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간에 정당한 대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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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회를 썩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내가 미국 사회와 사람들에게서 배운 것 중 하나를 꼽자면 효율성이다. 내가 느끼기에 미국인들은 절약 정신이 매우 강한데, 그 재화에 대한 절약 정신이라는 것은 물질 만능주의로 귀속되는 한 면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의 시간에도 재화 가치를 매겨 사회 전체가 효율성과 합리성을 큰 가치로 여기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야근을 한다면 당연히 야근 수당을 지불해야 한다. 고용주의 입장에서는 한 사람에게 원래 지불하기로 한 예산보다 돈을 추가로 지불하는 것이기에 야근은 고용주에게 부담스러운 일이며, 자연히 야근을 하는 것은 선호되지 않는다.
개인의 시간은 돈으로 환산된다는 것.
누군가의 시간을 더 빼앗는 것은 마땅히 돈이 더 들어야만 가능하다는 이 합리성은 사람들로 하여금 정해진 시간 내에 자신의 최선을 다해 최고의 결과물을 산출하는 효율성을 이끌어내는 기폭제처럼 보였다.
이런 분위기가 당연한 사회에서 일을 시작한 나는 한국 회사의 비효율성이 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료 또는 시니어가 한 시간 정도 느지막이 출근한다. 평일 아침은 무릇 피곤한 법이니 모닝커피를 한잔 한다. 간밤에 온 메일을 좀 확인할까 했지만 어영부영 여유를 부리니 벌써 점심시간. “에이 점심 먹고 시작하지 뭐.” 즐겁게 식후 커피도 한잔 마신다. 양치까지 하고 나니 넉넉히 두 시간은 훌쩍. “그럼 이제 해야 할 일 정리나 해보자.” 하고 나니 여섯 시. “에이 저녁 먹고 하지 뭐.”저녁 먹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해서는 열두 시 퇴근은 기본.
이런 업무 패턴을 당연히 여긴다는 사실이 나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더욱 놀라웠던 것은 이런 기성세대의 문화를 보고 그대로 쑥쑥 흡수해 이미 기성 문화에 흠뻑 빠져버린 나와 비슷한 또래 동료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회사를 가족같이 생각하고 내 집처럼 편안히 여기는 열정 일꾼으로 분류되어 전형적인 한국 조직의 사랑과 찬사를 받는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밤보다 아침에 집중이 더 잘 되는 나는 일이 급한 건이면 데드라인을 맞추기 위해 새도 울지 않는 검은 새벽부터 업무를 시작했다. 일이 쏟아지게 많은 날에는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끼며 숨을 반박자로 쉬면서 일을 했다. 프로젝트의 빠른 진행을 위해 내가 미리 해야 하는 일이면 주말도 불사하고 업무 처리를 해두었다. 그럼에도 불구, 저녁에는 회사에서의 삶이 아닌 나의 삶도 중요하다 여기는 이 주니어는 조직이 사랑하는 일꾼들의 눈엣가시로 여겨지곤 했다.
같은 일을 더 짧은 시간에 집중해서 해낸다면, 더 효율적인 것이 아닌가? 이런 나의 의문에 기성세대는 우리가 그걸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고 나에게 친절히 답했다. 그러나 나는 행동하지 않는 마음은 진정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고용주든, 고용인이든,
시니어든, 주니어든,
선배든, 후배든,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질문해 볼 때다.
나는 누군가의 시간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