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제가요?
"저번주는 대형 사건사고가 많아서 잠을 거의 못 잤어요. 하루에 한 2-3시간? 거기에 현장에서 비까지 와서 감기몸살도 걸렸는데, 어휴 약 기운 때문에 더 난리였어요. 한주가 정말 정신없었어요."
"정말 힘드셨겠어요"
"아 근데 뭐.. 그냥.. 그래요."
"듣기만 해도 힘들어 보이는데요. 힘들지 않으세요?"
"아.. 그쵸. 잠을 못 자서 힘들긴 하죠. 근데 뭐 그냥... 음.. 힘든가..? 그냥 큰 사건사고 생기면 보통이래요."
켈리씨, 그건 힘든 거예요. 잠을 못 자고 몸이 아프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아프고 힘들어요.
그리고 힘든 건 힘들다고 하는 거예요. 힘들다고 말해도 괜찮은 거예요.
순간 멍해졌다.
기자 초년생일 때 유난히 사건사고가 많이 터졌다. 어떤 기사를 쓸까 고민할 새도 없이 붕괴, 화재 현장으로 불려 갔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겠지만, 내가 재직할 당시 그 회사는 야근, 특근 수당은 고사하고 주말 출근도 당연시했다. 거기에 간담회다 회식이다 술자리 역시 출근만큼 많았다.
주말이 없는 것은 물론 포도시 단 하루 주어진 유일한 휴일에도 밀린 잠만 자느라 휴일다운 휴일을 보내지도 못했다. 잠을 잘 시간도 없는데 어느 순간 불면증이 심해져 더 화가 났고, 공황장애 증상도 두드러져 병원을 찾았을 때였다.
힘들면 힘들다고 해라. 왜 힘든 것을 모른 척하느냐는 선생님의 말에, 순간 벙~쪘다. 아 그런가? 이건 힘든 거구나. 그런데 왜 난 자꾸 힘든 걸 힘들다고 말하지 않으려고 빙빙 에둘러서 변죽만 두드리고 있었나 싶었다. 내가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잘 생각해 보니 몸이 아프다든지 신체적인 아픔이 있을 때 '힘들다'는 표현을 하다가도, 누군가가 '정말 힘들겠네'라고 말을 하면 애써 그 말을 부정하곤 했다. '아니, 근데 뭐 견딜만해.', '다들 그렇지 뭐', '아니 근데 뭐 지금 바쁠 때긴 해"라면서 말이다.
사람은 참 웃긴 존재다. 본인이 힘들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니. 그리고 정말 웃기게도 그게 바로 나 자신이라니. 그 이야기를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를 울렸던 아이스 바닐라 라떼의 주인공 역시 내게 그 말을 한 적이 있다.
"켈리야, 괜찮아?"
"응.. 나 괜찮아. 정말"
근데 왜... 난 네가 매번 괜찮다고 해도 네가 안 괜찮은 것 같지?
그 말이 날 무너뜨렸다. 그날 전화를 붙잡고 또다시 울음을 참지 못하고 쏟아냈다.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듣곤 했던 말이 있다. '너도 눈물을 흘려?', '영화 보면서 울어본 적 있어?'라는 식의 질문이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것처럼 보인다라나... 정말 억울하다 내가 얼마나 울보인데...
그날 상담 이후 나는 더 울보가 됐다. 아니 울보가 되기로 작정했다. 가족 한정 울보였는데 이제 대내외적으로 울보가 되기로 다짐했다. 힘들다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하고, 눈물이 나면 울고, 울었으면 울었다고 솔직히 말한다. 그게 약해 보인다거나 내 치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다. 그리고 나는 몰라보게 좋아졌다.
치료를 받은 지 3년 여가 지났다. 그리고 내가 한 번씩 다시 관성처럼 그때로 돌아가려는 모습이 보일 때가 있다. 우울감은 누구나 느끼지만 모두가 우울증이 아니다. 요즘은 우울한 거다. 요즘 힘든 거다 아직 우울증은 아니다. 를 되뇌고 있다. 그리고 우울증이면 어떤가. 또 선생님이랑 이야기하다 오면 되지.
그래서 글에는 내 울음을 보여줄 수 없으니 말로 하려 한다.
"저 요즘 힘들었어요. 내 뜻대로 되는 게 없어서 너무 답답하고 우울했어요. 근데 매일 아침 글 쓰면서 다시 좋아지고 있어요. 그래서 상담받았던 것 복습하면서 다시 행복해질 연습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