히 건설 중이어서 대형 크레인이 꼭대기에 설치되어 있다는 것, 그 크레인이 마치 성당의 일부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더욱 기묘하게 느껴졌다. 나는 거대한 건물을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면 가끔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고는 하는데,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처음 봤을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2019년 8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다시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찾은 것은 바르셀로나를 떠나는 날이었다. 커다란 성당 안으로 처음 들어갔을 때, 외관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와 성당 내부의 분위기가 상당히 다른 것처럼 느껴졌다. 크고 화려한 외관과 달리 안쪽은 '성당답다'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평화로웠고, 사람이 꽤 많았음에도 공간이 넓어 고요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사방에서 들어오는 다양한 색감의 빛,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해 아름답게 분산되어 나오는 자연의 조명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두고 한 말은 아니지만, 건축가 유현준 교수의 저서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는 텔레비전조차 없던 아주 먼 과거에 스테인드글라스는 사람들에게 상당히 강렬한 느낌을 주었을 것이라는 내용이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입장해보면 이미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에 익숙해진 현대인의 입장이라 하더라도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여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건물 안쪽에서는 스테인드글라스에 매료되었다면, 외부 건축을 볼 때는 정교한 조각에 집중하게 되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에는 3개의 *파사드가 있다. 탄생의 파사드, 고난의 파사드, 영광의 파사드로 각각 예수와 관련된 성서의 장면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중 탄생의 파사드는 가우디가 살아 있을 당시 직접 감독하여 완성되었는데, 그 이름처럼 예수의 탄생과 관련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파사드 곳곳의 조각상 또한 예수 탄생과 관련된 여러 장면을 시각화한 것이다. 2002년에 건설이 시작된 영광의 파사드에는 주기도문의 한 구절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가 50개 언어로 적혀있다. 전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성당으로 만들고자 했던 가우디의 아이디어라고 하는데, 한글이 적혀 있어서 반갑기도 했다.



* 파사드(Facade)

건축물의 주된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로, 내부 공간 구성을 표현하는 것과 내부와 관계없이 독자적인 구성을 취하는 것 등이 있다. (두산백과)


나는 건축에 관해서는 고작 책 몇 권 읽어본 것이 전부이고, 아는 바가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건축물이란 먼 과거에 지어져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수록 높은 가치를 지니는 것이라고 은연히 생각했었다. 그러나 건축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라는 것을, 여행을 통해 조금 더 경험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반드시 수백, 수천 년 전에 지어져 지금까지 살아남은 경우에만 건축물이 뛰어난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 건축을 예술로 만드는 것은 단순히 누적된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뛰어난 건축을 탄생시킨 아이디어와 그 안에 녹아 있는 스토리라는 것, 여느 명화처럼 그 앞에 섰을 때 감상자에게서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힘이라는 것을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가우디는 말년에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 건설 작업에 매진했다고 한다. 그런데 1926년 전차에 치여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그의 행색이 초라하여 사고 당시 사람들은 유명한 건축가를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100년 후인 2026년은 내가 여행하던 작년까지만 해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완공 목표 시기였다. 코로나 19 여파로 가우디 사망 100주기에 그의 마지막 유산을 완성하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완성된 모습을 보기 위해 한 번은 더 바르셀로나를 여행하고 싶다. 아마도 바르셀로나를 다녀온 수많은 여행자가 나와 비슷한 바람을 품고 있지 않을까.


사그라다 파밀리아 완공 모형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오디오 가이드에 따르면 가우디는 인간의 창조물이 신의 창조물인 자연의 높이를 넘어설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가장 높은 첨탑의 높이를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높은 땅인 몬주익 언덕보다는 낮게 설계했다고 한다. 가우디가 설계했지만 미처 완성하지 못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현재 그의 바통을 이어받은 여러 건축가와 예술가들에 의해 완성되어 가고 있다. 성당의 지하에는 가우디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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