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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재

생의 마지막 순간에 떠올릴 기억

영화 <원더풀 라이프>

by 오재희

삶이 끝난 후 저승으로 가기 전에 일주일 간 머무르는 장소가 있다. 그곳에서는 영원히 기억할 단 하나의 기억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면 그곳의 직원들은 선택한 추억을 재현하고, 죽은 자는 재현을 통해 기억이 선명해지는 순간 지상을 떠나게 된다. 스스로 선택한 단 하나의 기억을 가지고, 그 외의 모든 것들은 잊은 채 영원히 살아가야 할 곳으로. 생의 마지막 순간 나는 어떤 기억을 가지고 삶을 떠날 것인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풀 라이프>는 관객이 그 하나의 질문을 집요하게, 반복해서 떠올리게 한다.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추억을 선택해 주세요."


그 질문을 마주하는 순간 영화 속의 망자들과 같은 고민을 공유하게 된다. 나라면 어떨까, 내가 어제 죽었고 앞으로 사흘 내에 영원히 기억할 단 하나의 추억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어느 순간을 떠올리게 될까.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으로 돌아가는 여행이 시작된다.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질문을 시작으로 나의 고민과 함께 영화는 계속해서 흐른다. 누군가는 비교적 쉽게 하나의 기억을 선택하고, 또 누군가는 일주일이 다 지나도록 고민하기도 한다. 그러면 그들이 떠올리는 기억을 따라서 나도 그와 비슷한 시절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지난 시간을 아무리 헤집어 봐도 끝내 선택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이유는 '천국에 가져갈 단 하나의 기억'이랄 만한 소중한 추억이 없어서 일수도, 예기치 못한 죽음으로 못다 한 인연에 한이 맺혀서 일수도, 혹은 하나의 기억 이외의 다른 모든 것들을 잊어버리는 선택을 차마 할 수 없어서 일수도 있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하나의 기억을 선택하지 못한 사람들은 다음 세상으로 가지 못하고 그곳에 남아 일하게 된다. 생을 마감한 사람들이 삶을 돌아보고 소중한 추억 하나를 선택하는 과정을 반복해서 지켜보면서.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마침내 자신이 기억해야 하는 추억이 무엇인지 깨닫기도 한다.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찾으려는 일은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는 서글픈 일이 된다. 시간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에, 가장 소중했던 순간이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되었음을 깨닫는 것은 쓸쓸한 일이다.


영화 속의 인물들이 선택하는 기억은 다양하다. 그중에는 대단치 않은 일상적인 순간도 많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공원에 앉아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 친구들과 함께 놀이동산에 갔던 날, 대나무 숲에서 즐겁게 그네를 탔던 순간, 오빠가 사준 옷을 입고 춤을 추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 같은 순간들. 그들의 선택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멀쩡히 살아 있는 날들에도 문득문득 그리워지는 추억이란 그리 거창하지 않은 순간임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심코 지나칠지도 모를 그 많은 순간 중 우리가 생의 마지막에 떠올릴 단 하나의 기억이 있다. 어쩌면 오늘 하루가, 혹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과의 시간이 내가 다음 세상으로 가져갈 가장 소중한 추억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 영화 <원더풀 라이프>는 내게 그런 메시지로 기억에 남을 듯하다.


영화 <원더풀 라이프>, 영원히 기억할 하나의 기억을 선택해야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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