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오롯이 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제인리 Jul 25. 2019

하얀 사람

피부색이 마음의 색은 아니에요

Photo by russn_fckr on Unsplash


나는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어릴 적부터 유난히 언어에 대한 호기심이 짙어 영어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다. 한국인이면서 영어를 능숙히 사용한다는 점 덕분에 나는 대학 시절부터 영어 실력이 요구되는 잡다한 일들을 하곤 했다. 그때 내가 만난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외국인 중 다수는 인종으로 구분하자면 백인이 많았는데 내가 그 “백인”들과 함께 있을 때 다른 이들이 그 백인에 보내는 우호적인 시선과 나의 개인적인 경험은 간극이 매우 컸음을 고백한다. 전 세계의 축소판처럼 느껴졌던 뉴욕에서의 대학원 시절에 나는 현대 사회에서 사람이라는 파이를 구분하는 기준 중 가장 잔인한 칼날이 인종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백인이 인도라고 착각한 후 원주민을 마음대로 인디언이라 명명하고는 정복한 신대륙. 그 누구도 부여하지 않은 권리로 스스로에게 우월함을 부여해 부강해진 국가에서 그런 씁쓸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르겠다.


대학교를 다니던 마지막 학기에 나는 영어 원어민 교사가 없는 도시 외곽의 초등학교에서 원어민과 함께 방과 후 영어 수업을 하는 국가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때 나와 함께 담양의 작은 학교에 배정받았던 젊은 백인 남자의 행태를 떠올리면 나는 아직까지도 평정심을 쉬이 찾지 못한다. 그는 겉으로 보기에 매우 멀쩡해 보이는 외모를 가졌으며 실제로도 평범한 미국인이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이 대학교 학비가 어마어마한 미국에서 4년제 대학씩이나 졸업했으며 이역만리 타국에 취업 지원서를 정성스레 써서 합격했다는 사실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그와 수업을 함께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그의 관심사가 돈, 여자, 클럽으로 간추려진다는 사실을 간파했는데 그런 것쯤은 내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단 그가 맡았던 원어민 선생님이라는 직무만 잘 수행했다면 말이다. 그러나 불안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고, 뭔가 잘못되고 있는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신이 경고 버저를 강력하게 울리고 있는 것이라는 현자의 말은 옳은 법이다. 술과 클럽으로 얼룩진 생활을 만끽하던 그 백인 원어민은 수업 준비는커녕 나보다 더 형편없는 영어 실력을 뽐내어 하루가 다르게 나를 놀라게 하곤 했다. 딱히 수업 방식이랄 것도 없이 대부분의 수업이 그림 그려 영어 단어 맞추기 따위로 이어졌으며, 아무것도 모르고 친절했던 새싹 같은 초등학교 친구들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나와 그 초등학교의 영어 선생님뿐이었다. 그와의 자괴감 느껴지는 6개월 후, 나는 또 다른 6개월 계약 연장을 할 수 있었으나 단호하고 미련 없이 그 활동을 그만두었다.


서울에서 회사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나는 자연스레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외국인들을 직장 안팎에서 만나게 되었다. 한국에서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때로 만났지만,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돈을 벌고 살면서도 한국의 사회문화적 특수성을 이해하고 잘 적응하려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친절하고 정 많은 대한민국에서 한국어를 못하는 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맹률이 현저히 낮은 국가, 영어를 초등학생 때부터 의무적으로 배우는 국가, 이 국가에서 외국인은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 한 번 없이 영어로 다짜고짜 자랑스레 질문을 한다. 그런 외국인에게도 친절히 답해주고, 특히 백인이라면 알 수 없는 호감을 내비치는 모습이 나는 항상 씁쓸하게 느껴졌다. 물론 내가 썩 맘에 들지 않는 외국인이 백인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유년 시절부터 대학까지 외국에서 보내다가 취업을 하지 못하고 다시 한국으로 들어온 머리 검은 외국인들도 업무 특성상 종종 만나곤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겨우 돈은 벌게 된 이들이 한국 사회의 미개함을 논할 때, 딱히 애국자도 아닌 나는 어디서부터 대화를 이어가야 할지 몰라 좋은 관계 쌓는 것을 포기한 적도 여러 차례다.


성별이나 나이처럼 어떤 사람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는 여러 가지 분류 기준 중 인종은 내게 더 이상 큰 의미를 차지하지 않는다. 나는 대한민국 영토에서, 미국에서, 그 외 다른 여행지에서 아주 친절한 백인을 만난 적도 많지만 너무나도 형편없는 백인을 만난 적도 많다. 내 인생에는 상냥한 아시아인도, 너그러운 흑인도, 유쾌한 히스패닉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다. 영어로 “Yellow” 라 조롱받는 아시아인인 내 마음이 노랗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백인이라 마음이 하얀 것도 흑인이라 마음이 검은 것도 아닐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