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는 것이 아니었던가요?
Photo by Nathan Dumlao on Unsplash
다 그렇게 산다.
내가 첫 회사를 그만둬야겠다는 계획을 밝히자 핸드폰 너머로 아빠는 그렇게 말했었다. 다들 어렵고 힘들지만 그냥 버티고 사는 것이라고.
내 부모님은 여러모로 매우 엄격한 편이었다. 힘든 것도 어려운 것도 견딜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시던 부모님의 밑에서 자라는 동안 나는 또래집단에 비해 나름대로 인내심이 강한 편이었다 자부한다. 그러나 회사를 그만둬야겠다는 결심 뒤에 내가 품었던 문제는 강한 인내심으로 버틸 만한 것이 아니었다. 내 첫 회사는 (물론 이제 보니 거의 대부분의 조직이 그런 듯 하나) 밖으로는 매우 잘 나가는 글로벌 회사의 타이틀을 금테처럼 두르고 있었지만 실상 안에서 경험한 바는 한참 뒤떨어진 10년 전의 방식을 재활용하기에 급급한 형상이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 이전에 있었던 해당 산업군의 영광 덕으로 작금의 자리에 오른 시니어들은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시대와 기술을 애써 무시한 채 내리막길로 달려가는 마차를 마냥 끌어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업무, 조직의 문화, 사업의 전망성, 그 어떤 것에서도 (만족감은 차치하고) 일말의 희망을 발견할 수 없었던 나는 1년이라는 스스로의 유예 기간을 두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일 년은 지켜본 후 나의 거취를 결정하겠다. 그 다짐 하나로 애써 다독이며 버티던 1년. 안타깝게도 사계절을 보내는 내내 회사에 대한 만족감은 물론 내 삶에 대한 만족감은 10점 만점에 2점 수준을 맴돌곤 했다. 그 새 몸도 마음도 심하게 병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회사에 입사하던 무렵의 온도와 바람이 나를 다시 휘감아오던 계절에 나는 미련 없이 이직을 준비했고 다른 업계, 다른 회사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30년 가까이 한 조직에서 일을 하고 있는 아빠, 한 번 직장은 영원한 직장이라 여기던 세대의 엄마가 느끼기엔 참 이상했을 작은 딸이다. 심지어는 나와 같은 고통을 느끼던 내 친구들도 사실 철새처럼 다른 곳으로 떠나버린 나보다는 그저 묵묵히 버티는 이들처럼 머무는 것을 주로 택했으니, 나는 누구에게도 썩 이해받지 못하던 변종인 셈이다.
언젠가 언니가 조직에서 겪는 초년생으로서의 어려움을 가족에게 토로한 적이 있다. 그러자 엄마는 당신께서 젊었을 때에도 그 정도 어려움은 있었노라고 당연히 견뎌야 하지 않겠냐고 무심하게 응답했다. 내 세대만큼이나, 어쩌면 때로는 나보다 더, 진보적인 가치관을 가졌다고 생각했던 엄마가 꼰대의 전형적인 대화법이라 불리는 “나 때는 말이야”를 들고 나오다니. 그때 나는 엄마에게 예전에도 힘들었으니 지금도 그 정도로 힘들어야 한다는 명제는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 같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엄마에게만 하고 싶었던 말은 아니다. 내 짧은 인생에서 앞으로 나아가려던 순간에 내 발목을 잡던 수많은 “라떼는 말이야”를 외치던 이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대학 시절에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이들을 유난히 함부로 대하던 어느 어른의 행태를 술안주 삼으며 친구들과 이야기했던 것이 가끔 떠오른다. 나는 거나하게 취해서는 우리 인생에 “저 사람처럼 되자”하며 배우는 것보다 “저런 사람은 되지 말자”하며 배우는 것이 더 많다는 게 너무 슬프다고 떠들었다. 대학도 졸업하고 대학원을 지나 사회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 된 지금까지도 나보다 앞서 살아가는 사람의 발자취 중 내가 따르고 싶은 길보다 따르고 싶지 않은 길이 현저히 많다는 사실은 여전히 나를 서글프게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도살당하러 향하는 가축처럼 따르고 싶지 않은 길을 그저 초점 없는 눈동자를 하고서는 걷는 모습을 보는 것도 영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최선이란 나만의 걸음걸이로 내 길을 조심히 걷는 것임을 안다. 내가 걷는 길이 맞다고 믿으면서도 내딛는 발자국이 뒤에 걷는 이들에게 혹여나 피하고 싶은 길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고 또 배려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라떼는 그저 마시면 그만이라고, 너의 때에는 너의 길을 걸으라고 응원하는 사람으로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