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희 Sep 09. 2017

환영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하여

<호모 데우스>, 유발 하라리

 책 한 권 읽고 마치 그것이 진리라도 되는 양 맹신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물론 유발 하라리는 자신이 제시한 것은 '예언'이 아니라 '가능성'임을 거듭 강조하며 독자가 이러한 가능성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것을 요구한다. 저자는 데이터교가 지배하는 미래를 제시하고 있으나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판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보아 그 역시 데이터 교의 추종자는 아닌 것 같다. 물론 명확한 입장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읽는 내내 불편함을 많이 느꼈던 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우리가 놓여 있는 상황에서 당면할 가능성이 가장 유력한 하나의 미래, 인간이 중심이 아니라 인간을 밀어내고 데이터가 중심이 되는 그런 미래를 제시한다.


 <호모 데우스>의 모든 내용을 한 번에 다룰 수 없기에, 먼저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가장 기억에 남았던 내용 두 가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1. 비유기적 알고리즘과 인간의 선택에 대하여


 우리는 스스로 선택하기를 포기하고 '비유기적 알고리즘'이 대신 우리의 삶을 선택하게 함으로써 더욱 건강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인간의 의사결정도 하나의 생화학적 알고리즘 과정일 뿐이다. 인간의 본질적인 유일한 자아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차분히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으로 인간은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없다. 인간은 경험을 왜곡하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자신의 최대 만족을 보장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떤 왜곡도 하지 않고 오로지 축적된 경험과 데이터만으로 선택하는 비유기적 알고리즘에 모든 사생활과 경험을 제공하고 우리의 선택을 맡기는 것이 스스로 선택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결국 개인의 자유의지와 경험을 신봉하는 자유주의적 인본주의를 밀어내고 데이터교가 21세기를 지배하고 인간 중심이 아닌 데이터 중심의 사회가 도래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맞이할 유력한 미래이다.

 책의 내용이 방대하고 다양한 학문을 넘나들고 있기 때문에 한 번 읽고 모든 내용을 기억하거나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책에서 다루고 있는 핵심은 이것인 것 같다. 물론 이에 대한 근거는 훨씬 더 자세하고 길게 나와있다.

  유기체가 단지 알고리즘이라는 생명과학의 주장에 대한 의심은 잠시 접어두더라도 이를 바탕으로 한 핵심적인 주장, "비유기적 알고리즘에게 선택을 맡기는 것이 훨씬 더 낫다."는 말은 굉장히 듣기 거북하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선택할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비유기적 알고리즘에게 선택을 맡긴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선택이다. 비유기적 알고리즘에게 우리의 선택을 맡기는 것이 옳은지, 과연 더 나은 것인지는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 우리의 자유의지와 선택권을 포기하고 보다 안락한 삶을 위해 비유기적 알고리즘에 모든 것을 맡기기로 한다면 이는 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선택이 될 것인데 이 결정은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가장 중대한 선택을 내려줄 수 없는 비유기적 알고리즘이 진정 인간의 선택을 대신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비유기적 알고리즘을 따르기로 한 것이, 선택권을 포기한 것이 잘못된 선택이고 어떤 결함이 존재한다면, 이를 수정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비유기적 알고리즘의 선택 중에 '비유기적 알고리즘을 따르는 것을 그만둘 것'은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잘못을 바로잡지 않고 계속되는 알고리즘은 '더 나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며, 과연 결함이 있으나 돌이킬 수 없이 계속해서 그것을 따라야 하는 '선택 기계'가 지속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오히려 도태될 것 같다.
  
  이런 생각은 비유기적 알고리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며 비유기적 알고리즘은 생각보다 완벽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백번 양보해서 비유기적 알고리즘이 완벽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선택권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짊어져야 할 도덕적 판단, 고뇌, 미래와 꿈에 대한 결정과 우리의 주체성을,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포기하면서 얻을 수 있는 '더 나은 삶'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일까?

우리는 스스로 행복을 재정의하고 그것이 되기 위해 행동함으로써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나를 분석해서 외부의 어떤 것이 대신 정의해준 행복을, 외부의 그것이 정해준 행동을 함으로써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하다못해 생명과학의 발전이 우리의 뇌를 조작해서 사유하고 행동할 필요 없이 그저 거시적인 데이터 시스템의 칩으로써 살아가더라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해도 그것을 선택하지 않을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안락함을 영위하는 기계보다는 불편하더라도 주체적인 인간이 되고 싶다.



2. 인본주의는 데이터교에 자리를 내어줄 것인가?


 파라오가 존재하던 시대에 이집트인들은 파라오를 믿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의 이집트인은 파라오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신을 숭배하는 종교들이 지배했던 근대 이전의 세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것을 믿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삶의 중심에 신이 있었으며 성경에 기초해 중요한 선택을 내렸다.
  
 세계를 지배했던 상호주의적 실재들은 당대에는 당연한 것이었으나 지금 보면 사라진 것이 더 낫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파라오가 없는 현재의 이집트가 더 났다고 생각한다.

 근대의 인본주의는 신을 죽였고 개인의 생명과 경험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만 마찬가지로 이것도 과거의 파라오에 대한 숭배, 유일신에 대한 숭배처럼 다른 사상에 자리를 내주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넘쳐나는 데이터를 처리할 수 없는 자유주의적 인본주의는 데이터교에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는가?

 나는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 행복을 추구하는 인본주의는 인류가 역사 속에서 이루어낸 진보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태생으로 인간의 등급을 규정짓거나 마녀사냥으로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아가지 않는, 신앙이라는 이름 아래 재산이나 목숨을 걸고 전쟁터로 나갈 것을 요구하지 않는 인본주의는 발전의 역사라고 믿는다. 이것이 인본주의에 대한 종교적인 믿음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본주의를 데이터교가 대체한다는 것은 인류의 퇴보이다. 적어도 인간의 입장에서는 우주에서 가장 소중했던 개인의 의미를 데이터 칩으로 만드는 것은 퇴보이다. 결국 다음 세상도 인류가 만들어 가는 것이며 인류는 자신들의 의미가 사라지는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에 저항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주의적 인본주의와 자본주의를 따르는 오늘의 세계가 처해있는 많은 문제들도 있기에 역시 맹신은 위험하다. 우리는 성장을 위해 지구를 파괴하면서 과학의 발전이 이를 앞지를 수 있을 것이라는 도박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실패한다면 어떡할 것인가? 그리고 성장을 멈추든, 혹은 환경을 파괴면서 성장을 유지하든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다. 개인의 자유를 신봉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마이클 센델이 말했던 '공동체적 자유주의'라는 개념이 다시금 떠오른다.




  비유기적 알고리즘을 이용하는 것으로 인한 많은 장점들이 있다. 암을 조기에 예방할 수 있다면 사생활을 포기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유발 하라리가 말했듯 하나의 정해진 결정론적인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가올 미래에 우리를 데이터 칩으로 전락시키지 않으면서도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할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미리 고민해야 한다. 이것이 유발 하라리가 앞서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한 이유일 것이다.

 

 반복해서 말한 것처럼, 이 책은 예언이 아니라 하나의 가능성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에서 해방되어 다른 운명을 상상하기 위해서라고 유발 하라리는 말한다. 우리는 고민하고 노력함으로써 데이터 칩이 되는 것이 아닌 다른 운명을 상상할 수 있다.

 이것은 이 책의 방대한 내용을 고려하지 못하고 다소 단편적으로 쓴 글이다. 책에는 훨씬 더 많은 내용이 담겨있으며 역사와 인간에 대한 수많은 탐구들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한 번의 정독으로 끝내기에는 부족한 책이다. 유발 하라리가 남긴 세 가지 질문, "유기체는 단지 알고리즘이고, 생명은 실제로 데이터 처리 과정에 불과할까? / 지능과 의식 중에 무엇이 더 가치 있을까? /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이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면 사회, 정치, 일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에 대한 나름의 답을 제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꿈꾸는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