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성벽을 부술 때 가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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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서 공부를 그만 해도 되겠다는 결심을 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특정 학문을 연구하는 아카데미라는 조직의 폐쇄성에 대한 한계가 내게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내가 몸담았던 대학원 프로그램은 소위 현대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인 인지신경과학을 이끌어 나가고 있는 집단이었다. 그곳에서 내가 연구했던 분야는 인지신경과학이라는 거대한 담론의 나무에서 가지를 타고, 줄기로 넘어와, 그 나뭇가지 끝에 달린 나뭇잎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 나뭇잎을 바라보고 닦는 것은 비단 어리고 초심자인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 거대해 보이는 조직 안에서 연구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큰 숲 안에 심어진 수많은 나무 중 한 그루의 나무에 달린 나뭇잎 하나씩을 맡아 열심히 닦고 있었다.
내게 그 조직이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던 이유는 내 나뭇잎이 너무 작아 보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내게 맡겨진 나뭇잎이 다른 수많은 나뭇잎들과 더불어 한그루의 나무가 되었을 때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그런 나무들은 모여 또 어떤 숲을 이뤄내는지, 더 나아가 그 숲이 만들어낸 것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가 알고 싶었다. 그러나 그 조직 안에서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나뭇잎을 열심히 닦는 일에만 몰두할 뿐 나무와 숲, 지구에는 별 아랑곳이 없는 듯 보였다.
이런 조직의 폐쇄성은 대학원에만 한정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의 첫 회사는 해당 업계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이 유독 강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집단이었다. 맡은 일을 전문적으로 능숙하게 잘 해내는 사람을 평소 존경하고 좋아하는 나이지만, 나는 그 집단의 자신감이 안타까운 적이 많았다. 그이들은 본인의 업에 대한 자신감이 너무 넘치는 나머지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이해하려고도 배우려고도 하지 않았다. 본인이 밟고 있는 터전 외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별 것 아니라는 태도를 볼 때면, 세상의 가장 높은 탑 위에 올라가 있다고 느끼는 그들이 사실은 깊이도 알 수 없게 깊은 우물 속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업계로 이직한 후에 경험한 회사도 그런 의미에서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단지 형태가 다를 뿐, 내가 경험했던 대부분의 조직이 문을 안팎으로 굳게 걸어 잠그고는 "나는 최고, 너는 별로"라는 슬로건을 두르는 것이 나는 참 기이하다고 생각했다.
코끼리는 죽을 때가 되면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코끼리 무덤으로 숨어들어 죽음을 택하기에, 상아탑은 속세와는 단절된 세계를 상징하게 되었다고 한다. 흔히 현실과 동떨어진 채로 이론적인 것에만 몰두하는 대학을 비판적으로 일컫는 말이라고 알려진 이 상아탑을 나는 대학 졸업 후에도 내 인생 곳곳에서 경험한다.
각자의 성을 견고히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성이 문도 없이 좁고 높게 지어져 누구도 찾아올 수 없는 곳이라면, 그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성인가? 좁은 상아탑 위에서 한없이 홀로 성벽을 올리는 것보다, 담장을 낮추고 넓은 대지로 영역을 확장할 때 그 성은 더욱 크고 견고해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