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주 차. 아내는 아직 입덧 중이다. 두 번이나 겪어 본 일이지만 막상 다시 겪으니 감회가 새롭다. 솔직히 말하자면 입덧의 기억을 잠시 잊었던 것 같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시 조금만 맛을 보니 옛 입덧의 기억이 되돌아왔다. 뱃속에 새 생명이 뿌리를 내렸고, 건강하게 키워내야 하는데 산모가 먹는 게 힘들어지는 시기가 온다는 게 뭔가 참 아이러니한 시추에이션이다.
입덧이 정말 심한 사람은 어떤 음식 냄새만 맡아도 헛구역질이 나고, 입에 음식을 넣는 것조차 할 수가 없다고 하는데 다행히 내 아내는 그 정도는 아니다. 임신 사실을 안 지 얼마 안 되어서는 더 많이 힘들어했었고, 잘 못 먹어서 그런지 호르몬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웃는 얼굴이 기본인 아내도 우울해하던 시기를 겪었다. 어느덧 우울감은 지나간 듯하고 감사하게도 지금은 스스로 요리는 힘들어 하지만 남이 해놓은 음식은 불편함 없이 잘 먹는 편이다. 특히 초기에는 국물이 있으면 덜 힘들게 먹었고, 이제는 종종 먹고 싶은 음식도 찾아 먹는다. 요리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냄새가 아직까지는 속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 같다.
씁쓸한 입이고, 울렁거리는 속이고 대신 괴로움을 가져와 줄 수가 없기에 답답한 심정이었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결국은 먹을 수 있는 식사를 만들어 놓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쉽게 쉽게 하는 편이라 아내가 방에 들어가 누우면 국이나 찌개를 끓이기로 했다. 아, 그리고 즉석밥도 두 박스 시켰다. 이건 입덧하는 아내를 두신 분들에게 꿀팁이 될 수도 있겠다. 밥 짓는 냄새를 힘들어하면 즉석밥!
새로운 일과의 추가. 퇴근 후 밥 먹고 설거지하고 조금 쉬다가 국 끓이기. 며칠 해보니 나름 즐거운 패턴이다. 가만 보면 내 취미를 적을 일이 있으면 요리라고 적으면 될 것 같다. 워낙 뭐 먹을지 생각해보고 어떻게 요리할지 알아보는 걸 재미있어하는데 솔직히 퇴근 후는 조금 버겁지 않을까 싶었는데 할만하다. 집안 청소 같은 것까지는 못 도와준다 (청소 소질 1도 없음)
아내가 국이랑 같이 밥을 잘 먹었다는 얘기를 해주면 또 괜히 에너지가 충전되어서 다음에는 뭘 해볼까 고민해 보게 된다. 아직까지는 친척 분에게 크게 한 단 받은 미나리를 소진하기 위해 실험적으로 끓여본 미나리 국 말고는 감사하게도 대체적으로 맛있게 먹었다고 말해줬다. 아내는 자기 몸 돌보기도 힘들어하면서 아이들에게 영양가 있는 음식을 못 챙겨주는 것에 죄책감 같은 걸 느끼고 있는 듯하다. 엄마로 산다는 것이 참 보통 일이 아니다. 내 몸 아플 때에도 자기 자식들 걱정까지 세트로 따라오는 걸 보면. 집에 오래 못 붙어 있는 아빠는 나름 자신의 몫을 하나 찾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은 아욱 된장국 끓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