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일 이야기

D +1주 차 - 셋째 아이 출산하던 날의 풍경

by 어린아저씨

오전 10시 반 제왕절개 수술 예정이었다. 수술 두 시간 전에는 가야 한다고 해서 8시쯤 집을 나서려 했다. 준비를 하고 있는데 첫째 딸이 일찍 일어나서 거실로 나왔다. 이 아이도 동생이 태어나는 날이 기다려진 것일까? 둘째는 계속 꿈나라 여행 중. 아침에 일어나서 엄마 아빠가 안 보이면 섭섭할까 봐 자고 있는 아들내미에게 엄마가 인사를 건네는데 일어나지 못했다. 다행히 나가기 전에 잠이 깨서 담담히 현관에서 손인사 빠빠이를 하고 아내와 나는 병원으로 향했다. 장모님이 계셔서 그런지 비교적 아이들이 수월하게 엄마의 6일간의 짧다면 짧지만 길다면 긴 공백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았다.


아침 출근 시간이라서 길이 조금 막혔다. 이번에 출산하는 병원에서 우리 둘째도 수술로 낳았다. 주차를 하고 분만실 앞에 도착하니 4년 전 기억이 스며들어왔다. 그냥 떠올리려 할 때는 둘째를 낳던 날의 상세한 기억이 잘 나지 않았는데, 익숙한 공간에 들어서니 그날의 기억과 긴장감이 옅게나마 되살아났다. 아내는 분만준비를 하러 들어가고 나는 입원 수속을 밟은 후 수술 대기실에서 다시 만났다.


병원복을 입은 아내가 환자용 침대에 배를 위로 향하고 누워 있었고, 옆에 있는 기계에서는 아기의 심박이 기록되면서 심장소리가 빠르고 힘찬 꿀렁꿀렁 소리를 내고 있었다. 뜬금없이 이 상황에 웃음이 났다. 12년 전에 좋다고 따라다니던 누나랑 연애하던 시절에는 이렇게 우리 둘 사이에서 세 아이나 태어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아내를 수술실에 들어갔고 나는 밖에서 대기했다. 사람일을 알 수 없지만 딱히 수술을 하다가 문제가 발생할 거라고 믿지 않았었다. 그런데도 막상 수술이 시작되니 말 그대로 입술이 바짝 마르기 시작했다. 30분 동안 시간을 보내려면 보통 SNS나 인터넷 뉴스를 볼 텐데 이마저도 입맛이 뚝 떨어진 사람이 음식을 보듯이 보기 싫었고 그저 기도만 나왔다. 살면서 몇 번 느껴봤던 간절함이라는 것을 되게 오랜만에 느껴보았다.


너무 감사하게도 30분쯤 지나니 아기가 이동용 침대를 타고 나왔다. 퉁퉁 불어있는 눈을 야무지게 꾹 감고 있었다.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넸다. 쌔근쌔근 숨을 쉬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놓였다. 산모 수술 마무리도 잘 됐다고 했다. 아가와 신생아실로 가서 깔끔하게 정리한 모습을 보고 아이의 첫 만남을 조심스레 카메라에 담았다.


회복실에 들어가니 아내가 이제 막 정신을 차리고 있는 듯했다. 고생시킨 듯한 마음이 자꾸 들어서 미안했다. 무사히 출산해줘서 너무 고마웠다. 태어난 아가 사진을 보여주니 미소를 지었다. 장모님이랑 아내가 통화를 했다. 잘 낳았다며 웃으며 얘기를 하고 두 아이들이 엄마 없이도 잘 등교했는지 아내가 물어봤다. 옆에서 엿듣기로는 등교는 잘했는데 뭔 일이 있는 눈치였다. 현관에서 우리를 배웅하고 들어왔는데 누나는 밥 먹고 학교 갈 준비를 하는데 둘째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찾아보니 안방 침대 이불속에서 울고 있어서 달래서 밥을 먹이셨다고 한다. 우리가 나갈 때는 비몽사몽이기도 하고 이미 오래전부터 약속된 상황이라 엄마를 보냈지만 금새 엄마를 오래 못 본다는 생각에 슬픈 마음이 바쳐 오른 모양이다. 그래도 금방 추스르고 등원은 잘했다고 한다. 안쓰러운지 아내도 눈물을 또로록 흘렸다.


다시 한번 느꼈지만 출산은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병실에 들어와서도 아내는 몇 시간 동안은 목석처럼 누워있어야만 했다. 아마 수술부위가 초반에 잘 아물어야 해서 그런 것 같다. 수술 전날 자정부터 물까지 금식했는데 수술 후에도 다음 날이나 돼야 물을 마실 수 있고 식사도 다음 날 점심이나 되어야 미음으로 나온다고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취는 풀려갔고, 진통제를 맞고 겨우 고통을 가라 앉힐 수 있었다.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상태를 묻는 것과 부채질 밖에 없었다. 하루가 지나고 보니 다행히도 일어서는 것까지도 가능하게 되었다. 물론 매우 힘들어한다. 그런데도 오후 면회 때 아기 얼굴을 꼭 보겠다며 걷는 연습을 한다. 역시 엄마는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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