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엄마, 준비 안 된 아빠

12주 차 - 딸이 장염으로 입원했다

by 어린아저씨

쌔근쌔근 자던 딸이 12시 조금 넘었을 때 울컥 대는 소리를 냈다. 핸드폰을 보고 있다가 옆을 돌아보니 자면서 토를 쏟아내고 있었다. 꽤 많은 양을 토해낸 딸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잠에서 깬 아내와 일단 아이를 씻기고 이부자리를 걷어냈다. 저녁에 뭘 잘못 먹은 걸까? 열을 재보니 미열이 있다. 배가 아프다고 한다.

아이를 씻기고 진정시킨 후 다시 재웠다. 아내의 말로는 아이가 체할 것 같이 먹지는 않았다고 했다. 즐겁게 저녁식사를 하고 곤히 잤다고 하는데 어째서 자다가 아파서 깬 것도 아니고 바로 구토를 했을까? 겨우겨우 잠든 딸은 뱃속의 것들을 다시 게워내며 깨고야 말았다. 걱정이 더해졌다. 딸의 상태를 예의 주시해야 했다. 아내는 어쩌면 장염일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그럴 수 있겠다 생각은 했지만 내가 아는 장염 증상은 보통 설사를 동반하기에 혹시 다른 병이 아닐까 걱정을 했다. 결국 다시 한번 빈 속을 비워내는 딸을 데리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아내는 자고 있던 아들의 옆을 지켰다.

기특하게도 딸아이는 새벽 2시에 차를 타고 달리는 동안에 잘 참아주었다. 차 안에서 고사리 손에는 비닐봉지를 움켜준 채로. 일단은 안 좋은 것들을 토해낸 상태라서 그런지 다행히 가는 도중에는 별일이 없었다. 힘이 축 빠져있는 상태로도 아이는 접수하고 진료받고 엑스레이도 잘 찍는 내내 잘 따라와 주었다.

의사는 장염이라고 했다. 아내는 어떻게 알았을까? 입원을 권유받았다. 의아했다. 병원 입원비를 받아내려는 속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딸아이가 장염이 걸리기 한 2주 전에 아내와 내가 연달아 장염을 겪었다. 그때 아내와 나는 하루 종일 고생은 했지만 죽과 이온음료를 먹고 감사하게도 다 나았다. 이전에 장염이 걸린 적이 있을 때에도 나는 그와 비슷하게 대처했고, 장염으로 누군가가 입원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은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내가 들어본 적이 없었을 뿐이었다. 아이들은 장염에 걸려서 입원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아내에게 듣고, 포털사이트에서 확인해보고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훨씬 약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에 일단 입원은 더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약을 받아 돌아왔다. 핑계를 대자면, 장염에 대한 나의 짧은 지식과 더불어 그날 응급실 의사의 언어가 입원시키는 데에만 집중하는 듯 느껴졌다. 딸의 상태가 그 당시는 조금 호전이 되었기도 했었다. 딸의 증상이 많이 심각해 보이면 께름칙한 느낌이 있더라도 입원을 바로 했을 수도 있겠지만, 아침까지 기다려 줄 수 있을 거 같은 생각이 들어서 일단 집에 돌아와 자고 일어나면 아동 전문병원에 가서 재진료를 받아봐야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연차를 내고 진료를 받으러 갔고 아이는 결국 아동 전문 병원에 입원을 결정했다. 아동 병원이라 확실히 아이가 더 편하게 머물 수 있는 분위기이기도 했고, 놀란 마음이 조금은 진정된 상태에서 조곤조곤 성실히 의사 선생님께서 상태와 치료과정에 대해 설명을 해주셔서 결국에는 곧바로 입원한 것보다는 더 나은 선택이 되긴 한 것 같다. 그런데 문득 너무 내가 아빠로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 비해 모든 가능성과 상황에 대해 알고 있는 아내에 대해 존경심 같은 게 생겼다. 갑작스럽게 아이가 아파버리니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우왕좌왕 헤매고 아내의 판단에 의지하는 듯했다. 지금은 정말 감사하게도 아이가 잘 버텨줘서 아침까지 기다려 다시 진료를 받았지만, 어쩌면 바로 입원을 하는 것이 옳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일들이 드물게 발생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아이가 아프거나 다칠 수 있는 상황은 살면서 충분히 몇 번은 경험할 수 있다. 특히나 요즘 아들은 남자 놈이라 그런지 위험한 행동을 점점 자주 하곤 하는데 다치는 일이 생기면 나는 다시 또 어쩔 줄 몰라할 것 같았다. 아내는 준비가 되어 있었고 나는 준비되지 않았다. 아내는 본인이 겁이 많다며 이런저런 위급상황에 대처하는 법에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겁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이런 준비 자체가 부모의 책임이지 않을까. 사실 아직 내 한 몸, 한 인생을 건사하는 것도 아직도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어진 책임을 다하는 것에 대한 변명이 되지 않을 것이다. 잘못된 대처로 후회할 일이 생긴다면 그건 온전히 내 몫이 될 것이다. 아빠로서 해야 할 준비가 아직도 너무나 많다. 몇 주 지냈지만 딸이 아픈 이날을 떠올리면 부끄러움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