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희 Sep 16. 2017

꿈, 그리고 아프지만 현실

<바닐라 스카이>, 세상에 없는 아름다운 하늘 아래

 "Every passing minute is another chance to turn it all around."
  "모든 지나가는 순간마다, 삶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바닐라 스카이>는 2001년, 오늘을 기준으로 무려 16년 전에 개봉했던 영화지만 찾아서 보든 우연히 만나든 언제나 푹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고전이라 칭할 정도는 아니지만 영화의 기술적인 발전을 고려하면 16년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그렇지만 바닐라 스카이는 지금 보아도 대사는 하나하나가 주옥같으며 장면과 음악의 조화는 아름답다. 영화가 품고 있는 감성은 전혀 촌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랑받는 영화의 이유가 궁금하다면 바닐라 스카이를 보면 될 것 같다.


 * 아래는 영화의 중요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스로의 삶이 망가지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잘못일까?


 데이빗(톰 크루즈)는 그가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을 참지 못한 줄리(카메론 디아즈)에 의해 사고를 당하고 얼굴이 심하게 망가진다. 데이빗이 줄리와 정확히 어떤 관계를 유지해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줄리의 지나친 집착으로 인해 생긴 사고로 얼굴이 그토록 망가진 것을 그를 탓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사고 이후에 사랑하는 소피아(페넬로페 크루즈)과 절친 브라이언(제이슨 리)을 잃는 과정은 데이빗의 비정상적인 행동에서 시작된다. 그가 소피아와 브라이언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브라이언이 "아파트에 혼자 틀어박혀있지 말고 정신과 의사라도 만나봐."라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얼굴이 망가진 데이빗은 자신의 삶도 망가뜨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데이빗의 모습을 보고 느끼는 감정은 미움이나 어리석음이 아니라 안타까움이다. 그것은 그런 사고를 겪고도 전과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비현실적인 것임을 인정하기 때문이며, 세상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는데 그에게만 일관성을 강요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데이빗의 행동에서 '나라도 무너지지 않을까?'라는 마음을 은연중에 느끼는 우리는 슬픈 눈으로 무너지는 그 삶을 지켜보게 된다. 그리고 그 안타까움으로 인해 외모도, 성격도 엉망이 된 데이빗을 소피아가 다시 감싸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러나 소피아가 그렇게 할 의무가 전혀 없다는 것도 우리는 받아들여야 했다.



I wanna live real life, I don`t wanna live in a dream longer.


 클로드 모네의 작품에서 따온 <바닐라 스카이>란 '세상에 없을 것 같은 아름다운 하늘'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 데이빗이 꿈을 끝내고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 뛰어내리기 전 마지막으로 소피아와 대화를 나누던 그 장면의 눈부신 하늘, 그것이 바로 바닐라 스카이다. 그리고 데이빗의 자각몽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붉은 빛 하늘 아래에 있는 모든 것들이 '바닐라 스카이'처럼, 현실이 아닌 꿈속에서만 아름답게 존재하는 것이다. 데이빗의 세상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았다.


 눈부신 하늘 아래 사랑했던 사람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꿈, 그것은 고통으로 얼룩진 삶과는 대비된다. 어쩌면 진짜 삶보다 더욱 매력적이고 편안한 것이다. 하지만 데이빗은 소피아에게 그녀가 했던 말(Every passing minute is another chance to turn it all around)을 되돌려주며 다음 생에서 만날 것을 기약한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 놓인 순간, 데이빗은 삶을 완전히 바꿀 기회를 선택한 것이다.


 행복한 꿈이 아니라 현실을 마주하는 것, 아픔이 따르더라도 진짜 삶을 마주하는 그 선택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꿈을 포기한다는 것은 소피아를 다시 볼 수 없음을 의미하지만, 꿈속의 환상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눈부신 하늘도, 진짜 소피아도 꿈이 아닌 현실에 존재했던 것이며 감당해야 할 아픔도 현실인 것이다. 데이빗은 이제 알 수 없는 장치에 갇힌 채 누워서 행복한 꿈을 꾸는 대신, 현실로 돌아와 자신의 진짜 삶을 살 것이다. 눈을 뜨면 소피아는 없겠지만 그녀를 그리워하며, 그녀가 남긴 말을 평생 기억한 채로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그리움과 아픔을 품고 진짜 삶을 살아가다 보면 모네의 바닐라 스카이처럼 아름다운 날이 언젠가는 찾아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삶은 살아봐야 아는 것이니까.


 그런 날이 온다면, 아마 훨씬 더 달콤할 것이다. 브라이언이 하는 말처럼 쓴 맛을 알아야 단 맛도 아는 것이니까.

 "without bitter, baby, the sweet ain't as sweet"




 인간의 감정체계도 하나의 알고리즘이라고 한다. 우리가 경험이 아니라 단순한 뇌 조작을 통해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진짜'로 받아들이고 만족할 수 있을까? 환상적인 꿈보다는 위태롭더라도 현실을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 오롯이 존재하는 방법이라고, 적어도 데이빗은 그렇게 말할 것 같다.



클로드 모네의 바닐라스카이


작가의 이전글 자신의 삶이란 무엇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