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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롯이 나

열정

그대의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by 오제인리

Photo by Milos Tonchevski on Unsplash


“너한테는 열정이 보이지 않아.”

첫 회사에서 들었던 말 중 가장 충격적인 말은 이것이었다. 나에게서 열정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 무언가를 대충 하고는 못 배기는 완벽주의자 부모님 밑에서 혹독하게 스스로를 단련시키며 일생에 주어진 그 어떤 조그마한 일도 늘 최선을 다하려 노력해 왔던 내게, 열정이 없다니?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했다.

다행히 나에게 그런 피드백을 주었던 상사와 반년에 걸친 시간을 함께 보낸 끝에 나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었으나 생애 처음 들어보는 종류의 평가에 한참 마음앓이를 했더랬다.


아프게도 한국에서 회사 생활을 하며 비슷한 피드백을 두어 차례쯤 더 들었는데, 늘 맡은 바 최선을 다하며 살려고 노력하는 내게 예상치 못한 화살처럼 꽂힌 그 말들의 의미가 나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충격과 고통을 덜어내고 생각해본 결과, 나는 일반적인 한국 회사 생활에서 추구하는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결론 맺었다. 나는 열심히 하는 모습, 열정을 만 프로쯤 쏟아내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잘 티 내는 성격이 되지 못한다. 조용하고 묵묵하게 힘든 일을 해낸 나의 결과물만 보자면 너무 평화로워 보이는 것일까. 내가 티 내지 않는 그 노력의 시간들을 누군가가 지켜볼 때까지 나는 종종 그런 오해를 사곤 했다. 내가 사력을 다해 보낸 시간들의 총집합체인 내 경력들은 이력서의 텍스트로 보일 때는 너무 아름답게만 보이는 걸까.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나의 노력으로 빚어진 나의 자신감과 여유를 ”열정 없음”이라는 문구로 대체하곤 했다.


나는 억울했다. 그리고 자신이 명명하는 열정을 똑같이 보이기를 강요하는 분위기와 사람들을 견뎌내는 것이 늘 어려웠다. 나를 포함해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내 반짝거리는 이들에게 더 열정을 보이라고 다그치는 그 입김들이 잔인하다 느꼈다. 그런 아픔과 억울함은 몇 번을 접해도 익숙해지지 않아 하루 이틀쯤은 항상 속앓이를 했다. 그리고는 결국 나를 정말 잘 아는 사랑하는 이들과의 맥주 한잔에 내 억울함을 꿀꺽 삼켜내는 것으로 지금껏 나를 토닥여 왔다.


당신의 눈에 보이는 열정만이 모든 열정은 아닌 것을, 반짝임과 여유로움의 뒷면에는 그이들의 눈물 어린 수많은 시간들이 쌓여 있는 것을.

이런 마음들이 더 많이 이해되는 내일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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