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다른 아이가 태어나는 게 마법일지도 몰라

[5살 아들, 9살 딸] 날 닮은 너희들

by 어린아저씨

주말마다 위의 두 아이들과 외출을 하는 것은 신생아 육아를 하는 아내를 위한 내 나름의 작은 배려이다. 동시에 두 큰 아이들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저번 주에는 실내 동물원을 갔고, 이번 주에는 찾아보니 수원에 마술극단이 있어서 어린이 마술쇼를 보러 갔다.

소극장이고 좌석은 자유석이었다. 앞에 두 줄은 어린이 전용석이었는데 군데군데 빈자리가 있었다. 어린이 마술쇼이다 보니 어린이들을 위해 일등석을 마련해 둔 듯했다. 우리도 시작 몇 분 일찍 도착은 했지만, 상대적으로 게을렀는지 더 일찍 자리를 잡은 사람들 때문에 아이들과 같이 앉으려면 5 열정도부터 가능했다.

조금 멀다 싶어서 아빠는 뒤에 앉아 있을 테니 잘 보이는 앞자리에 앉는 게 어떠냐고 아이들에게 물었더니 나랑 같이 뒤에 있겠다고 했다. 자리를 잡았는데 안내하시는 분이 보고 계셨는지, 원하면 나는 가장 바깥 자리에 앉는 조건으로 맨 앞자리에 앉는 것도 괜찮다고 하셔서 자리를 옮겼다.

마술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마술쇼에 금방 집중했다. 아들이 그렇게 귀엽게 물개 박수를 많이 치는 걸 처음 보았고, 조금 도도한 우리 딸아이도 마술사의 위트에 생글생글 웃었다. 그냥 마술이라기에 별생각 없이 마술을 하겠거니 하고 갔는데, 어린이 마술쇼답게 마술사가 어린 관객들과 소통하면서 쇼를 능수능란하게 진행하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마술에는 조수가 필요할 때가 있다. 마술사는 중간쯤 자기를 도와줄 어린이가 있는지 물었다. 아이들 중 한 절반 정도가 손을 들었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마술사와 관객 간에 장난스러운 대화가 몇 번 더 오간 후 다시 한번 도와줄 어린이를 찾자 아이들이 텐션이 올라갔는지 거의 다 손을 들고 "저요! 저요!"를 외치기도 했다. 그 가운데 나는 올라간 손들보다 꿋꿋이 내려가 있는 내 옆자리 두 아이의 양손이 왠지 신경 쓰였다.

마술사가 물었다. "내 엄마나 아빠가 앞에 나와서 같이 하면 좋겠는 사람 손!" 나는 고개를 돌려 아이들을 보았다. 아이들의 손은 마냥 얌전하기만 하다. 마술사만 주시한다. 나도 아주 외향적이 성격은 아니지만 춤추거나 노래하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는 아이들을 위해서 충분히 나서서 적극적인 아빠임을 아이들에게 어필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의미없는 걱정이었다.

우리 딸은 주목받는 걸 싫어하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나서는 걸 별로 원치 않을 거라 예상했고, 아들에게 물었다. "아빠 나갈까? 어때?". 아들은 내 눈을 보더니 대답했다. "아니". 아들은 그래도 딸아이에 비하면 외향적이지 않나 싶었는데 거기서 거기였던 모양이다. 아들은 나에게 다시 눈을 맞추더니 눈웃음을 치며 한마디 한다. "아빠 손 들면 안 돼~"

지금의 나라면 남들의 시선이나 주목을 덜 부담스러워하고, 부끄러운 상황도 눈 한 번 딱 감고 웃음거리가 되고 넘어갈 수 있지만 30년 전의 나라면 이 아이들과 똑같은 반응했을 거라는 것을 나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안다. 그게 너무 기가 막힐 뿐이다.

어린 나도 사람들의 눈동자가 동시에 나를 향하는 게 두려운 일이었고, 어디선가 내 이름이 불리는 게 왠지 모르게 싫었다. 때로는 그래서 하고 싶어도 표현도 못하고, 아쉬움을 합리화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부끄러움을 피해 가는 것이 그때의 나에겐 더 중요했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이런 나의 성격의 단점을 알기에 내 아이들은 다르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 배운 것도 아닌 자연스러운 이 아이들의 마음을 부정해서 공격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지는 않다. 언젠가 필요를 느끼게 되면 스스로 알아서 변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굳이 필요가 없다면 변해여 할까 싶기도 하고. 각자 나름의 성격에 맞는 삶의 방식을 지혜롭게 체득해갈 것이다. 아이들이 더 적극적이길 바랐던 이 마음을 이번에는 욕심으로 정의하고 넘어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