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는 너의 자와 다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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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전시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끝도 없는 수정 요청의 굴레에 끼어 언제 끝날지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는 영원한 고통을 겪게 된다. 순탄하게 진행되어가던 프로젝트가 막바지에 접어드니 아니나 다를까 (사전에 충분히 왔을법한) 피드백이 우르르 쏟아졌다. 프로젝트를 이끄는 입장에서 보기에는 그래도 다행히 전 부치듯 작업이 모두 뒤집어 엎히는 것 같지는 않아 그 사실에 나름대로 안도하며 실 작업을 진행해주시는 담당자분께 그래도 이 정도면 정말 다행이지 않냐며 말을 건넸다. 나보다 한참 업계 경력이 쌓인 담당자분은 썩 좋지 않은 안색으로 수정할 사항이 얼마나 많은지 내게 설명해 주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범하고 싶지 않던 종류의 우를 범했다는 마음의 종소리를 들었다.
내가 느낀 감정이 다른 이의 잣대로 측정될 때면 나는 갈 곳 잃은 내 마음이 안쓰러웠다. 내가 어린 소녀였던 시절, 엄마 아빠는 일을 하는 젊은 맞벌이 부부로서 각자의 인생에서 중요한 절기를 보내느라 매우 바빴다. 원래 두 분의 성향이 아주 활동적이고 외향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데다가 주중 내내 쏟아지는 업무에까지 치였으니 주말에 보내는 가족의 시간이 그렇게 역동적일 수는 없는 법이었다. 게다가 세상에는 어린 내게는 새롭고 즐겁지만 내 위로 세 살 터울의 언니나 나보다 30여 년을 먼저 살아낸 엄마 아빠에게는 이미 시시해져 버린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난 아직 재미가 있는데. 지금과는 달리 매우 조용하고 내성적이었던 꼬마 아이는 “이제 그만 하자.”라는 어른의 말에 더 놀고 싶다는 말을 용기 있게 하지 못했다. 한참 시간이 흘러 언젠가 내가 그때의 나의 이야기를 할 때면, 엄마는 언니와 너를 데리고 우리가 얼마나 많이 놀러 다녔는데 그런 말을 하느냐며 그렇게 느낀 나의 마음에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셨다. 바빴던 젊은 엄마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애쓴 시간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때 나의 마음은 꼭 엄마의 마음과 같지는 않았다. 내 감정에 엄마의 잣대를 가져다 대는 순간 그 다섯 살 나의 마음은 누구에게도 이해되지 못한 채 우주를 떠도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감정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경험에 대한 잣대가 나의 경험을 마음대로 재단해 속상할 때도 종종 있었다. 심리학을 공부하며 대학원까지 여러 가지 리서치 방법론을 훈련해왔던 나는 마케팅 리서치 회사에서 내가 갈고닦았던 리서치 방법론을 다른 이들과 나누며 일하게 될 기대감에 부풀었다. 회사에서 진행하는 시장에 대한 리서치가 학교에서 수행하는 리서치와 주제 면에서는 다르다 하더라도 사실 그 근간이 되는 원리가 전혀 다르다고는 할 수 없다. 때로는 내가 대학원에서 배우고 훈련했던 리서치 방식 중에는 아직 보편화되지는 않았으나, 다가오는 미래 사회에서 적용할 경우 더욱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해낼 만한 방법도 많았다. 그러나 나와 다른 배경을 가진 채로 그 업계에서 경력을 쌓아가던 여러 시니어와 주니어는 그들의 경험에 대한 잣대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곤 했다. 각자의 경험에 대한 잣대를 내 경험에 가져다 댄 후, 내 경험의 폭을 함부로 재단하여 평가하는 것이 나는 편안하지 않았다.
언어를 공부하다 보면 언어 속에 깃든 사회 문화적 배경이 보일 때가 있다. 나는 우리 문화권에서 "다르다"라는 단어가 사용되어야 하는 순간에 "틀리다"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순간을 종종 목격한다. 너의 자와 나의 자는 다른 것일 뿐, 누구의 자가 틀린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저 다름을 인정해야 할 때, 내 자를 세상 모든 곳에 가져다 대고는 틀렸다고 주장하지는 않는가? 누군가가 시간과 노력을 애써서 들여야 하는 그 순간에 내가 나의 시간과 노력의 잣대를 마음대로 가져다 댔던 순간을 반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