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오롯이 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제인리 Aug 06. 2019

베이킹

버터와 설탕의 위로

Photo by Food Photographer | Jennifer Pallian on Unsplash


나의 중요한 아침 일과는 메일함 정리다.

간밤에 날아 들어온 잡다한 광고 이메일, 업무 이메일, 개인 이메일이 반죽처럼 마구 뒤섞여 있지만 읽어야 할 메일과 휴지통으로 옮겨야 할 메일을 분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분도 채 되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그날 아침에, 여느 날처럼 휴지통으로 옮겼어야 할 대학원 동문 이메일에 눈길이 갔다. 졸업을 한 지 조금 지난 후라 머릿속에 단번에 얼굴이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낯설지 않은 어느 교수님의 이름이 내 시선을 멈추게 했다. 알 수 없는 기분으로 열어본 메일에는 내가 기억하는 한 매우 건강해 보였고 나이가 아마 많아야 겨우 40대 중반일 교수님의 부고 소식이 낯선 단어들로 적혀 있었다.


그의 대학원 수업을 수강하던 학기에 나는 비슷한 과목의 학부 수업을 강의하는 조교 역할을 맡고 있었다. 당시 원어민도 아닌 외국인 주제에 미국의 대학에서 전문 지식을 전달하는 업무의 어려움과 중요성을 통감하던 나는 해당 과목의 교재를 미친 듯이 탐구하곤 했는데, 그 노력의 시간이 외려 그의 수업에서 빛을 발하곤 했다. 수업 중에 실험이나 연구의 세부 사항을 줄줄 설명하며 토론에 참여하던 조그만 동양인 나에게 교수님은 흥미로운 눈길로 의미 있는 질문들을 던지곤 했다. 인간의 뇌에서 일어나는 인지과정의 신비로움에 관해 진화론자인 자신만의 관점으로 색다른 질문을 던져 의견을 교환할 수 있도록 돕던 그의 수업을 나는 매우 좋아했다. 졸업을 하고 한국에서 일을 시작한 지 1년 즈음되었을까. 그는 내게 혹시 뉴욕에 있다면 자신의 수업 조교를 맡아주면 좋겠다는 제안을 메일로 보내왔는데, 그에게 감사 인사와 함께 정말 아쉽다고 답했던 것이 내가 가진 그와의 마지막 기억이다.


사람들이 참 갑작스레 떠난다.

대학원을 다니던 때 내가 있던 도시에서 가까운 곳에 우리 가족과 잘 알고 지내는 가족이 있어 종종 들러 시간을 보내곤 했다. 어느 추수감사절에도 우리는 왁자지껄 함께 시간을 보내고는 크리스마스에 또 만나자고 즐겁게 인사하며 헤어졌다. 다가온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갑자기 사고로 떠난 그 가족의 젊은 아들의 소식은 그 가족에게는 말도 못 할 큰 슬픔이었음은 물론, 내게도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들게 했다. 학교와 실험실은 겨울 방학과 휴가로 텅텅 비었고, 밖은 눈이 무섭게 내려 어둑어둑하고, 도시의 빌딩 사이로 험하게 불어오는 바람 덕에 집에 꼼짝없이 갇힌 날 나는 하루 종일 쿠키와 빵을 구웠다. 다 먹지도 못할 테고 나눠 줄 사람도 없을 만한 양의 파운드케이크, 오트밀 쿠키, 브라우니를 아침 열 시부터 저녁 여덟 시까지 반죽하고 굽고 또 반죽하고 구웠다. 그 험난한 뉴욕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이제 막 날개를 펼치게 되어 행복한 얼굴로 떠들던 그 친구가 차갑게 누워있던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되지 않아 나는 뜨거운 오븐 열기에 반죽이 익는 냄새를 맡으며 시간을 보냈다.


원래도 미래라든지 장래를 열심히 계획하고 사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런 갑작스러운 떠남을 경험하면서 나는 더욱더 먼 미래에 지향점을 두지 않게 되었다. 그저 오늘, 지금, 사랑하는 사람들과 건강하고 즐겁게 순간을 누리는 것이 가장 큰 행운이자 행복이라 여긴다. 마치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그 위대한 꿈을 오늘도 내가 누리고 있다.


지금 사는 집에는 오븐이 없어 이번에는 이 알 수 없는 마음을 굽는 냄새로 달랠 수가 없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