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아들이 처음 맞고 들어온 날
35주 차 - 생각보다 더 많이 속상하다
현재 나는 재택근무 중이다. 아내는 거대하게 배가 부른 상태로 오후에 아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나갔다. 한 시간 반쯤 지났을까? 딸내미까지 셋이 도어록을 열고 들어왔다. 그런데 뭔가 어두운 분위기. 아내가 딸아이를 다그치고 있었다. 놀이터에서 이미 놀고 있던 딸은 유치원 때부터 친구인 남자아이들 둘과 놀이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엄마와 둘이 뒤늦게 나간 아들은 다른 또래 친구가 놀이터에 없어서 누나랑 형아들을 졸졸 따라다닌 모양새이다. 그러다가 형누나가 귀찮은 듯 좇아오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형제가 있는 집에서 한 번쯤은 풀어야 할 숙제다.
나이 어린 동생이 따라다니면 자기들 나름의 높은(?) 수준의 놀이에 걸림돌이 된다. 같이 놀지 못하게 한 것은 분명 나쁜 선택이지만, 나도 여동생이 있던 오빠로서 동생이 귀찮은 마음, 인간 날것의 본능으로 보자면 이해는 된다. 아직 동생을 돌보면서 자기 즐거움까지 챙기기에는 9살도 아직은 어린 나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아이에게 잘못된 것을 알려주고 동생의 마음을 이해시키고 사과를 하게끔 해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딸과 엄마가 얘기하는 스토리를 엿듣다 보니 더 짠한 이야기가 있었다. 아들이 놀이터 어느 기둥에 머리를 박고 울고 있었다고 했다. 머릿속에 장면을 나도 모르게 그려보았다. 어떻게 따돌렸기에 맘이 서글펐나 싶었다. 놀이터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어느 공간이 있는데 거기에 아들이 따라 들어가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형들이랑 누나가 들어오지 말라고 했단다. 들어오면 딱밤을 때린다고 했단다. 아들은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딱밤을 때린다고 하고 같이 안 놀아준다고 해서 서러웠다고 했다. 여기까지가 아내가 보고 들은 이야기. 그런데 뒤에 아직 더 숨겨진 이야기를 내가 발견했다
아내는 딸의 대화는 동생을 따돌리지 말라는 당부로 마무리되는 듯했다. 빈백에 죽상을 하고서 끌어안 듯 늘어져 있는 아들의 얼굴이 너무 억울하고 불쌍해 보였다. 한 번 꼭 안아주고 싶었다. 등을 토닥이면서 "그렇게 많이 속상했어 우리 아들? 누나랑 형아가 나빴네"라고 얘기를 했는데 아들은 자기가 아무 잘못도 안 하고 그냥 놀고 싶었을 뿐인데 딱밤을 때렸다고 했다. 응?... 때렸다고? 때린다는 말로 겁을 줘서 좇아낸 게 아니라 때렸다고? 오래간만에 몸속에서 뭔가가 부글부글 데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물어보니 딱밤을 여러 대 맞았다고 했다.
화가 너무 났다. 사실 때린다고 겁을 준 것만 해도 속으로 "요놈들 보게" 이러면서 북수를 해주고 싶었는데, 실제로 맞았다고 하니 속에서 불이 나려고 했다. 그러고 나서 머리 박고 울었다던 모습을 상상하니 과몰입이 되어버렸다. 딸을 다시 불러서 팩트체크를 했다. 때렸단다. 딸 친구도 때렸단다. 속에 불이 한 단계 더 커졌다. 이러다가 정말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게 납득이 갔다.
약자를 괴롭히면서 재미를 느끼는 건 인간의 본능인 걸까? 요즘 DP라는 넷플릭스 드라마가 한참 화재인데, 선임이 후임을 괴롭힌 이유: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공부를 하기 싫은 애들이 일진이 되어서 다른 애들을 괴롭히는 것도 너무 이상하다. 공부를 하기 싫으면 하지 말고, 그냥 하고 싶은 거 재밌는 거 찾아서 놀면 되지 왜 약한 애들을 찾아내서 괴롭히는 건지. 인간이 서로를 돌보는 것은 본능보다는 학습인가 보다.
딸아이에게 설교를 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이 가장 소중하다는 말부터 시작해서, 약한 사람 괴롭히지 말라, 친구가 잘못된 행동을 해서 같이한다고 잘못이 작아지는 게 아니라 같이 잘못을 하는 것뿐이라는 등. 이런 일이 두 번 일어나면 아빠는 그때는 정말 많이 혼낼 거라고 얘기를 했다. 그리고 두 아이에게 누군가가 괴롭히거나 때리면 절대로 가만히 있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때리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 그래도 되는 줄 아니까 꼭 말하라고 알려주고 엄마, 아빠, 선생님, 주변 어른에게 무조건 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 지금도 어떤 이유로 아들이 왜 엄마한테 맞았다고 한 걸음에 달려와서 이르지 않고, 나중에 내가 물어보고 나서야 말한 건지 이해는 안 된다. 혹시 자기가 형, 누나 말을 안 들어서 맞았기 때문에 잘못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가 추측은 해본다. 어른들도 가끔 비슷한 일을 겪는다. 힘센 사람이 마음대로 부당한 규칙을 정해 놓고 그 규칙을 안 지키면 욕하고 공격하기도 한다. 그런데 막상 더 힘센 사람 앞에서는 관대하다. 결국 사람의 사고나 행동 방식은 어릴 때부터 만들어져 굳어지는 게 맞는 것 같다. 아이들을 좋은 사람으로 키워내야 하는 부모의 사명감의 무거움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