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주 차 - 애가 셋이 되니 애국자가 되어버렸다.
살면서 애국자라는 말을 들을 일이 얼마나 있을까? 애국자라고 하면 보통 유관순 언니, 안중근 의사가 대표적인 인물이고 요즘 같은 경우는 한류 열풍의 주역인 BTS나 축구선수 손흥민도 애국자라고 부른다. 살면서 누가 나를 애국자라고 부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물론,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내가 평가하는 나의 애국심은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이 가지고 있는 정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임신을 하게 되면 임신 사실을 알고 나서 바로 주변에 알리지 않는다. 혹시 모를 초기 유산의 가능성 때문인데, 우리 부부가 지인에게 처음으로 임신 사실을 오픈한 날이 우연히 3.1절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의 말을 들었는데, 거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에게 들은 예상치 못했던 말이 "애국자네~" 이다. 정말 표현 그대로 남녀노소에게 듣는다. 우리 부모님 뻘 어른들께서 주로 하실 표현일 줄 알았는데 15년지기 친구도, 나보다 어린 여자 동생도 하나같이 애국자라고 했다. 아이 둘을 낳는 동안은 들어보지 못했던 축하인사였다. 3.1절에 본의 아니게 애국자가 되어버렸다.
애국자라는 얘기를 들을 때에 왠지 멋쩍다. 셋째 아이를 가진 동기에 애국심의 농도가 0.1%도 되지 않음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까지 낳고 만족하던 아내를 아주 긴 기간 꼬셔서 결국 셋째를 갖게 되었지만, 나의 설득의 근거에 "우리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는 전혀 없었다. 요즘 이웃이나 우리 아이들 친구네 집을 보면 은근 아이 셋 나은 가정이 많다. 내 또래 친구들은 거의 둘이 국룰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형제가 하나씩 있었다. 내 주변만 그럴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우리 아이들 또래는 아예 하나가 아니라면 셋인 경우가 많다. 사실 세 자녀 가정 중 거의 대부분 나라를 위해 아이를 낳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애국자라는 표현이 민망하다. 싫은 건 아니지만.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태어나 버리고 자라서 세금도 내며 살고 있다. 주변사람들과 여러 관계를 맺고 함께 살아가고 잘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우리 나라를 강하고 부유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 일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개개인의 스스로 잘 살아내려는 노력이 모이면 좋은 나라가 되게 아닐까?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먼저 자기 몸을 바르게 가다듬은 후 가정을 돌보고, 그 후 나라를 다스리며, 그런 다음 천하를 경영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공감이 되는 말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애국자들이 많아 보인다. 과연 옛날이라고 현대 사회보다 애국심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더 많았을까? 글쎄, 나는 사람 사는 곳은 예나 지금이나 별다를 바가 없지 않았을까 싶다. 그때도 애국심보다는 나와 내 가족이 잘 먹고 잘 사는게 가장 큰 관심사가 아니었을까? 역사적 애국 영웅들의 등장 배경은 주로 전쟁과 같은 국가적 비극 상황이다. 애국자가 나타났다기 보다 드러났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수많은 애국자들이 야근도 하고, 육아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돌보고 가정을 잘 돌보기 위해 애쓰는 모든 사람이 결국 애국자인지도 모르겠다. 애국은 어쩌면 그리 거창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