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작용과 반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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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관찰하는 고요한 순간을 좋아한다. 특히 여행 중에 만나게 되는, 낯선 곳의 역사와 날씨를 몸에 아로새기며 살아온 나와 다른 사람들. 그이들의 눈동자 색깔, 주름, 주근깨, 웃는 모습, 말소리, 움직임 같은 것들을 관찰할 때면 만나보지 못한 우주를 부유하는 듯한 기묘한 기분이 든다. 다른 이들에게 큰 관심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홀로 관찰하다가 가끔 나처럼 관찰자 놀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기도 하는데 자연스레 눈을 마주치게 되어 이야기를 나누는 행운도 때로 있다.
스페인 여행 중에 마주친 영국 웨일스에서 휴가를 왔다는 70대의 노신사와도 그렇게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호텔 바에 혼자 앉아 생맥주를 한 잔 시켜놓고는 영어가 잘 통하지 않지만 젠틀하게 대화를 이어가던 바텐더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있었다. 스마트폰을 놓고 그들을 구경하다 신사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내게 요즘엔 모두들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어 사람들끼리 눈 마주치며 이야기하는 기회가 줄어든다고 참 안타깝다고 했다. 우리는 각자 어떤 여행 중인지, 이 여행지가 좋은 이유는 무엇인지부터 직업이 무언지 가족은 어떻게 되는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까지에 걸쳐 다양한 대화를 나눴다. 그는 요즘 사람에 가까운 편인 내가 “똑똑하게도” 스마트폰만 바라보고 있지 않은 덕에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어 즐거웠다고 말했다. 나도 그랬다. 스마트폰에서 눈을 거두고 그와 바텐더를 구경하기를 참 잘했다.
뭐든지 간편하고 빠른 이 디지털 시대에 우리는 어느 때보다 “똑똑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지만 아날로그라고 불리는 옛날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많은 것들은 계속해서 우리 주변을 맴돌 것이다. 인공지능(AI)과 같은 현대 기술의 등장으로 인간의 삶은 곧 로봇에게 지배당하게 되리라는 두려움이 하루가 다르게 팽창하고 있다지만 나는 그런 시대가 되기엔 아직 넘어야 할 고비가 많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몇 년 전 뉴스에서 AI로 옛 화가의 그림을 재현해 낸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미 작고한 지 오래인 유명한 화가들의 화풍을 분석해 그 작가처럼 그림을 그려낸다는 것이었다. 그 뉴스의 요는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인해 인간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게 된다는 쪽에 무게가 실려있었으나 나는 되려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화가들의 화풍을 따라 해 그려냈다는 그림에서 나는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고민했다. 내게 어떤 작가의 그림이란 당대에 스스로 느낀 바를 자신만의 사상으로 해석해 탄생시킨 작품이기에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인공지능이 어느 작가의 화풍을 분석해 비슷하게 그려냈다던 그 그림은 탄생보다는 생산에 목적성이 있어 보였다. 해당 작가의 오래전 그림을 볼 때 내가 느꼈던 감정과 의미를 자아내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2016년 이세돌과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알파고의 대국은 알파고의 최종 승리로 끝났지만, 나는 이세돌이 알파고에 3패를 하고 나서도 1승을 거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생각했다.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상대의 데이터를 축적하면 축적할수록 상대를 간파하기 쉽도록 점차 강력해진다. 알파고는 세 번의 대국을 치르며 이세돌의 수를 더 잘 읽게 된 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인 이세돌은 컴퓨터 알파고를 이겼다. 최근 은퇴에 관한 인터뷰에서 그는 인공지능의 등장이 은퇴를 결심하게 된 큰 이유라고 밝혔는데, 그 이면에는 그에게 바둑이라는 것이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예술이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철저하게 상대의 전략을 데이터로 입력해 이기는 것만이 능사인 디지털 기계의 사고 회로에 맞서 자신이 평생 예술이라 여겨왔던 행위를 내려놓게 된 그의 쓸쓸한 기분이 글자로도 충분히 느껴졌다.
나는 디지털 시대가 가져다준 이익을 충분히 향유하며 자랐다. 심지어 내 전공과 업무는 발전된 디지털 문명의 산물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도 하다. 몇 해가 지나면 지금은 풀어내지 못한 인간 사고의 어떤 회로를 어느 인공 지능 시스템은 장하게도 복사해낼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인공 지능 시스템을 종래에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사람의 역할이다. 혹여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인공 지능이 인간의 사고 회로를 모두 완벽하게 복사하게 되는 순간이 오더라도 그것은 “생산”을 넘어 “탄생”의 의미를 가질 때까지 우리 인간에게 더 큰 위협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스마트폰이라는 디지털 문명의 이기로 이 글을 쉽게 고쳐 쓰고는 그 너머로 내가 만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결국 나와 같은 또 다른 아날로그 인간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