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후 첫날밤은 산부인과 입원실에서 아내와 보냈다. 수술을 받아서 몸에 무리가 온 것 같아서 사실 딱히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할 걸 알지만 곁을 지켜주고 싶었다. 그래도 감사하게 그다음 날 바로 앉기도 하고 지지대를 의지해서 걷기도 해서 마음이 많이 놓였다. 장모님이 내려오셔서 우리 두 아이를 봐주시고 계시지만 그래도 엄마 아빠가 같이 비운 자리가 많이 허전할까 봐 이튿날부터는 집에서 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매우 솔직해지자면 엄마의 빈자리는 분명 크겠지만, 나의 빈자리의 크기는 아이들에게 얼마나 클지 궁금했다.
아내가 저녁으로 나온 죽을 다 먹는 걸 지켜보고 얘기를 나누다가 집으로 향했다. 딸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들은 자고 있었다. 피곤했는지 6시쯤 잠이 들었다고 장모님이 말씀해주셨다. 장모님께서 딸에게 오늘은 누구랑 잘 거냐고 물어보셨다. 어제는 우리 방에서 외할머니랑 아이 둘이 같이 잤다고 한다. 딸은 모를 것이다. 어쩌면 장모님도 모르실 것이다. 아내는 질문을 들었다면 아마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그 질문에 내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는 사실을.
딸의 대답: “오늘은 아빠랑 같이 우리 방에서 잘래".
예쓰!
8시가 조금 지나서 딸이랑 장모님과 훌라를 하고 있는데 목소리가 들렸다. “미미~ 어딨어?” (우리 아이들은 할머니들을 미미라고 부른다) 아들이 깼다. 울지도 않고 자던 방에서 걸어 나와 할머니를 부르러 온 게 기특했다. 자는 동안 소화가 다 됐는지 아들은 할머니가 뒤늦게 차려준 밥을 국에 말아서 깔끔하게 먹어치웠다. 역시 애들은 배가 고파야 밥을 잘 먹는다. 이번엔 내가 아들내미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오늘 아빠랑 잘 거지?”
“응"
예쓰!
모든 부모들이 그렇겠지만 아이들의 마음에 내가 얼마나 가까운지가 항상 궁금하고 큰 숙제다. 조금 웃길 수도 있지만 양가 할머니들은 나에게 있어서는 넘어야 할 큰 산이다. 매주 처갓집에 가기 때문에 특히 외할머니랑 아이들이 사이가 가깝다. 할머니들은 부모에 비해 잔소리를 하지 않고 무한 사랑을 베풀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날개 없는 천사 같은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할머니를 제치고(?) 내가 선택받았다는 것은 나에게 큰 의미가 있다.
기분이 좋기도 하고 다음 날이 마침 휴일이라 조금 무리해서 점수를 따기로 했다. 야식으로 컵라면도 먹이고 게임도 같이 하면서 12시까지 놀았다. 사실 엄마가 없는 이 상황을 잘 받아들여준 아이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기도 했다.
잘 준비를 마치고 어두운 방 안에 아이들과 누웠다. 엄마가 있으면 나는 찬밥 신세일 때가 많다. 아이 둘은 잠들기 전까지 엄마와 더 가까운 자리를 놓고 은근한 기싸움을 하곤 하는데 나는 그냥 옆에 꿔다 논 보릿자루 같은 신세다. 이 날 밤은 첫째는 내 손을 잡았고 둘째는 팔베개를 했다. 매일 엄마가 해주던 기도를 내가 대신했다. 아이들이 잠들고 나는 가만히 누워 조용하고 느린 숨을 쉬었다. 벽난로 열기 같은 잔잔한 온기가 가슴을 채웠다. 말로 다 하기 힘든 많은 것이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