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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롯이 나

사공이 많은 배

배 위에서는 모두 평등할 것을

by 오제인리

Photo by Simeon Muller on Unsplash


한국에서 회사생활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우리 사회에서 사공이 많은 배는 산으로 간다는 사실을 금방 체득하게 되었다. 나는 나이가 어리고 경력이 많지 않은 주니어 주제에 적극적인 사공이 되려는 것은 전형적인 한국적인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해나갈 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내가 배의 조타기를 잡게 될 때까지 나는 조용히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작업만 진행하는 사공이 되기를 자처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이라고 가르침 받아 왔지만, 나는 사공이 많건 적건 배는 무릇 나아가는 법이라 생각한다. 다만, 우리 사회는 사공이 많을 때 잘 나아가는 방법을 모르는 사공이 아주 다수라는 것을 느낀다. 사공이 적을 때의 장점이 있듯 사공이 많을 때에도 장점이 있다. 어떤 사람은 바람을 잘 읽고, 어떤 사공은 노를 잘 젓고, 어떤 이는 방향 감각이 좋고, 또 어떤 이는 노래를 부르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줄 수 있다.


사공이 적을 때 나아갈 수 있는 것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사공이 많기 때문에 더욱 잘 나아가는 방법이 있는 법이다. 그러나 내가 겪은 한국 사회는 사공이 많을 때 즐겁게 멀리 바다로 나아가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해 결국 사공이 적어야만 배는 물로 나아간다는 아집을 뚝심 있게 주장하는 것 같다.


나는 그런 곳에서 일하며 사공으로서의 나의 기질을 잃는 것이 늘 무서웠다.


내가 올라탄 배 위에서 나는 멋지고 능력 있는 각 사공들을 불러 모아 와인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길을 잃어도 즐거이 우리의 여정을 만끽하리라. 그리고 그 배는 언젠가는 반짝거리는 바다에 도달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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