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악기의 소리가 빚어내는 하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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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회사의 면접은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다.
당시 나는 대학원을 막 마친 후였고 회사 면접이 어떤 것인지 감도 잡지 못하고 마냥 해맑았다. 자기소개를 좀 해달라는 면접관들의 질문에 나는 이력서에 나온 내용은 너무 뻔할 것 같다고 답변하고는 내가 중요히 여기는 가치 중 하나를 풍물놀이 경험에 빗대어 설명했다.
일반적이지는 않았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 나는 풍물패 동아리에서 북을 쳤다. 내 고등학교는 매 해 신입생이 들어오는 봄이면 각 동아리가 무대나 행사를 꾸며 “신입생 끌어들이기 대작전”에 돌입하곤 했다. 안 그래도 어둑어둑한 강당에 암막커튼을 분위기 있게 쳐놓고 반짝거리는 무대 조명 아래 북을 신명 나게 치는 선배들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나도 모르게 홀딱 빠져 저 동아리에 들어가 북을 쳐야겠다고 결심했던 기억이 난다. 매주 동아리 시간은 물론이고 시즌별로 강도 높게 진행되는 풍물패 연습에서 내가 배운 것은 비단 자진모리장단이나 휘모리장단 만은 아니었다. 풍물놀이는 꽹과리의 선 (先)을 따라 북과 장구, 징의 소리가 더해지면서 리듬과 흥이 점차 고조되는 서사를 보인다. 어디서 꽹과리의 박자를 따라 다른 장단으로 넘어가야 할지, 어느 부분에서 장구의 소리가 잘 들리도록 북을 조심히 두드려야 할지, 징의 울림은 곡조의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나는 다른 이들과 끊임없이 눈을 마주쳤고 함께 곡조의 흐름을 즐기는 것에 익숙해졌다. 북을 치며 다른 악기 소리와 교감했던 그 기억들이 내게는 다른 이들과 함께 일을 해나가는 큰 단초가 되었다.
대학원에서 인간의 지감각에 관한 연구를 했던 나는 공학 대학과 연계된 자동차 시스템 설계라든지 건축 공간 설계를 위한 VR 실험 구축 등에 참여했었다. 각기 다른 전문성을 가지고 있기에 같은 문제를 향해 다른 시선으로 의견을 내는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과정이 좋았다. 마치 풍물놀이를 하던 때처럼, 연주하는 악기가 다른 이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하모니란 이토록 멋진 것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와 함께하는 이들이 각기 다른 소리를 낸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리고 그 다른 소리가 한 데 모여 전에 없이 독특하고도 아름다운 음악으로 빚어지는 과정이 신났다.
회사 일을 시작한 후에도 나는 같은 문제를 가지고도 개개인이 다른 시각에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을 중요히 여겼다. 그 다른 생각의 소리를 조화롭게 모아 좋은 결과물을 내는 과정이 내게는 중요했다. 그러나 내가 겪은 한국식 회사들은 자신이 가진 악기와 같은 악기를 가지고 아주 똑같은 소리를 내는 것만이 가장 멋진 하모니라 여기는 듯했다. 이상한 점은 면접 때는 일반적이지 않은 나의 배경, 나의 경험, 그로부터 비롯한 나의 생각들을 맘에 쏙 들어하고는 조직에 속한 후면 그 조직과 티끌도 다름없는 소리를 내라고 강요하는 점이었다. 각자의 다른 생각과 의견을 모아 색다른 소리를 빚어내는 것, 그 소리의 파장을 계속해서 키워가는 것. 이런 가치를 중히 여기던 나의 태도와 행동에 내가 만났던 수많은 조직원들은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반응했다. 동의하지 않거나, 동의하지만 적어도 이 곳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결론 맺는 것.
나는 내 가치와 부합하지 않는 조직들과의 아주 지난한 시간 끝에 각자의 가치를 존중하고 그 가치들을 실제로 발현시키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일하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내 상사와 나는 얼마 전 각자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나의 가장 중요한 다섯 가지 가치 중 하나는 “조화 (harmony)”였다. 각기 다른 이들이 모였을 때 그 다름 속에서 하모니를 이루고, 그 조화를 통해 나도 이 조직도 함께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나의 고백에 그는 기쁜 마음으로 공감해 주었다.
내 가치를 포기할 필요 없이 다른 이의 가치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오늘을 누리게 된 것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