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제인리 Dec 14. 2019

걸음걸이


아무것도 방해받고 싶지 않은 날에
이름은 낯설지만 알 것 같은
자주색보다는 다홍색에 가까운 와인 한 잔을
곁에 따라두고
이미 유명하지만 못 들어본
어떤 가수의 다정한 목소리를 배경 음악으로
옆에 틀어두고
오늘 내가 어디로 걸었나
떠올려보는 거야
어째서 걷게 됐는지
어디를 향해 걸었는지
나는 걸으며 웃었던지
어떤 순간에 찡그렸던지
닿아야 할 곳으로
결국에는 닿았는지
가만 돌아본다

어떤 대화도 위로도 충분치 않은 날에
고요한 이 공간의 공기를 마시면서
이미 지났으나 여전히 낯선
길고 길다가도 곱씹어보면 한없이 짧던 날들을
눈 앞에 펼쳐두고
아마 많이 애쓰고 노력한
여느 날들의 나를 가장 다정한 눈길로
가득 위로하고
내내 내가 어떻게 걸었나
생각해 보는 거야
바르고 곧게 걸었는지
언제는 절룩거렸는지
나는 걷는 것이 좋았던지
어느 순간이 반짝이던지
고민하던 발걸음이
결국에는 나다웠는지


가만 아니 그만

어색하고 절뚝였던 걸음도
느리고 여유롭던 걸음도
빠르게 나아가던 걸음도
걸음걸음 나다웠기에
모든 발걸음이
넘치게 충분했다
넘치도록 좋았다


내일도 그저 여느 날의 나처럼

나답게 걸어가기를

나답게 걷고 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Confetti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