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여자혼자도쿄여행 [후타코타마가와편]
익숙한 듯, 제일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이젠 어느 쪽으로 가면, 역이 더 가까운지 알게 되었고
본연의 것보다는 주변의 것들에게 관심이 생겨나는 여행 열흘째
오늘 도쿄는 비가 주룩주룩입니다.
저는 어렸을 적부터 좋은 건 무조건 빨리했어요.
급식시간에는 꼭 맛있는 것부터 먹었고
선물을 사두고는 주고 싶은 마음을 어쩌지 못해. 그날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미리 줘버리고
내 마음이 어떤지 채 알기도 전에, 당신을 좋아한다. 말해버리고
이렇듯 늘 마음이 다급했기에.
저는 어렸을 적부터 자주 넘어지고, 자주 체했어요.
체하면 안 하기 마련인데
'한번만, 이번만, 마지막이야' 하며 미련스럽게 늘 같은 걸 반복했고요.
누군가 그랬는데, 성격은 그 사람의 운명이래요.
고쳐보고도 싶고 고쳐볼까도 했지만
그냥 이게 제 운명인 듯 다급한 마음을 감추지 않고 살아갈까 해요.
제가 가르치는 한 아이가 있어요.
초등학교 2학년_ 구태여 구분하자면 아이지만, 상당히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어요.
감히 9살이라고 말할 수 없는 그 아이는, 자주 철학적인 질문을 해요.
“칭찬 받으면 도망가고 싶어요. 왜 그런걸까요?”
“생각해보니깐 선생님도 그러네 부끄러운걸까?”
한동안 말이 없던 그 아이는 여러 색이 담긴 색연필 통에서 천천히 그리고 고민한 듯
색을 꺼내며 말을 이어요.
“생각해봤는데요.”
“응?”
“칭찬은 가끔 받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자주 받으면 안 그럴텐데...”
또 어느 날은 이런 말도 해줘요.
"선생님 친구가 되고 싶을 땐 '안녕' 부터 하면 돼요.
"선생님이 오늘은 좀 슬퍼"
"슬픈걸 사라지게 하고 싶을 때는요. 차가운 바닥에 엎드리면 돼요. 그러면 괜찮아져요."
그리고 이런말도요.
"선생님은 만약에 엄마 음식이 맛이 없으면, 말을 해줄 것 같아요 안 해줄 것 같아요?"
"음... 선생님은 그냥 아무 말없이 먹을 것 같은데?"
"음식이 맛이 없을 땐 바로 이야기해줘야 해요. 그래야 엄마 음식이 발전해요." 다부진 표정으로 이런 말들을 할 때면
역시 특별한 아이라고 생각해요.
가끔 아이들을 가르칠 때마다 느껴요.
_내가 너무 정답을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 정답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인생의 구간 구간마다 쉼표를 찍어줄 때가 있어요.
물론 쉼표는 그 사람의 성격에 따라 양이 달라지긴 하지만
자주 외로워_늘 온기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더욱이 많이 필요하지요.
저 역시 성격이 문제라 탓하며
오늘도 여행이란 쉼표를 찍습니다.
어렸을 적에 저는 책을 굉장히 싫어했어요.
유치원생 때부터 시대사를 줄줄 외우는 동생과는 달리
저는 책을 쥐여줘도 은하계 물건이라 생각했는지 쳐다도 안 봤대요.
내가 기억이 없다 우기니
엄마는 굳이 '맹세코'라는 단어까지 쓰며
_책 읽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말해요.
자주 이사를 다녔던 우리 집은 이사할 때마다
“책 안 읽는 건 좀 버려”
“엄마, 어떻게 책을 버려?”
이렇게 바뀌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3학년 때였어요.
28명이 전부였던 우리 반은 적은 인원 때문인지 다른 반들과 멀리 떨어져
도서관 옆, 작은 교실에 자리 잡았죠.
공부와의 거리도 은하계만큼 멀었고
공부로는 저기 천왕성쯤 가 있을 것 같은 전교 1등과 짝이었던 저는 야자시간이 지루했죠.
그때부터 지루한 시간을 때워보겠다. 옆에 있던 도서관에 갔어요.
인생에는 특별한 순간이 있어요.
처음에 짜릿함을 알게 된 순간
짜릿함으로 사랑을 시작하게 된 순간
사랑 안에도 무수히 많은 벽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
그 벽에 부딪쳐 결국 헤어지게 된 순간
헤어짐을 이기지 못해 아픔에 갇혀 버리는 순간
그리고 이 모든 걸 다 몰랐었던 것처럼, 또다시 시작하게 되는 순간.
특별한 순간은 자기도 모르게 지나가죠.
당시엔 몰랐던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순간들-
그때 우리가 그 순간이란 걸 알았다면, 우린 지금 조금 달라져있을까요?
"널 너무 사랑해"
그렇게 말하던 그땐, 우리가 진짜 행복했을까요?
#오늘도 저의 사적인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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