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잔혹함의 가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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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여배우와 잘 알려진 감독의 염문설이 떠돌 때 나도 그 가짜 뉴스를 전해 전해 들었다. 소위 지라시라고 일컫는 정보지에서 그 이야기를 알게 된 나의 지인은 방송가에서 일한다는 아무개 씨에게 진위를 물었더니 진짜라고 “카더라”며 그 가짜 뉴스에 대한 이야기를 내게 전해 주었다.
그 가짜 뉴스의 최초 유포자들이 검찰에 송치되어 사건은 어느 정도 일단락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야기의 중심에서 자기도 모르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억울함과 고통을 감내해야 했을 피해자의 상처는 아마 어떻게 해도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다.
내 인생에서 나도 나에 대한 가짜 뉴스들을 종종 접한다. 얼마 전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어 알게 된 다른 팀의 회사 동료가 내 이전 회사가 유명한 대기업이라고 들었다며 나도 모르는 나의 경력에 대해 물어왔다. 전혀 사실무근인 데다 내 입으로 그런 뉘앙스가 풍길만한 말을 해본 적이 없는지라 그런 소문이 마치 사실처럼 떠돈다는 것이 신기하다 느꼈다.
때로는 그런 가짜 뉴스에 등장하는 나의 모습은 나를 그다지 달갑게 여기지 않는 특정 인물의 프레임으로 왜곡되어 나를 억울하게 만들기도 했다. 나의 친한 회사 동료가 나를 잘 모르는 회사의 아무개 씨로부터 전해 전해 들었다던 그 이야기 속 나는, 누군가의 일방적인 험담으로 인해 세상에 둘도 없이 이상한 인물로 그려져 있었다. 발도 없는 수많은 말과 설 (說)이 한 사람을 거치고, 또 다음 사람을 거치면 그 말들은 눈덩이 굴리듯 불어나 잔혹한 괴물이 되는 것만 같다.
내가 잘 모르는 어떤 이에 대해 “카더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의 솔직한 마음은 어땠는지 돌아보게 된다. 내 지인이 그 지라시 속 염문설을 내게 전할 때 나는 그 말을 개미 눈곱만큼도 믿지 않았다고 신에게 맹세할 수 있을까? 발 없는 수많은 말들의 피해자이기도 했던 나는, 내가 인지하지도 못하는 새에 종종 가해자였던 것은 아닐까?
우리 모두는 그 발 없는 잔혹한 말들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