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독토독 창가 두드리는 소리에
아직 몽롱한 머리를 들어 올려
오랜만에 비가 내린다더니
비가 오랜 기억을 두드려 깨운다
어느 먹구름 잔뜩 낀 날 나는
무슨 일이 곧 벌어질 것만 같은
바닷가에 앉아 초록 사과를 베어 물고
바다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구경했다
저 바다에 누가 들어갔다 나왔을까
비는 저렇게 내려서 바다가 되었다가
다시 해가 뜨는 날이면 하늘로 올라
비인지 바다인지 그 둘 다인지 하는 걸까
그런 의미 없고 시시한 생각에 웃으면서
어느 추운 겨울 난롯가에서 나는
이미 벌어져버린 슬픔을 옆에 두고
같은 슬픔을 담은 친구 곁에 앉아서는
묵묵히 타고 있는 불씨를 구경했다
저 불에 나갔다 들어오면 뜨거울까
불은 저렇게 빨갛게 잔뜩 화가 났다가
다시 조용히 검게 그을러서 자리에 남아
있었던 듯 없었던 듯 사라지는 걸까
그런 이해 못할 말들을 중얼거리면서
비 내리는 날 창가 소리가
묻혀둔 여러 소리를 꺼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