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더 이해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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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는 썩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되려 사람들과 대화를 이어가는 법을 잘 알지 못해 다른 이들이 놀이터에 있는 뱅뱅이에 자연스럽게 올라타듯 대화의 궤도에 오를 때 홀로 올라타지 못하고 모래 위의 구경꾼이 된 듯한 기분일 때가 많았다. 대학교를 다니던 중에 나는 갑작스레 건강이 좋지 않아 잠시 병원 신세를 졌는데, 그때 내내 수액을 맞으면서 내 몸 안의 피며 물질들이 어떻게 희석되고 변해버린 것인지 그 기간을 기점으로 (자타공인) 나의 많은 특질이 빈대떡 뒤집듯 많이 변해버렸다.
대표적으로 변경된 나의 성질 중 하나는 다소 내향적인 편에 속했던 내가 외향적으로 변한 것인데, 이것은 단지 내 느낌만이 아니다. 심리학을 전공하면서 나는 대학교 내 학생 상담센터에서 MBTI 검사를 주기적으로 받아보곤 했는데, 흔히 유전적인 영향이 강하게 작용해 잘 변하지 않는 기질이라 알려진 내향성-외향성 척도에서 일생 한 번도 빠짐없이 내향적이라고 진단받던 나는 아픈 이후로 계속해서 외향적인 사람으로 판단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에는 새로운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먼저 다가가는 것을 매우 어려워하던 내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먼저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도 어렵기는커녕 즐거운 경험이라 느끼게 되었음이 그를 반증한다.
이렇게 외향적으로 변한 나는 그 후 외향성을 중시하는 사회문화적 배경을 가진 미국에서의 대학원 생활 이후 한층 더 성숙해진 외향성을 띄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 한국에서 시작한 회사 생활에서 나의 외향성은 오히려 스스로를 찌르는 내성 발톱 같은 역할을 하곤 했다.
내가 회사 생활을 하며 받았던 피드백 중 여러 번 곱씹어도 지금까지도 당황스러운 말 중 하나를 꼽자면 “너무 말이 많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더 황당한 것은 내가 했던 “말”이란 일상적인 대화나 수다라기보다는 업무를 위해 진행되는 의견 교환의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어떤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 나는 모르는 것도, 궁금한 것도, 더 알고 싶은 것도, 그리고 듣고 싶은 다른 이들의 생각과 의견도 참 많았다. 그런 궁금증과 호기심은 내가 맡은 일을 잘 해결하기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었다. 나는 함께 일하는 이들과의 대화와 토론을 통해 더 나은 결과를 만들기를 원했다. 내가 거쳤던 회사에서 나는 한두 차례 그런 피드백을 들었는데 개중에 디자인 회사에서는 특히 나의 그러한 특질을 유난히 좋지 않은 쪽으로 평가하는 이들이 많았다. 나는 디자인이라는 결과물이 트렌디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것이 물론 중요하지만 그 이면에 싣는 의미와 이야기가 함께 작업하는 이들끼리는 충분히 공유되고 논의되길 바랐다. 그러나 현재 한국 디자인 회사에서의 작업 방식이란 “디자이너 눈에 그저 쿨하고 멋져 보이면 만사 오케이”라는 판국이라 설명, 논의, 의견 교환 등 말과 생각이 오간 후에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과정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그런 곳에서 의견과 생각을 충분히 나누고 싶어 한 나 같은 이는 외계인 취급은 물론 말이 너무 많아 성가신 이로 라벨링 되는 것이 당연했다.
나는 그저 다른 이들의 생각을 잘 알고 싶었다. 더불어 나의 생각도 공유하고 싶었다. 그 후 그런 생각들은 나와 함께 작업하는 이들이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데 도움이 되기를 소원했을 뿐이다. 그렇게나 뚜렷하고 단순했던 내 소망을 “말이 너무 많다”는 핍박과 함께 마음 구석 저편으로 고이 접어 내려놓아야 한다는 점이 회사 생활 내내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