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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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로 출퇴근하며 일자리를 지배하는 인구의 분포도 중 성별을 관찰하면, 상당수가 남성이다. 다들 비슷한 외모와 체형에 비슷한 색의 옷, 뿜어내는 느낌까지 비슷해 조금은 으스스하기도 하다.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싶은 대로 입고는 그런 사람들 사이를 총총 걸을 때면 어릴 적 읽었던 미하엘 엔데의 모모라는 책에 나오는 회색 신사들에게 둘러싸인 기분이 든다.
여자만 취집을 꿈꾸는 시대는 끝났다. 카페에 앉아 점심 식사를 커피와 빵으로 대신하던 중 옆 테이블에 미혼 남성 셋과 기혼 남성 하나가 앉아 수다 떠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놀만큼 다 놀았고 결혼해 안정을 찾는 것을 꿈꾼다는 능력 있는 싱글남들은 신붓감의 조건에 대해 소리 높여 논했다.
"사실 여자는 능력은 필요 없지 않아? 집안이 제일 중요하지."
"맞아, 내 일 편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서포트 잘해주는 재벌이나 준재벌 집안. 그런 집안인데 외모도 준수하면 좋고."
기혼 남성이 적극적으로 대화에 동의한다. 그들은 스폰서 장인 장모님이 필요한가 보다.
옆 테이블에서 깔깔거리는 소리와 함께 현대사회에서 기대되는 완벽한 신붓감의 조건이 내 귀에 들려올 때, 일전에 직장에서 알게 된 어떤 기혼자인 여자 동료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당시 나름대로 나와 친밀하게 지냈던 그녀는 내 눈에 일에 대한 열정이 너무 가득해 남자들이 좋아하지 않을 상이라고 충고해 주었다. 다행히도 이런 나라도 좋다던 인생에서 만난 멋진 사람들 덕에 큰 상처는 받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매력 있는 (이라고 쓰고 결혼 시장에서 잘 팔릴이라고 읽어야 할) 여성이 되기 위해서라면 무릇 자신의 능력은 감추어야 한다고 논하는 능력 있는 여성과, 현대 사회에서 결혼할 시기부터의 여성은 능력이 전혀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능력 있는 남성들의 이런 프레임은 아무리 접해도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현대사회에서 여자로서의 기능이 재정적 능력이 뛰어난 집안에서 외모를 준수하게 가꾸는 여자가 되는 것이 전부라고 논한다는 사실이 참 씁쓸하다. 나는 자신만의 전문적인 영역에서 커리어를 쌓으며 일하는 것을 인생의 큰 자신감과 즐거움으로 삼으며 살아오신 엄마를 곁에서 보고 자랐다. 그리하여 모든 개인이란 성별과 상관없이 자신 나름대로의 전문성을 키우며 주체성 있는 삶을 이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믿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다양한 배움을 바탕으로 능력을 잘 신장시켜온 것처럼 보이는 현대 사회의 젊은 이들이 여자란 예쁘고 고생 없이 자라 결혼하는 존재라고 당연시 여긴다는 것이 못 내키게 기분 나쁘다.
사는 시대가 어려워 그런 마음을 가졌을 거라고 나름대로 이해는 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희망적이지 못한 시대를 살고 있으며, 별로 가망 없어 보이는 이 사회의 미래가 쉬이 그려진다.
이런 상황에 나는, 이 불편함을 단죄할 상대로 돈만이 행복의 필요조건이 되는 자본주의 우선 시대를 탓할 것인가? 보통의 기준으로는 살기 힘들어진 이 팍팍한 사회를 탓할 것인가? 아니면 그저 편안함으로 안주해 이런 시대와 사회를 대물림하려는 그 젊은 이들을 탓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종국에는 이렇게 힘들고 팍팍한 시대에 살면서 뭣도 모르고 순수함을 부르짖고 있는 내 안일한 마음을 탓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