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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현 Sep 14. 2016

[프랑스여행] 간격이 필요하다.

여자혼자프랑스여행



파리의 첫날 비가 내린다.  
떠나는 날 억지로 우산 하나를 캐리어에 꾹꾹 넣어준 엄마가 새삼 그립고 고마웠다.






빨리빨리 나라에서 태어난 나는

느릿느릿한 입국심사에 표정이 늘어져갔고

동굴같이 컴컴하고 음침한 천장, 거기 어딘가에서 나오는 안내방송과
나와는 눈의 크기부터 다른 사람들, 곳곳에 붙어있는 알 듯 말 듯 한 안내판이
또 한 번 모르는 곳에 내려졌다는 혼란을 확신으로 만들어주고 있었어요.

숨겨뒀던 두려움이 피부 밖으로 기어 나온 탓인지
추적추적 비 내리던 날씨 탓인지 몸이 부슬부슬 떨리고
그때 든 생각

불어를 하나도 모른다. 숫자조차 모른다.
'아까 비행기에서 코 골며 자지 말고 기본 회화라도 외워둘 걸' 하는 후회가 몰려올 때쯤 제 차례가 왔어요.






파리는 생각보다 따뜻하고요.
생각했던 것보다는 약간 무섭고요.
생각했던 것보다는 빠르게 외롭습니다.

그래도 아침 일찍 일어나

분주히 움직이는 여행객들 사이에 있으면

묘하게 흥분되고 설레고 그렇답니다.























파리 현대미술의 퐁피두센터

무계획 여행을 고수하는 나지만, 떠나기 전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에요.
섬뜩 놀란 입장료와 이 어마어마하게 긴 줄을 번갈아 보고
이 사람들 대부분이 나처럼 유명한 곳을 구경 온 관광객이겠다. 싶었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대부분이 프랑스인이었어요.

예전에 신문에서 개인의 디자인적 재능과 기술에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나라일 수록
선진국이 많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이렇듯 파리는 예술을 사랑하고, 그들의 노력을 존중하며, 미술의 가치를 지키는 멋있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어요.






뜬금없지만, 포경 수술은 너무 어렸을 때 하면 안 된다고 해요.
자신 스스로 '어느 정도 컸다' 생각이 드는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때쯤 하는 것이 좋다고

이유는 '이것이 공포다. 이것은 아플 것이다.'
라는 공포를 머릿속에서 미처 인지하기도 전에 그 상황에 노출되면,   
그건 성인이 돼서도 지속적 트라우마로 남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래요.

그런 이유와 같다면,
제 인생에서도 내려놓지 못하고 장기 보관되어있는 트라우마가 있어요.

이런 아픔을 줄 거라는 걸 알기도 전에 사랑한 첫사랑 철민이 그렇고
이런 슬픔을 줄 거라는 걸 알기도 전에 맞이한 아빠의 죽음이 그렇고
혼자인 게 싫어 늘 사랑하는 척, 슬프지 않은 척 한 나의 비겁함이 그래요.






예전에 이별을 했을 땐, 헌혈을 그렇게 열심히 했어요.
헌혈하고 나면 정말로 아픈 곳이 생기니깐 보이지 않게 아픈 건 왠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서

또 다른 이별을 했을 땐, 그땐 귀를 열심히 뚫었어요.
그리고는, 빨간색 별 노란색 달 귀고리를 정신없이 달아놨었죠.
내가 귀걸이 하는 걸 지독히 싫어하던 그에 대한 반항의 의미로

쓰고 보니 그때부터 저는 참 미련했던 것 같네요.





스타 벅스에서 손잡고 다정히 공부하는 연인들을 볼 때,
너무 슬프고 감동적인 장면에선 껴안아 주었으면 할 때,
다시 연애를 시작하는 친구가 즐거워 보일 때

세상에는 외로운 일 투성이예요.
왜 너라는 남자는 모르는 걸까요?

그리움에는 간격이 있는 것 같은데,
왜 '보고싶다' 는 간격이 없는 것 같을까요?

하지만 날 외롭게 만드는 너라도,
이런 쓸쓸한 비가 내리는 날에는
너의 침대 위에서 잠들고 싶은 마음을 그는 알까요?






저를 하루 동안 달래고 있는 중이에요.
고작 하루를 버텨냈어요.

당분간 제 하루는 지렁이 젤리처럼 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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