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저변에 눈길을 둔 너에게,
복작거리는 도시에서 하루하루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아내느라 바쁜 너. 좁은 열차 안 빽빽한 사람들 틈에 겨우 끼어 전쟁처럼 치러내는 출퇴근도, 격변하는 정세에 본인의 안위 걱정에만 여념 없는 상사도, 애정과 질투가 교묘히 섞인 동료들과의 대화도, 마음은 20세기에 머무른 채 몸은 21세기에서 노쇠해 가는 부모님도, 끊임없이 오르는 물가와 상반되게 여전히 아담한 빌린 방도 모조리 어렵다는 너는 피로한 얼굴로 푸념하다가 너무 배부른 투정이냐며 머쓱한 얼굴로 웃었다. 열심히 노력해 얻은 보통의 삶은 비극적이고도 호화로워서 고된 너를 더 쓸쓸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사와 인간관계에 큰 기대와 관심은 없는 편이지만 이상한 데서 주위 사람들에게 너그러운 잡지사 기자 인영은 기이한 정신 이상 행동으로 도시의 성인 삶의 전형성을 빗겨 난 채 겉도는, 잘 모르는 여자 의선을 집으로 들인다. 그런 의선이 점점 더 정신 이상 증상을 보이며 몇 차례에 걸친 가출 후 결국 사라지자 인영은 의선을 사랑한 명윤과 함께 출장 겸 폐광 도시로 전락해 가는 황곡으로 향해 의선의 행방을 뒤쫓는다. 황곡에서 만난 광부 사진을 찍던 장을 통해 인영은 탄광의 어둠과 광부로서의 삶의 위험을 깨달음과 동시에 광부의 딸이자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한 채 고통스러운 어둠 아래 성장한 의선의 과거 실마리를 찾는다.
빛 한 점 없이 캄캄하고 습도 높은 갱도에서 폭발과 붕괴의 위험성을 안고 광산을 캐어 삶을 꾸리는 사람들. 막장에 닿음으로써 삶의 기반을 마련해 어둠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사람들. 형형한 눈빛과 빛나는 뿔을 내보이지도 못한 채 어둠 속에서 스러지는 영혼들. 적응하지 못할 희고 쨍한 빛에 닿아 웅덩이로 녹아내려버린 존재들. 책을 읽는 내내 그래서 검은 사슴이 무슨 사건을 벌인다는 것인지 눈 빠지게 찾다가 광부들에게서, 의선에게서, 인영과 명윤에게서, 그들의 가족에게서, 그리고 너와 나에게서 웅덩이처럼 고인 처연한 그 동물을 발견했다고 한다면 너무 호화로운 망상 같으려나. 그래도 이야기 내내 왠지 빛에서 어둠으로 걸어 들어가는 주인공들이 결국엔 빛 아래로 반짝이는 영혼을 다시 데리고 나올 것 같았다는 나의 감상이 너에게 위로가 된다면 좋겠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결국 밖으로 걸어 나온 검은 사슴의 뿔은 얼마나 영롱할까. 우리 계속해서 꿈꾸고 궁금해하자.
끝내 거두지 않은 네 눈길로 한 뼘 더 밝아질 너와 세상을 기대하며,
한강, 『검은 사슴』, 문학동네,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