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여자혼자도쿄여행 [다이칸야마 편]
저는 도쿄라는 말보다는 동경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좋습니다.
외로움은 지나갔고, 혼자인 게 익숙해지는 여행 일주일
오늘 동경은 흐림입니다.
늘 계획 없는 여행을 하는 저는 도착하면 항상 닥친 문제들부터 해결해요.
_자 짐은 어떡하지? 아 숙소는 어떻게 찾아가지?
이제 뭐 하지? 그럼 내일은 뭐 할까?
이런 무책임한 여행 방식을 꾸준히 고수하는 이유는 단순해요.
‘귀찮아서’
그런데 이런 귀찮음이 때론 나를 알게 해주더라고요.
말도 안 되지만, 즉흥은 나도 모르는 날 알아가는데 중요한 메뉴얼이라고 생각해요.
_아 이런 일에 나는 남들보다 더 짜증을 내는구나.
아 저런 일에 나는 남보다는 조금은 쿨하게 넘길 수 있구나
어쩌면 불편한 점 허나 어떻게 보면 또 좋은 점이지요.
여행에서 많은 것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여행에서 알게 된 것은 커다란 것도 아니고, 화려한 것도 아니며
돈과 시간을 쓴 만큼 사실 대단하지도 않아요.
그냥 나를 기억하고 오는 것
그럼 이 기억들로 다가올 서른 살을 조금 더 어른답게 꾸며줄 거예요.
여행 갈 때 꼭 챙겨가는 것이 있어요.
한국 소설, 한국어로 된 책,
낯선 언어들 속에서 유일하게 나와 대화해주는 기분이 들어서 꼭 챙겨 가요.
이상하게 외국 가면 책이 잘 읽혀요.
아, 그리고 뜨거운 사우나에서도요(?)
오늘 한국 사람을 만났어요.
셀프 우동집에서 주뼛주뼛 거리며 주문하는 법을 몰라 망설이고 있는데
제 뒤로 문이 다시 열리고, 몇몇 사람들이 더 들어왔어요.
초조해져 우선 눈앞에 그릇을 덥석 집어 쟁반 위에 놓으려는데,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직원이 그릇을 확 뺏고는
_Order here please!
당황한 저는 한껏 작아진 목소리로 차가운 우동을 달라고 대답했죠.
_Cold.......?
_차가운 거 드려요?
어? 한국말이다!
_한국 사람이세요? 그럼 처음부터 한국말로 해주시지..
투정 부리듯 말이 빨라졌어요.
그런데 이 사람 내가 한국 사람인지 어떻게 안 걸까요?
이곳에 들어와서 한국말 한 적이 없는데, 저의 Cold 발음이 웃겼던 걸까요?
_일본어를 배우러 온거라 일부로 한국말 안쓰려고 노력중이예요.
생각을 듣기라도 한 듯 그가 대답해요
갑자기 살짝 미안해졌어요.
그래도 타지에서 한국 사람을 만난 게 무척이나 반가워
_그럼 이것도 먹고 싶은데 이건 어떻게 주문해야 해요? 여긴 어떤 메뉴가 제일 인기 있어요?
미안했던 마음을 또다시 잊은 채 한국말로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해요.
_기본우동이 제일 잘 나가요.
덕분에 저는 무사히 주문을 마치고, 우동을 깨끗이 다 먹고 셀프 정리까지 깔끔하게 한 뒤
_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_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이제 서로 포기한 듯 우리는 웃으며 한국말로 인사를 나눠요.
그곳을 나와서도 왜 계속 기분이 좋았는지는 모르겠네요.
혼자 있다 보니 고민할 시간이 주어졌어요.
직면한 다양한 문제들
나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
누가 봐도 나에서 비롯된 문제들
고민들에게서 도망쳐오니 고민들을 만나네요.
역시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면 안 된다는 선조들의...
그래도 이곳에서 무언가를 고민할 시간이 주어졌다는 게
싫지만은 않아요.
남들보다 약해 빠졌다는 것을
저는 이제 장점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오늘 헤어진 지 6개월쯤 된 친구가 6개월 만에 이야기하면서 울었어요.
과하게 괜찮은 척하고 있던 그 친구가 위태로워 보였지만, 섣불리 위로해 주지 못했거든요.
헤어짐을 이겨내는데 시간이 약인 건
몇 천 년 동안 변하지 않은 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하지만
약의 효능은 사람마다 다르잖아요.
_울어도 돼요. 후회해도 돼요. 이게 맞아요.
쪽팔리면 좀 어때요.
괜찮다는 거짓부렁으로 청승 떠는 것보단 낫죠.
사랑했으면 해요.
이제 곧, 울고불고 한 건 다 잊어버리고 새로운 사람 곁에서
전 연애의 무용담이라며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친구의 모습이 보여요.
이때까진 분명 친구는 웃고있었지만, 느끼지 못했거든요.
사랑했으니 됐어요.
가는 법 / TIP
다이칸야마역은 도큐 도요코라인 입니다.
주요 정차역은 시부야, 다이칸야마, 나카메구로, 지유가오카를 운행합니다.
급행과 완행으로 나누어져있으니, 타실 때 가시는 곳에 정차하는 지 확인 후 탑승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시부야 히카리에 정문 앞에서 81, 82번 스미즈행 버스를 타도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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