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의미 없는 삶도 의미가 있는 법
일이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아서 나왔다. 무작정.
집 앞 카페를 갈까 하다가 또 앉아서
한두 시간 유튜브만 보다 들어올 것 같아
동네를 벗어나기로 했다.
낯선 카페를 가더라도 일이 무조건 잘 되는 건 아니다.
언제 일에 집중될지 모르니 만일을 대비해
24시 카페를 찾아 나왔다.
집에서 좀 거리는 있었지만 괜찮다.
새벽까지 커피 추가해 가면서
노트북 두드리는 것. 난 할 수 있다.
내일 출근을 하지 않으니깐...!
새벽이든 낮이든 일만 된다면
나는 깨어있는 편이 가성비가 좋다.
그게 디지털 노마드의 유일한 장점이자 단점이랄까.
다행히 꽤 넓고 조용한 핸드드립 전문 카페에 왔다.
분위기도 좋고,
내가 좋아하는 적당한 백색소음이 가미된 조용한 분위기,
사장님이 내려준 드립커피도 환상적이고
심지어 친절하시기까지 하다.
모든 것이 '너 이제 일 좀 하라'라고 말해주고 있다.
24시 카페를 간 적이 언제더라
코로나 이전에는 쉽사리 찾아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거의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런데도 새벽까지 날 받아줄 수 있는 곳이 남아있다니
카페 사장님께 감사할 뿐이다.
브런치 작가 신청은 또 거절됐지만 그냥 두드려본다
타자도 브런치 작가 신청문도.
온라인 사업 1년 6개월 차.
처음에는 막막하지만 머리 싸매면서 두드려보면
결국 어디든 문이 열리더라.
그리고 그 문이 사실은 그다지 두껍지도 않아
문고리만 살짝 돌리면 됐다는 걸 뒤늦게서야 알게 된다.
요즘 슬럼프다.
1년 6개월 동안
매번 두드리고 있다.
그래서 근래 책에서 본 가장 마음에 드는 단어가 있다.
계획된 우연 'Planned happenstance'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데 집중하기보다 계획되지 않은 사건에서 기회를 찾는 것에 더 집중하라'는 스탠퍼드 대 존 크롬볼츠 교수의 경력 이론이다.
사실 어려운 정의는 모르겠고,
내가 받아들인 의미는 이렇다.
인생은 늘 인간이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지금 하는 일이 무의미해 보일지라도
이 역시 계획되지 않는
또 다른 우연을 만들어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스티브잡스가 대학시절 청강한 습자법 수업이 있었기에
십여 년 뒤 애플의 혁신적인 디자인이 탄생할 수 있었다.
잡스가 학교에서 방황하며 정규과목도 아닌
디자인 수업을 들으며
'나는 애플이라는 세계적인 회사를 만들 거고,
그때 필요한 디자인을 직접 하기 위해
이 수업이 꼭 필요해!'라고 예견했을 리 없다.
내가 이렇게 방황하는 것도.
지금 하는 일이 무의미해 보이고
인생의 방향성이 없어 보이는 것도
결국 나중에 돌아보면
다 의미 있는 시간이 돼있을 수 있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아무렴 어떠나
심지어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낸 것조차
의미 있는 시간에 대한 원동력이 될 수 있으니
의미 없는 시간이 의미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잡(스)소리 그만하고 이제 진짜
일해야겠다.
이 역시 미래에 또 다른 우연으로 내게 돌아올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