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엄마가 씻겨줘야 하는 거니?

38주 차 - 둘째 아이와 가까워질 필요가 있다

by 어린아저씨

야근을 해야 하는데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혹시 오늘 집에 일찍 와줄 수 있어서?”. 이런 부탁은 처음이었다. 배가 부를 대로 불러서 몸이 많이 힘든가 보다 싶었다. 머리가 지끈지끈하고 컨디션이 안 좋아서 누워 있다고 한다. 집에 와서 애들을 씻겨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가 하는 일이 컴퓨터로 하기 때문에 집에 가서 하는 것도 문제는 없지만, 사실상 가서 애들을 보면 체력이 방전될 것을 알기에 야근을 내일로 미루는 마음으로 집에 갔다.


도착하니 아내가 소파에 누워 나를 맞아줬고, 아이들은 욕조에 들어가 있었다. 욕조는 참 괜찮은 육아 아이템이다. 우리에게는 목욕 용품이지만, 아이들에게는 물놀이 용품으로 둔갑시킬 수 있다. 아이들을 욕조에 담가두면 그동안은 알아서 잘 놀기 때문에 잠시 수고를 덜 수 있다. 아이들이 다 놀았다고 부르면 씻어주면 되는데, 첫째는 혼자 씻기 때문에 둘째만 씻겨주면 된다. 숨을 좀 돌리고 있으니 둘째가 “엄마~~~ 씻겨줘!” 하고 소리쳤다.


욕실로 향했다. 아들과 대면했다. 왠지 곤란하다는 아들의 표정. 아마 아빠들 중에 이런 상황을 겪어 본 사람들이 더러 있을 것 같다. 마치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는데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받아 든듯한 손님의 표정이랄까. ‘난 엄마를 불렀는데 왜 아빠가 온 거야?’


누가 씻기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나를 비롯한 일반적인 부모의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의 그 표정을 보고 있자니 매우 중요한 것 같다. 씻을 때만이 아니다. 우유를 따라줄 때, 응아 뒤처리 해줄 때, 더 어릴 때에는 유모차를 미는 것까지 예민하게 엄마만을 찾았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일단 아이에게는 중요한 것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런데 아쉬운 사실은 중요하다고 해서 항상 아이의 의견을 수용할 수는 없다.


수용을 할 수 없는 이유는 주로 두 가지로 귀결되는 것 같다. 첫째는 무조건 엄마가 다 해줄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씻기는 상황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엄마가 몸이 안 좋아서 아빠가 야근도 못하고 집에 왔는데, 엄마가 씻기 힘든 상황도 맞을뿐더러 해준다고 하면 나도 회사일을 뒤로하고 일찍 온 의미가 없다. 두 번째로는 나와의 관계이다. 엄마가 주양육자이기 때문에 더 편한 것은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이런 양육자 편식(?)이 오래 유지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첫째 때 더 서툴기 때문에 아이와 관계 형성에 있어서 오히려 더 시행착오를 더 했을 거라고 생각해서 만약 첫째가 엄마 애착이 강하다면 이해가 될 수도 있는데, 둘째는 왠지 모르게 엄마를 정말 많이 좋아한다. 때로는 섭섭함이 들 정도이기도 하다. 아이가 엄마를 훨씬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둘째와 더 가까워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일단 씻기를 마무리하게 위해 욕실에 들어가서 아들에게 상황 설명을 있는 그대로 했다. 하지만 아들은 목욕 파업에 들어갔다. 불만 가득한 표정. 눈동자는 방향을 잃었고 초점은 어딘가에도 맞춰져 있지 않은 듯했다. 몸을 베베 꼬았다. 마치 왜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게 이렇게 많냐는 불만의 표현 같기도 했다.


잠시 생각을 해보면 이해해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잠시 욕실에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아이들을 설득할 때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이들이 결국 어른들이 설득하는 근거를 결국에는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있다면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장기적으로 설득해 볼 수도 있지만, 때로는 빨리 결정해서 행동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아이들에게 강압적이거나 공격적으로 보이지는 않을지 걱정도 된다.


아이가 입장을 바꿔 생각해볼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서 비유적으로 설득도 해보았고, 엄마가 얼마나 힘든지 스텝 바이 스텝으로 이해시켜보려고 얘기도 해보았다. 사실 얘기가 길어져서 하면서도 지금 내 대화 방법이 맞지 확신이 없었다. 아이는 심적으로 여전히 괴로워 보였다. 약간의 침묵이 흐르다가 아들이 목소리를 냈다 “... 싫지만 할게…” 우선 이 상황은 설득이 되었다.


더 고민이 되는 것은 이번 상황 자체보다는 셋째가 태어나고 나서이다. 지금은 둘째가 아기에 대한 반감은 없다. 오히려 말로는 기대하고 있는 듯한 표현도 하는데, 나중에 동생에 붙어 있을 수밖에 없는 엄마를 보게 되면 상실감이 클 것 같아서 걱정이다. 그 상황도 아이에게 머리로는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속은 많이 상할 것 같다. 그리고 상황을 받아들이거나 엄마를 다시 되찾기 위해 많은 궁리를 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 같다. 그 과정이 힘들까 봐 걱정이 되고, 나나 아내가 지혜롭게 반응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