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종인 Jan 14. 2016

Android는 어떻게 대세가 되었나?

한국 통신시장의 시대적 배경 (응답하라 2009)

모두가 최신/유행/미래 이야기를 하니 저 하나쯤은 과거 이야기를 해도 되겠다 싶어서 제조사 근무 시절 경험을 두서없이 풀어보고자 합니다.


우리나라 통신 시장은  아무데서나 기기와 USIM을 사서 사용하는 유럽 방식이 아니라 제조사가 기기를 제조 할 때 통신사와 사전 협의를 통해서 결정된 스펙과 기능으로 생산해서 통신사에 판매하고, 통신사가 대리점을 통해서 일반 사용자에게 판매하는 북미 방식입니다. 제조사가 직접 판매하는 유통모델이라는 방식도 있지만 기기 자체는 통신사와 사전 협의를 통해서 제조된 제품이기 때문에 통신사가 '갑'이라는 큰 틀에서는 벗어나지 않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과거 'WIPI'는 통신사가 가지고 있는 각기 다른 독자적인 플랫폼으로 인한 국가적인 낭비 요소를 없애기 위해서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개입해서 표준화를 주도한 사례이지만 WIPI 규격에 대한 결정을 통신사가 주도했기 때문에 플랫폼 역시 통신사가 '갑'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Android 상용 단말이 출시된 시점은 2010년 4월이지만 제조사에서 단말 개발 기간이 짧으면 6개월에서 길게는 1년으로 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Android를 도입하기로 결정된 시기는 사실상 2009년입니다.


2009년도 우리나라 통신 시장의 시대적 배경을 통해서 Android가 어떻게 되세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옛날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2009년 4월은 WIPI 의무화 해제와 함께 제조사들이 멘붕 상태가 되는 시기였습니다. 보통 제조사들은 통신사들과 1년 동안의 PRM(Product Roadmap)을 합의하고 어떤 단말이 어떤 스펙으로 출시될지 대략적으로 합의를 하는데, 앞서 이야기한 대로 통신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통신사 '갑'님들이 WIPI 의무화 해제 이후 WIPI를 지속적으로 사용할 것인지, 새로운 플랫폼을 도입할 것인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가이드라인을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즈음에 '아이폰 한국 출시'이슈로 시장이 뜨거워지는데 통신사/제조사들은 미국에서 아이폰이 어떠한 변화를 유발했는지 알기 때문에 아이폰과 유사한 생태계를 가지는 스마트폰을 한국에 도입할지 말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동안 통신 시장에서 스마트폰이 성공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스마트폰이 시장에 대세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고 미국의 아이폰 열풍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스마트폰은 안될 것 같고 WIPI 의무화는  해제되었고 제조사는 단말에 플랫폼을 결정해서 개발해야 하는데 갑님들은 아무 하명이 없고 미국은 아이폰 열풍으로 스마트폰이 뜨고 있는 상황에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2009년 6월에 KTF가 KT로 합병되면서 KT 쪽에서는 조직이 혼란스러워 누구 하나 플랫폼 정책에 대해서 결정을 하지 못하고, SKT는 내부적으로 다양한 플랫폼을 동시에 진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한쪽에서는 LiMo에 자체 UI framework를 올리는 SKAF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한쪽에서는 Windows Mobile을 탑재한 악명 높은 T*옴니아를 출시합니다.


SKT의 SKAF는 상용화 일정이나 플랫폼 정책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이고 삼성이 SKT와 Windows Mobile을 이용한 단말을 출시했기 때문에  그때는 다음 플랫폼이 당연히 Windows Mobile이라고 생각하고, 제가 있었던 회사도 Windows Mobile 기반 단말을 기획하게 됩니다.


그런데, 막상 Windows Mobile 탑재를 위해서 Microsoft와 접촉을 했는데 제조사는 S/W 관련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정책 때문에 만들어봐야 T*옴니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제품이 나오고 제조사는 H/W만 만들고 S/W는 Microsoft 마음대로인 PC 시장의 모습이 통신 시장에서 재현될 것이라는 것이 누가 봐도 명백한 상황에서 Windows Mobile을 선택하기는 무리였습니다.


통신사 입장에서도 기존 통신 시장의 주도권을 Microsoft에 뺏길 것이 자명하기 때문에 Windows Mobile 단일 플랫폼으로 강행하기에는 무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 시점에 통신 시장에 등장한 구세주가 'Android'이고 H/W 뿐만 아니라 S/W에도 어떤 제약이 없고, 모든 소스가 full로 제공되며 심지어 '무료'라고 하니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통신사 입장에서도 애플이 미국에서 열풍을 일으켜준 생태계를 아무 조건 없이 만들어준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고, 오히려 '구글은 어떻게 돈벌지?'가 당시 최대 관심사였을 정도입니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우습게 들릴수도 있겠지만, 당시 통신사나 제조사나 구글이 망하거나 또는 구글이 돈을 못벌어서 Android 사업을 접는다고 해도 플랫폼을 계속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으니 선택해도 되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기존 통신 시장에 자연스럽게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통신시장 전반적인 시대적 배경을  이야기했는데, 다음번에는 완전 제조사 입장에서 Android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프로그래밍 — 단순한 기능, 기능의 결합, 의미의 부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