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밟지 않은 길에 발 딛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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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프로그램을 챙겨보지 않은지 꽤 되었지만 근래 “놀면 뭐하니”를 열심히 시청한다. 유재석이라는 훌륭한 아바타를 앞세워 무한한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김태호 피디님의 행보를 보고 있자면 예전 무한도전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미처 풀지 못했던 그의 한을 맘껏 풀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2018년 무한도전이 막을 내리기까지 약 13여 년 간, 나는 무한도전 멤버들과 함께 성장했다.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많은 시청자들도 그랬을 것이다. 오래된 친구와도 같았던 그 프로그램이 마침내 종영한다는 소식이 났을 때, 나는 아쉽고 슬픈 맘을 감출 수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기꺼이 보내줄 때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 프로그램을 더 이상 애정 하지 않아서도, 무한도전이 재미없어서도 아니었다. 어느 프로그램에서도 쉬이 시도하지 않았던 많은 아이템과 포맷을 시도하며 새로운 문화 트렌드를 만들어냈던 프로그램.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혹독한 잣대로 평가받는 것이 오랜 팬이자 동지로서 안쓰러웠다. 이미 충분히 많은 시청자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었기에 이끌어가던 사람들의 쉼표를 지지해 주고 싶었다.
무한도전의 만듦새를 위해서 출연진을 비롯해 모든 제작진이 내내 노력했겠지만, 혹시 가닿을 수 있다면, 그중에서도 나는 김태호 피디님께 특별히 고생하셨다고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회사의 조직원으로서 많은 이해관계자를 상대하며 일을 해보고 나니 그의 수고와 노력이 더욱 선명히 보인다. 각기 목적과 이해관계가 다를 수많은 팀원들을 한데 모아서 결과물을 내는 것. 정해진 (주로 아주 긴박한) 시일 내에 소기의 목적을 성공적으로 달성하는 것. 회사라는 조직의 가장 주요 목적인 수익 창출을 이뤄내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신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이전의 성공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 무한도전에서부터 놀면 뭐하니까지, 쉽지 않을 이 행보를 무한하게 이어가는 그의 시도와 노력을 존경한다.
지금껏 내가 겪어온 조직들도 조직의 크기나 조직 문화의 성숙 정도와는 무관하게 이전에 시도하지 않았던 것들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을 매우 주저하곤 했다. 회사란 수익 창출이라는 가장 중요한 목적을 중심에 두고 투자 대비 수익을 계산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기존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더 이상 수익 창출에 이익이 되지 않음에도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지 않는 것. 또는 잘못된 시스템과 방식임을 애써 무시한 채로 이익 창출이라는 오직 하나의 목표를 위해 변화하지 않는 것. 크게 이익이 되지도 보람이 있지도 않으나 앞에 나서서 괜히 돌을 맞는 것은 위험하기에 그저 머물러 있는 것. 회사라는 조직의 이 전형성에 내가 어떻게 대응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는 경험이 조금씩 더 쌓여가도 여전히 어렵다.
“이번 생은 망했다.”
전 아주대학교 외상센터장 이국종 교수님이 직을 내려놓으며 했다는 이 말을 기사로 접했을 때 놀랐고 씁쓸했다. 이런 문장은 소위 어른들이 말하는 인생의 쓴 맛을 아직 덜 맛본 나 같은 나약한 개인에게서나 나오는 말이라 생각했는데. 꽤 오랜 기간 동안 신체적, 정신적, 정치적 압박을 이겨내면서도 외상 환자 치료 시스템의 구축에 대한 의견을 용기 있게 피력해 오던 어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는 그 좌절 섞인 말이 쉬이 믿기지 않았다.
내가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덴만 여명 작전 당시 석해균 선장 치료 뉴스였다. 그 후 언론을 통해, 정부 청문회를 통해, 그의 책 골든아워를 통해 국내 외상 환자 치료 시스템의 중요성을 주장하시던 모습을 꾸준히 보고 들었다. 계속되는 그의 목소리를 멀리서나마 응원했기에, 나 같은 일반 대중에게 노출되는 것에 비례하게 국내 외상 의학 시스템은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을 것이라 막연히 믿었다. 그 무지몽매한 믿음 뒤에서 그를 비롯한 그의 동료들이 여전히 힘겨워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제대로 된 시스템의 발전 없이 하루하루를 위태롭게 버티고 있었을 뿐, 전혀 나아진 것이 없다는 그의 허망한 고백은 이 생은 망했다는 그의 거친 문장을 설명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내가 언젠가 이국종 교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했을 때, 엄마는 성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에 대해 이야기했다. 고작 의인 10명을 찾지 못해 멸망했다던 도시 이야기를 하면서 엄마는 이 사회 어딘가에 그 교수님과 같은 의인이 있어서 우리가 겨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시스템이 없는 곳에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던 사람. 쉬이 가는 길을 포기하고 옳다고 믿는 일을 주장했던 사람. 제 이익보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 몸과 마음을 혹사하던 사람. 그리 노력하고도 달라지지 않는 이 상황 앞에서 분노하던 사람. 그 끝에 변화된 것이 아무것도 없어 허망해하던 분께, 그 어떤 것도 교수님의 탓이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내내 매우 애써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래서 더욱 응원하게 된다. 누구도 쉬이 도전하지 않는 길을 용기 있게 떠나는 이들을. 개척되지 않은 길이 주는 어려움과 두려움, 절망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이들을. 새로운 길을 떠나는 용기 자체만으로도 응원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나는 이번 생에서 내 방식대로, 그런 이들을 결코 홀로 두지 않기로 다시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