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없이 영화관에 가보기로 했다

38주 차 - 처음 가져 본 아빠와 아이들만의 시간

by 어린아저씨

대체휴일로 3일의 연휴가 주어졌다. 부모의 흔하디 흔한 고민. 오늘은 아이들이랑 뭘 하면서 놀아줘야 되나? 첫날은 놀이터에 나가서 놀았다. 둘째 날은 집에서 죽치고 놀았다. 그런데 저녁쯤 되니 애들도 무기력해 보이고 나도 쳐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역시 사람은 밖으로 돌아다니면서 움직여야 건강에 이로운가 보다. 그런데 출산이 정말 손가락에 꼽힐 만큼 남아서 아내와는 어디 나가도 같이 오래 돌아다니기도 힘들다. 고민을 하다가 나 혼자 애들을 데리고 나가봐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의도치 않게 그런 경험이 별로 없었다. 아빠와 아이들만의 시간. 그렇게 생각하니 아이들이 엄마가 더 좋고 편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내에게도 자유를 선물할 겸, 아이들과 나갈 곳을 찾아보았다. 역시 가장 만만한 것은 영화보기였다. 빙고! 마침 포켓몬스터 극장판이 상영 중이었다. 요즘 나는 포켓몬스터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초등학교 때 이 만화를 보고 자란 나와 아이들을 연결해주는 고마운 연결고리다. 들뜬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영화 보러 가자고 꼬셨다.

그런데 웬걸. 싫단다. 실망과 약간의 배신감이 들어버렸다. 왜지? 아이들은 확실히 자기 의견을 논리 정연하게 펼치지 않는다. 할 줄 모른다는 게 더 맞겠다. 좋다 싫다만 이야기해버리고 정확히 뭐가 싫은 건지 부연설명은 굳이 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서 부모를 혼란에 빠뜨린다. 조금 지나자 아이들이 심심해하길래 다시 제안을 했더니 이번에는 가겠다고 한다. 아까는 왜 안 간다고 했냐고 물어보니 자기들끼리 재밌게 놀고 있어서 영화를 보기 싫었단다. 어차피 좀 있다고 갈라고 했었거든!

세 좌석을 예매한 후 차를 타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엄마가 없다 보니 확실히 아이들이 조잘조잘 나에게 말을 많이 걸어왔다. 왜 진작에 이런 시간 갖는 걸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엄마가 동생을 낳고 나면 이 두 아이에게 신경 쓸 시간이 줄 수밖에 없어서 내가 아이들에게 더 다가가야 조금이라도 커버가 가능할 것이다. 미리 대비했더라면 좋았겠지만 지금이라도 아이들과 즐거운 경험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몇 어른들에게도 그렇겠지만 아이들에게 영화를 보는 것만이 영화관에 가는 재미의 전부가 아니다. 팝콘과 탄산음료를 먹는 재미가 쏠쏠한데 코로나 때문에 상영관 안에서는 물만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나도 덩달아 조금 실망. 아쉽지만 영화관에 시간 맞춰 들어가 자리를 찾아 앉았다.

제시간에 입장해서 스크린을 보고 있는데 아이들 눈빛이 점점 흐리멍덩해진다. 아이들과 같이 영화관에 와보니 시작 전 광고 시간이 생각보다 매우 길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괜히 같이 지루해진다. 영화관도 돈을 벌어야 하니 별 수 없긴 하지만 아이들이 그 사실은 안다고 해도 이해해 줄 마음은 1도 없을 것이다.

이내 실내등이 모두 꺼지고 영화가 시작됐다. 이번 포켓몬스터 극장판은 제목이 정글의 아이 코코이다. 내용은 정글북 포켓몬판이라고 하면 대략 감이 올 것이다. 버려진 인간이 포켓몬의 손에서 자라 자신이 포켓몬인 줄 알고 살다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는 과정에서 자신을 길러준 아빠 포켓몬과 갈등을 겪고 사랑을 확인하는 진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전형적인 스토리 초반에 아기를 키우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포켓몬의 모습을 보고 있는데 벌써 가슴이 뭉클해버렸다.

한 30분쯤 지났을까. 둘째가 자리에서 녹아내리고 있다. 자리가 불편한가 싶어서 내 무릎에 앉혔는데 기댔다 굽혔다 섰다를 반복하며 영화를 끝내 완주해냈다. 90분은 우리 아이들에게 가만히 앉아서 영화를 보기에 긴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집에서는 영화를 곧 잘 본다. 잠시 회상해보니 드러누웠다 걸었다 방방에서 콩콩 뛰었다 하면서 보는 모습이 떠올랐다. 아이들을 전담해보니 이제야 제대로 아이들을 관찰하나 보다.

영화가 끝나고 나와서 달콤 팝콘과 음료를 시켰다. 정말 부지런히 고사리손으로 팝콘을 입에 넣었다. 영화를 보러 온 건지 팝콘을 먹으러 온 건지 헷갈릴 정도다. 당이 어느 정도 충전이 됐는데 이내 영화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다행히도 영화도 재밌게 본 모양이다. 순간 좋은 아빠가 된 기분에 도취되었다.

"자 이제 시작이야!" 포켓몬 주제가 첫 가사다. 며칠 후 셋째가 태어나면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무를 수 없다. 나나 아내는 우리가 선택한 결과이기 때문에 비교적 담담히 받아들이겠지만 이 작은 아이들도 변화에 잘 적응하기를 바랄 뿐이다. 결국 다 부모 하기 나름 아닐까. 앞으로도 엄마 없는 아빠와의 시간을 좋은 기억으로 더 많이 만드는 숙제가 주어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