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 아내의 카레

37주 차 - 아내에게 감동받은 썰

by 어린아저씨

요리 스피릿은 선천적인 것일까? 나는 요리하는 게 많이 힘들지 않다. 그런데 요리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부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녀노소에 구분은 없는 것 같다. 우리 아내를 비롯한 내 또래의 아이가 있는 엄마들도 요리를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고, 실제로 밀키트나 조리식품을 점점 많이 애용하는 것 같다. 우리 엄마 세대는 요리를 더 잘하긴 하지만 의무적으로 반복을 하다 보니 잘하게 되신 거지 요리를 좋아하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재택을 세 달 정도 했다. 아내의 배가 이미 산만해서 불편한 시기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 집의 식사 당번은 원래부터 암묵적으로 나였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삼시 세끼는 내 몫이었다. 단발성으로 요리를 하는 것과는 또 다른 게임이었다. 식비와 식재료 상태, 영양까지 고려해가며 식단을 운영해야 했다. 가족들 밥 해 먹이는 것이 몸과 머리를 골고루 써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요리를 좋아하는 편이기에 그것마저도 익숙해지다 보니 나름의 재미를 발견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재택 중단 공지가 날아왔다. 추석 이후 세 달만에 다시 출근을 해야 했다. 식사를 챙겨 먹고 먹이던 일상이 끝나게 되었다.

회사가 많이 멀다. 퇴근만 두 시간 조금 넘게 걸린다. 그러다 보니 항상 저녁식사가 애매하다. 6시 반에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8시 반과 9시 사이쯤. 이때 도착해서 배가 너무 고픈 상태에서 요리를 시작하는 것은 요리 부담이 적은 나에게도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본능이 이끄는 대로 손에 잡히는 것을 일단 입에 넣고 보게 된다.

다시 출근한 지 3일째 되던 날, 회사 창 밖이 어두워져 갈 즈음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저녁은 어떻게 하냐고 묻길래 집에 가서 먹는다고 대답했다. "집에 와서 뭐 해 먹기 힘들지 않아?" 아내가 물었다. 아. 참고로 나는 지금 개인적인 실험(?)으로 고기를 먹지 않고 있다. 그래서 주로 고기가 들어가는 아이들을 위해 만든 음식을 먹지 못해서 따로 요리를 해 먹는다. 아내가 말했다 "카레 해줄까?"

교정을 하고 있는 아내는 카레를 안 먹는다. 교정인들에게는 거의 불문율과도 같은데, 끼워진 고무줄에 물이 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쨌든 본인이 먹지 않을 음식을 다른 사람을 위해 한다는 것은 매우 이타적이고 조금 오버하면 희생적이기까지 하다고 생각한다. 나 먹는 밥상 차릴 때 숟가락 하나 더 얹는 것과는 다른 수준의 배려이다. 아내가 원래 요리인이 아니기도 하고, 커질 대로 커진 아내의 배로 요리를 하는 아내의 모습을 그려보니 그 마음이 고마워 간만에 가슴이 뭉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