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삶에 남긴 발자욱
디렉팅을 맡아 고민도 고생도 많았던 프로젝트가 문제없이 잘 마무리되었다. 유래 없이 과정과 결과가 모두 좋은 프로젝트였다며, 광고주도 크게 만족해하더라고 내게 말을 전하던 클라이언트의 목소리가 편안하고 행복하게 들렸다.
에이전시에서 진행하는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그렇듯 역시나 우여곡절이 많았고, 너무 방대한 범위의 이해관계자들을 일일이 상대하며 일해야 했던 나는 프로젝트 끝 무렵 영혼이 탈탈 털려 탈곡 직전인 참이었다. 나는 늘, 그냥, 그렇게, 힘든 것이라는 변명으로 모두를 괴롭히던 프로세스를 조금이라도 개선시켜 나와 작업하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덜 고생하며 일하기를 바랐다. 그런 과정 가운데에서 도도거리며 고생했던 시간이 함께했던 사람들의 행복한 웃음과 함께 옅게 사라졌다.
그 프로젝트의 큰 성공은 사실 내게는 별다른 변화를 가져다주지 않았으나 좋은 결과물로 인해 클라이언트가 광고주에게 칭찬을 받고, 광고주의 담당자는 인사 고과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게 되었다 하니 도도거리며 고생했던 나의 시절이 누군가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데 일조했다고 생각되어 기분이 좋았다. 나에게 이야기를 전한 클라이언트는 오랜만에 일찍 퇴근하여 아빠를 불러대는 다섯 살 아가와, 가족들과, 기쁨이 충만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
길게는 아니더라도 여러 프로젝트에서 잠깐씩 마주치곤 했던 디자이너의 결혼 소식을 접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눌 만큼 아주 친하다고 하기는 좀 어려운 데다 청첩장도 따로 받지 않은 상태인데, 축하는 전하고 싶은 마음에 음료 기프티콘과 함께 톡 메시지를 남겼다. 사실 결혼 축하를 핑계 삼아 나는 그녀와 작업했던 시간들이 정말 좋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 소소한 감사함을 고백한 것만으로 마음이 한결 가벼웠는데, 나의 축하 메시지에 그녀는 많이 기뻐했고, 미안해했고, 고마워했다.
회사를 다니는 어떤 날들에 나는, 평소라면 입에 잘 담지도 않는 험한 말을 뱉어내기도 하고, 하루에도 수십 번 이 삶을 때려치워 버릴까 고민하기도 하지만, 내가 걷는 이 길에서 만나는 좋고 감사한 인연들의 덕으로 쉬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 걸어가게 된다. 누군가의 덕으로, 나는 나의 길을 개척해 나간다.
나의 노력도 어느 순간에 나와 함께하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길을 더 걷게 하는 기쁨이고 행복이 될 수 있다면, 지금 나의 삶은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일 내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